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당신들의 노후가 걸린 문제다. 침묵하지 말라.
2025년 11월 26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원달러 환율이 1477원을 돌파하며 1500원대 진입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기재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구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환율 상승에 대한 일시적 방편으로 국민연금을 동원하려는 목적이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오히려 우려를 증폭시켰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단기에 집중되면서 물가 상승, 구매력 약화에 따른 실질 소득 저하로 이어질 경우 국민 경제와 민생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 구윤철 경제부총리, 2025년 11월 26일 기자간담회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규모는 이미 GDP의 50%를 상회하고, 보유 해외자산은 외환보유액보다 많다. 구 부총리의 표현대로 국민연금은 "외환시장 단일 플레이어 중에서 최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거대 연기금의 운용 방향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 의도가 무엇이든 시장은 이를 '관치(官治)'의 신호로 읽을 수밖에 없다.
4자 협의체가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협의체는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차원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그러나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가 논의되는 순간, 기금운용본부가 온전히 수익성만을 추구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핵심이다. 형식적 독립과 실질적 종속 사이의 이중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국민연금-한국은행 간 외환 스와프 확대'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이는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매입해야 할 달러를 한국은행에 빌려주거나, 달러 매입 시기를 늦추는 방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를 분산시켜 환율 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심각한 기회비용이 숨어 있다.
숨겨진 기회비용: 국민연금이 달러를 적기에 매입하지 못하면 환차익을 낼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현재처럼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국면에서 달러 매입을 지연시키는 것은 결국 더 비싼 환율에 달러를 사야 한다는 의미다. 이 손실은 누가 부담하는가. 바로 국민연금 가입자, 즉 미래 세대의 노후 자금이다. 기금 수익률을 희생해 정부의 물가 관리 비용을 떠안는 구조라면, 이는 수탁자 책임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한국은행은 시장 변동성이 과도할 때 달러를 매도하거나 매수하여 급격한 환율 변동을 완화한다.
이는 중앙은행의 고유한 통화정책 영역이다. 과거에도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사이에 외환 스와프 협력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금의 독립적 판단하에 시장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부 협의체가 이를 '제도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통화정책과 연기금 운용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외환보유액을 늘려야지, 국민의 노후 자금을 끌어다 써서는 안 된다.
4자 협의체 구성 논란에 앞서, 이미 국민연금의 정치적 동원 조짐은 나타나고 있었다. 2025년 11월 초, 한국경제신문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한도에 다다랐다고 보도했다. 코스피지수 급등으로 전체 자산 중 국내 주식 비중이 17.5%까지 치솟아 올해 목표 비중 14.9%를 훌쩍 넘어섰다. 허용 범위(±3% 포인트)를 감안해도 17.9%에 근접한 상태다. 이를 초과하면 리밸런싱, 즉 국내 주식 매도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전술적 자산배분(TAA) 제도를 활용해 매수 허용 범위를 19.9%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최대 30조 원을 추가로 국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TAA는 본래 시장 급락 시 완충장치로 설계된 제도다.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면 매수로 버팀목이 되고, 과열기에는 매도를 통해 거품을 완화하는 구조였다. TAA를 활용해 인위적으로 주가 상단을 떠받치려 하는 것은 시장 원칙을 훼손하는 노골적인 시도다. 정치권 일각에서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해 무리한 증시 부양을 지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 최재원 경제학부 교수는 "연기금은 증시 급등락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지나치게 끌어올리면 변동성을 키워 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순천향대 김용하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추가 매수 여부는 어디까지나 기금운용본부의 운용 판단 영역"이라며 "정치적 판단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정론(正論)이다.
국민연금법 제1조는 명확하다. "국민의 노령·폐질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환율 방어도, 주가 부양도 국민연금의 법적 목표가 아니다. 국민연금법 제102조는 기금의 관리 및 운용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가입자의 장기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비상 상황에 대한 고려: 물론 국가 경제 위기나 비상 상황에서 제한적이고 투명한 연기금 활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같은 시스템적 위기 상황에서 연기금이 시장 안정화에 기여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상황이어야 하고, 명확한 법적 근거와 사후 검증 절차, 그리고 무엇보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환율이 1500원에 근접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주가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기금을 동원하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 상례화(常例化)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국제 외교적 파장이다. 국민연금을 정부의 외환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면 외환거래법과 국제 외환시장 규범에 저촉될 위험이 있다.
미 재무부는 주요 교역국의 환율 정책을 주시하며 환율 관찰국 지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구 부총리는 "미 재무부도 우리나라 환율시장 안정성을 원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환율 안정을 원한다는 것과 연기금 동원을 용인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해외 선진국 연기금은 어떻게 운용되는가.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1997년 연방법인 CPPIB Act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CPPIB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CPPIB는 정부 및 정치권과 완전히 독립된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수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며, 투자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지 않는다. 완전한 금융·경제 전문가로만 구성된 이사회가 전략적 자산배분에 관한 최종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그 결과는 숫자로 증명된다. CPPIB는 최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 8%를 기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GPFG)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인 GPFG는 노르웨이 중앙은행 산하 독립 조직(NBIM)이 운용한다. 정부연기금법에 의해 투명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며, 정부가 인출할 수 있는 금액도 연간 실질 수익의 약 3%로 제한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기금을 동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거버넌스 구조가 바로 선진국 연기금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한국 국민연금도 2018년 수탁자책임원칙을 도입하고 책임투자 지침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 협의체가 운용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이 원칙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말로는 독립성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협의체를 통해 '뉴 프레임워크'를 논의한다면, 그것은 형식적 독립과 실질적 종속의 이중 구조다.
재정 방만, 부채 적자, 포퓰리즘을 방지하기 위해 재정준칙이 있듯이, 국민연금 기금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법적 장치가 시급하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국민연금법에 기금운용의 정치적 독립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캐나다 CPPIB Act처럼 "정부의 정책적 목적을 위한 기금 동원 금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환율 방어나 증시 부양 등 거시경제 정책 목표를 위해 기금을 동원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을 개편하여 정부 위원의 비율을 축소하고 독립적인 전문가 비율을 높여야 한다. 현재 기재부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구조는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담보하려면 정부 부처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기금운용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평가 기구를 설치하여 정치적 개입 여부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 국회나 감사원과는 별도로, 연기금 운용의 전문성을 갖춘 독립기구가 정기적으로 정치적 개입 여부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위험의 대가를 누가 치르느냐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납부하는 청년 세대가 수십 년 후에 받을 노후 자금이다. 지금 당장의 환율 방어나 주가 부양에 기금을 동원하면, 그 위험과 손실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몫이 된다.
청년 세대의 이중고: 지금 청년들은 연금개혁으로 보험료는 올라가는데(올해 9%에서 단계적으로 13%까지 인상), 자신들이 받을 때는 기금이 고갈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기금을 정책 수단으로 동원해 수익률을 훼손한다면, 청년들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세대 착취'의 피해자가 된다. 국민연금을 억지로 내고, 나중에는 고갈된 기금을 메우기 위해 세금 폭탄을 맞거나, 정부의 주가 부양놀음에 부실해진 자산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증권사 신용거래융자는 26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2021년 신용융자 급증 후 코스피가 급락했던 교훈을 잊었는가. 유동성과 빚으로 쌓은 주가는 외부 충격에 무너진다. 그때 국민연금이 고점에서 매수한 주식은 어떻게 되겠는가.
연금 기금 정점은 2041년 1,778조 원이며, 2057년 완전 고갈이 예정되어 있다. 매년 20조 원 규모의 매물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목적의 무리한 매수는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안긴다.
결국 이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본 원칙과 맞닿아 있다. 정부가 국민의 돈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고(스튜어드십 코드의 오남용), 이제는 환율과 주가까지 조절하려 한다면 이는 사실상의 '연금 사회주의(Pension Socialism)'다. 자본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하여 주가를 부양하고 환율을 조작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다. 친중·반미·종북 세력이 주장하는 국가 주도 경제 모델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산을 정권의 필요에 따라 동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의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이며,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 전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환율 방어와 주가 부양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단기적 수치 관리를 위해 장기적 신뢰와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국익이 아니라 국가적 자해 행위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보장이지 정부의 주가 부양 수단이 아니다.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은 외환보유액과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청년과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한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구 부총리는 "협의체 목표가 수익성과 안정성을 조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익성과 안정성을 진정으로 조화시키려면, 정치권력이 연기금 운용에서 손을 떼야한다. 그것이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수십 년간 증명해 온 진리다.
국민은 깨어 있어야 한다. 정권의 화려한 수사와 '뉴 프레임워크'라는 세련된 이름에 속아서는 안 된다. 본질을 봐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위험을 떠안는지, 누가 지금 웃고 누가 나중에 울게 될지.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의 미래다. 그것을 정권 안보의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에 준엄히 경고해야 한다.
청년들이여, 당신들의 노후가 걸린 문제다. 침묵하지 말라.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감시 속에서만 건강하게 작동한다. '관치 금융'의 망령이 2025년 대한민국 금융시장을 덮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저지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MBC뉴스, "국민연금 동원해 환율 방어하려는 것 아냐" 구윤철 부총리 기자간담회, 2025.11.26
한국경제신문, "구윤철 국민연금 동원해 환율 방어 아냐...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구축할 것", 2025.11.26
이투데이, "구윤철 '환율상승 일시방편으로 국민연금 동원하는 것 전혀 아냐'", 2025.11.26
한국경제신문, "[단독] 국민연금, 국내주식 매수 한도 꽉 찼다", 2025.11.6
한국경제신문, "[단독] '최대 30조'… 국민연금, 국내주식 추가 매수 나설 듯", 2025.11.9
한국경제신문 사설, "수익성·독립성 최우선인 국민연금, 자산 배분에 정치적 고려 없어야", 2025.11.10
KOTRA, "캐나다 주요 연기금 투자 현황", 2023.3
국민연금연구원, 해외연기금 운용 현황(캐나다 CPPIB, 노르웨이 GPFG)
국민연금법 제1조, 제102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