디지털 시대 언어혁명,
정서경이 쓰는 K-pop미래

"한글과 영어 사이, 제3의 언어가 탄생하다" 트랜스링구얼 작법

by 박대석

[작사작업을 하는 청년작사가의 모습을 whisk로 생성]


[음악 칼럼] 디지털 언어로 코딩된 진화: CLOSE YOUR EYES '2.0'을 듣고

영한 혼용의 정수, 트랜스링구얼리즘의 실천, K-pop 작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 괴물 신인의 탄생: 데이터가 증명하는 성공


2025년, K-pop 신인 시장에 폭풍처럼 등장한 그룹이 있다. JTBC 서바이벌 프로그램 'Project 7'을 통해 결성된 7인조 보이그룹 CLOSE YOUR EYES다. 2025년 4월 2일 데뷔 후 불과 7일 만에 음악방송 1위를 기록하며 2020년대 데뷔 보이그룹 중 최단기간 음악방송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문학 소년 콘셉트의 데뷔곡 '내 안의 모든 시와 소설은'으로 음악방송 2관왕, 여름 컴백곡 'Snowy Summer'로 3관왕을 달성한 이들은 누적 음반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하며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명실상부 입증했다.


그리고 2025년 11월, 세 번째 미니앨범 'blackout'과 함께 선보인 '2.0'은 이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더 확장시킨다. 문학적 서정에서 디지털 각성으로, 유쾌한 소년미에서 테크노 세련미로의 180도 전환. 이 곡은 단순한 장르 실험을 넘어, K-pop 작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실험실이 되었다.


▌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보컬 레이어링


'2.0'의 음악적 정체성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메탈코어적 요소를 언급하지만, 실제로 이 곡은 일렉트로닉 팝과 댄스의 경계선에서 정교하게 균형을 잡는다. 더블 베이스와 싱코페이션의 복잡한 리듬 구조는 장르적 전문성을 드러내지만, 멜로디 라인은 철저히 대중적이다.


보컬 처리는 BTS의 'DNA'나 NCT 127의 'Kick It'이 선보인 다층적 보컬 스타일링을 연상시킨다. 각 멤버의 음색이 레이어처럼 쌓이며 입체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낸다. 특히 후렴구 "Push to start, then I wake up 2.0"에서의 유니즌 보컬은 마치 시스템이 부팅되는 듯한 청각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는 NewJeans의 'OMG'나 aespa의 'Next Level'이 보여준 '사운드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4세대 K-pop의 진화된 프로덕션 철학을 계승한다.


▌ 가사의 독특성: 정서경이 구축한 디지털 시학


'2.0'의 가장 혁신적인 지점은 바로 가사다. 작사가 정서경(Jamfactory)은 이 곡에서 사랑도, 이별도, 희망도 아닌 **'자아의 시스템적 업그레이드'**라는 독창적인 주제를 선택했다. "Push to start", "Update", "SYNC", "Pattern", "Logic", "Buffering", "Frequency"—디지털 용어들이 가사 전체를 관통하며 하나의 정교한 메타포 체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접근은 K-pop 작사의 지평을 넓힌다. 한국 최고의 작사가 김이나가 IU의 'Good Day'에서 보여준 섬세한 감성 묘사나, Brown Eyed Girls의 'Abracadabra'에서 구현한 신비로운 관능미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정서경은 감정을 직접 서술하는 대신, 기술적 언어를 통해 감정의 구조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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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리듬에 닿은 나의 숨결

오차 없이 빠져 들어

타고나길 너의 Pattern

New version 정확히 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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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보라. "숨결"이라는 생물학적이고 감성적인 단어가 "오차 없이"라는 엔지니어링 용어, "Pattern"이라는 프로그래밍 개념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인간의 감정과 시스템의 정확성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강화한다. 이것이 정서경 가사의 핵심이다.


"Final form no prototype"라는 선언은 더 인상적이다. 자아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인식하고, 끊임없는 베타 테스트를 거쳐 최종 완성형에 도달하겠다는 의지. 이는 MZ세대가 경험하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 압박과 버전 업그레이드에 대한 강박을 정확히 포착한다. 동시에 그 압박을 긍정적 동력으로 전환하는 엠파워먼트 메시지를 담는다.


▌ 영한 혼용의 학문적 배경, 트랜스링구얼리즘의 실천


'2.0'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영어와 한국어의 전략적 결합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의 학술지 English Today에 발표된 Schneider(2023)의 연구에 따르면, K-pop 가사 내 영어 사용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해서 증가했으며, 이는 단순한 글로벌화 전략이 아닌 새로운 트랜스링구얼(translingual)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트랜스링구얼(Translingual)'은 여러 언어와 기호 자원을 유연하게 사용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아는 이중언어(Bilingual)를 넘어, 언어 지식뿐만 아니라 시각, 청각, 비언어적 요소와 같은 다양한 외부 자원을 활용하여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2000곡 이상을 분석한 Barnes-Sadler, Ahn & Kiaer(2025)의 실증 연구는 영어가 "재미와 세계성의 지표(index of fun and globality)"로 작용하며, K-pop만의 독특한 언어 레지스터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정서경의 '2.0' 가사는 이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 영어는 기술적 용어("Push to start", "Update", "SYNC", "Buffering")에 집중되고, 한국어는 감정과 의지("끌리지", "충족", "즐겨")를 표현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영어의 간결함과 기술적 정확성, 한국어의 감성적 뉘앙스와 리듬감을 전략적으로 배분한 결과다.


BTS의 'Dynamite'가 전곡 영어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면, BLACKPINK의 'How You Like That'은 킬링 파트에 영어를 집중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2.0'은 영어를 개념적 프레임워크로, 한국어를 감정적 내러티브로 사용하는 제3의 방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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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a new phase in my new wave 2.0

Relax and lean 즐겨 새로운 Flow

Buffering 따위 없이, 맞춰진 Frequ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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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Relax and lean"과 "즐겨"의 병치는 절묘하다. 영어의 쿨한 태도와 한국어의 능동적 향유가 서로를 보완한다. 이것이 바로 Lee(2004)가 언급한 K-pop의 "언어적 하이브리디제이션(linguistic hybridization)"이자, 한국 팝 음악만이 구축할 수 있는 독특한 미학이다.


▌ 작사가 정서경의 위치, 세대 간 접근법의 차이


Jamfactory 소속 작사가 정서경은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지만, '2.0'에서 보여준 역량은 K-pop 작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 이 작품이 요구하는 역량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어 문학적 소양. "네 리듬에 닿은 나의 숨결" 같은 표현은 시적 감수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둘째,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 "Final form no prototype"은 단순한 콩글리시가 아니라 정확한 영어 문법과 IT 전문 용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셋째, 글로벌 음악 트렌드에 대한 감각. 디지털 자아, 시스템 미학이라는 주제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젊은 세대의 보편적 경험이다. 넷째, 음악적 재능. 가사의 음절 배치, 라임 구조가 멜로디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는 선배 작사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김이나가 300곡 넘는 경력으로 구축한 '감정의 번역자'로서의 정석이 있다면, 정서경은 '개념의 설계자'에 가깝다. 김이나의 "좋은 날"(IU)이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라는 감정의 직접적 토로로 시대를 울렸다면, 정서경의 "Push to start"는 기술적 언어로 시대정신을 구조화한다.


또한 셀프 작사가 Zico나 IU와도 차별화된다. Zico의 "SoulMate"는 "젊음의 한복판에서 두 남녀가 사는 작은 섬"처럼 시적 은유를 통해 감성을 전달하고, IU는 "밤편지"에서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워 놓을게요"처럼 서정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반면 정서경은 감정을 이미지가 아닌 시스템 프로세스로 치환한다. 이는 감성의 부재가 아니라 MZ세대가 경험하는 새로운 감성의 언어화다.


Jamfactory는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Girls' Generation, GOT7, EXO 등의 히트곡을 배출해 온 전문 작사/작곡 회사다. 정주희(슈퍼주니어 '사랑이 멎지 않게', GOT7 'Mine'), 서지음 등 실력파 작사가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SM과의 정기 작사 캠프를 통해 체계적으로 신인 작사가를 육성한다.


정서경이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며 Girls' Generation 멤버들의 곡과 최신 K-pop 트렌드를 학습했다는 사실은 그의 다층적 역량을 설명한다.


▌ '2.0', 더 나은 방향 위한 가능성


모든 혁신적 시도가 그러하듯, '2.0' 역시 다양한 관점과 평가를 불러일으킨다. 음악 커뮤니티와 일부 평론가들은 이 곡의 실험적 성격에 대해 몇 가지 숙고할 지점을 제기한다.


디지털 메타포의 과잉. "Push to start", "Update", "SYNC", "Buffering", "Frequency"—IT 용어들이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는 독창적이지만, 일부에게는 과도하게 기술적이고 차가워 보일 수 있다. K-pop의 핵심 자산인 감성적 공감이 약화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멜로디의 평면성. 복잡한 리듬과 보컬 레이어링에도 불구하고, 후렴구의 멜로디가 상대적으로 단조롭다는 평가가 있다. NewJeans의 'OMG'나 IVE의 'Baddie'처럼 중독성 있는 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중성의 제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닌 세대에게는 가사의 메타포가 난해할 수 있다. 이는 팬덤 중심의 성공은 가능하지만, 국민가요로의 확장은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실험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K-pop이 계속 진화하려면 안전한 공식의 반복이 아닌, 이러한 모험적 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K-pop 작사의 미래: 다양성이 곧 경쟁력


K-pop의 영어 사용은 단순히 "서구 진출"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예술적 선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사실이다.


BTS는 'Dynamite'에서 전곡 영어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지만, 정작 그들을 세계 정상에 올린 것은 "Mic Drop"이나 "IDOL"처럼 한국어로 자신들의 진정성을 표현한 곡들이었다. BLACKPINK는 'How You Like That'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해 봐"와 "Look up in the sky"를 자연스럽게 병치하며 양쪽 언어의 강점을 활용했다.


NewJeans는 'Hype Boy'에서 세대 특유의 언어 혼합("I like you", "너 때문에 잠 못 들 것 같아")을 보여줬고, Zico와 IU는 주로 한국어 중심 작법으로 감성을 극대화했다. aespa의 'Next Level'은 "Kwangya"라는 자체 세계관 용어와 영어를 결합하며 제3의 길을 열었다.


'2.0'은 영어를 개념적 프레임워크로, 한국어를 감정적 내러티브로 사용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K-pop이 창조한 트랜스링구얼 팝의 미학이며, 정서경은 이 새로운 영역의 개척자다.


▌마치며, '2.0'이 제시하는 작사의 청사진


CLOSE YOUR EYES의 '2.0'은 기존의 완성도 기준으로 재단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의 가치로 평가받아야 할 작품이다. 디지털 메타포의 과잉, 멜로디의 평면성, 제한적 대중성이라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곡이 K-pop 작사사(作詞史)에서 차지할 위치는 명확하다.


정서경은 '2.0'을 통해 트랜스링구얼 작법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김이나가 2000년대 감성적 서정시의 정점을 찍었다면, 정서경은 2020년대 개념적 시스템 언어의 가능성을 열었다. 전자의 "좋은 날 우~ 우~ 우~ 우~ 우~"가 순수한 감정의 고양이었다면, 후자의 "Push to start then I wake up 2.0"은 계산된 자아 설계의 선언이다.


K-pop이 계속 진화하려면 음악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언어적 다양성도 필요하다. Cambridge 대학의 실증 연구(Barnes-Sadler et al., 2025)가 증명하듯, K-pop의 영어 사용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했지만, 그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BTS의 진정성, BLACKPINK의 균형감, NewJeans의 세대 언어, Zico와 IU의 한국어 중심 감성—이 모든 접근이 유효하며, 정서경의 시스템적 언어 역시 그 스펙트럼에 새로운 색채를 더한다.

정서경의 가사는 단순히 노래를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시대를 읽는 코드이자 세대를 연결하는 언어다.


'2.0'이 보여준 것처럼, K-pop의 미래는 더 많은 영어도, 더 순수한 한국어도 아닌, 두 언어가 창조하는 제3의 언어 공간에 있을 것이다.


CLOSE YOUR EYES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정서경의 펜 끝에서 탄생할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대된다. 그것이 '3.0'이 될지, 전혀 다른 시스템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K-pop 작사의 다음 장을 쓰고 있으며, 그 실험이 때로 논쟁을 낳더라도 산업 전체에 필요한 진화의 동력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예술평론가 겸 칼럼니스트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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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등

Schneider, I. (2023). English's expanding linguistic foothold in K-pop lyrics. English Today, Cambridge University Press.

Barnes-Sadler, S., Ahn, H., & Kiaer, J. (2025). A quantitative characterisation of English in K-Pop through the Korean Wave 2000–2020. Asian Englishes.

Yeo, S. (2018). Critical interpretation of hybrid K-Pop: The global-local paradigm of English mixing in lyrics. World Englishes.

Lee, J. S. (2004). Linguistic hybridization in K-Pop: Discourse of self-assertion and resistance. World Englishes, 23(3), 42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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