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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석 Aug 25. 2021

[경제칼럼] CBDC, ‘빅 브러더'사회만드나?

국가가 개인의 재산 상태 감시, 재산 말소 가능할 수도

이 글은 2020년 월간조선 12월호에 필자명의 칼럼으로 게재되었다.


⊙ CBDC 도입되면 국가가 모든 자금거래 흐름 통제 가능… 課稅 근거 추적, 지하경제 근절 등 긍정적 효과

⊙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통해 모든 決濟 서비스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면 은행 서비스 위축

⊙ 중국, 한·중·일·홍콩 CBDC 공동 발행으로 美달러 패권에 도전 시도






돈은 인간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도구이다. 돈은 막강한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개인과 사회 전체를 순식간에 노예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 권력을 잡은 자는 적당한 명분으로 화폐개혁을 하여 기득권(旣得權) 세력을 흔들면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폐개혁은 보통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수반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 산업자금 확보, 지하자금 양성화(陽性化) 등을 명분으로 한 정치·경제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행한다. 이를 위하여 예금의 지급정지, 신구(新舊) 화폐 교환의 제한, 보유재산에 대한 과세(課稅) 등 재산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람들은 화폐개혁이 예상되면 재산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서둘러 예금을 인출하거나 재산 가치를 유지할 만한 재화(財貨)를 구입해놓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에 화폐개혁은 보통 불시에 단행하곤 한다.
 
  국민의 불편과 사유재산의 침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구 화폐를 교환하면서 ‘3무(無) 원칙’, 즉 금액제한, 교환기간, 실명(實名)확인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 5·16 후 화폐개혁의 예에서 보듯이 이러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9년 5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자 이 총재는 “원론적인 차원의 이야기일 뿐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물러섰다. 또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 차원에서 화폐개혁을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 후 화폐개혁 논의는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금년 4월부터는 화폐개혁 논의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졌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CBDC란 무엇인가?

 


  CBDC란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화폐를 말한다. 지금도 중앙은행과 각 은행 간에 사용하는 거액 결제용 지불준비 예치금(reserves)을 유사한 전자화폐 성격으로 사용하기는 한다. 그러나 CBDC는 개인과 기업이 사용하는 소액결제용으로 이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CBDC 구현 방식은 중앙은행 또는 은행이 CBDC 계좌 및 관련 거래정보를 보관·관리하는 ‘단일원장 방식’과, 다수의 거래 참가자가 동일한 거래기록을 관리하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원장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블록체인 방식은 개인과 기업끼리 정당한 거래요청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록한 블록이 기존 블록체인에 연결되더라도, 이후 주(main) 블록체인과 연결되지 못하고 취소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결제완결성 보장이 매우 어렵다.


  지금도 인터넷뱅킹, 카드 사용 또는 가상화폐거래소 거래 시에 현금이나 디지털화폐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Data Base・DB)만 변경하고 자금정산은 은행 간 또는 중앙은행 간에 현물의 이동 없이 전산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CBDC는 지금의 화폐처럼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은행을 통하여 관리하는 DB 성격의 디지털화폐로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단일원장 방식은 다시 중앙은행이 직접 고객인 개인과 기업의 CBDC 계좌를 발급 및 관리를 하는 ‘직접운영 방식’과 은행 또는 정부가 지정하는 민간 기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운영하는 ‘간접운영 방식’으로 구분한다. 쉽게 말하면 화폐 대신 이미 국내외에 보편화된 각종 간편결제 기능, 즉 체크카드나 충전식 카드에 디지털 현금을 보관하여 사용한다고 보면 무방하다. 모든 화폐 사용이 없어지거나 일부 병행하여 인터넷 뱅킹이나 카드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익명성 보장 안 되는 것이 단점


  CBDC는 많은 장점이 있다. CBDC는 초기 시스템만 구축(構築)하면 그 이후에는 사실상 발권(發卷)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또 실시간으로 화폐 이동을 데이터로 활용하여 금융·통화·재정 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 운영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모든 자금 거래를 파악할 수 있어 과세(課稅)근거를 100% 추적할 수 있다. 화폐 위・변조나 자금세탁 등의 소지도 거의 없다. ‘지하경제’라는 것이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전자화폐의 보관·사용 등 결제 시스템이 모두 정보통신선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의 현금은 훔쳐서 사용할 수 있어도 남의 카드를 부정 사용하면 결국 덜미가 잡히는 것과 같다.


  CBDC 발행에 따른 가장 큰 단점은 익명성(匿名性)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화폐는 은행 창구 밖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CBDC는 전혀 보장이 안 된다. 따라서 CBDC는 개인의 경제생활에 국가가 개입·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디지털화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CBDC는 완벽한 개인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와 더불어 기존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과 신용배분 기능이 대폭 축소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한 현재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각종 카드, ○○페이 등 결제서비스 산업 시장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통하여 모든 결제서비스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 CBD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해 페이스북이 시도한 자체 화폐 ‘리브라(Libra)’의 영향이 크다. 달러화와 가치를 연동(連動)하는 리브라는 페이스북 이용자 25억명이 각국 중앙은행의 감독을 받지 않고 ‘세계 화폐’로 쓸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 사건은 각국 정부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물론 많은 중앙은행이 리브라 도입에 강력히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에 부딪히자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당초 의도와는 달리 ‘페이팔’ 같은 페이스북 페이 또는 ‘리브라USD코인’ ‘리브라GBP코인’ 형식의 지역 단일화폐와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하여 추진 중이다.


  ‘현금 없는 사회’ 구축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스웨덴은 2017년부터 중앙은행에 CBDC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이미 ‘e-크로나’라고 명명한 시제품 개발과 실험까지 진행 중이다. 사용자들이 전자지갑에 이를 보유하고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지급·입출금·송금을 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 단계에 와 있다. 한국은행이 현재 눈여겨보는 모델이기도 하다. 프랑스·스위스·터키·미국·영국·일본 등도 디지털화폐를 검토하는 수준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거지도 모바일 결제하는 중국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빠르게 CBDC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미 2014년부터 CBDC를 연구·개발해온 중국은 지난 5월부터 유통 테스트에 돌입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선전·쑤저우·슝안신구·청두의 4개 도시와 향후 2022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장소에서 CBDC를 철저한 보안 속에 테스트하고 있다.


  중국의 CBDC 기능은 현재까지는 충전, 계좌이체, 카드 결제, QR코드 스캔 등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중국은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변모 중이다. 중국 스마트폰 이용자의 80%는 이미 모바일 결제를 이용한다. 거지도 동냥할 때 QR코드를 통한 모바일 결제를 활용한다.


  중국은 디지털화폐인 CBDC를 통하여 사실상 기축(基軸)통화 중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패권(覇權)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심지어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 및 정치협상회의)에서 한·중·일과 홍콩이 CBDC를 공동 발행하자는 논의까지 하였다.


  겉으로 내건 명분은 4개국이 디지털화폐를 공동으로 발행한다면, 각 나라 간 환율(換率) 리스크가 줄어들고,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의 효율성이 개선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셈은 디지털화폐를 통해 중국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고 한·미·일 동맹에 균열을 가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다. 이미 안면인식 식별이 가능한 CCTV로 통행자까지 감시하는 나라로서 ‘디지털 레닌주의’ ‘디지털 공산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개인이 보관하고 사용하는 모든 디지털화폐를 완벽하게 사찰하고 통제하는 ‘빅빅빅 브러더(Big big big brother)’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동물농장’은 있을 수 없다.


갑자기 입장 바뀐 韓銀


  이런 중에 한국은행은 지난 4월 6일,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CBDC를 실험 운용을 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스마트 컨트랙트(계약)와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에 대한 법과 제도를 연구한 인물들로 CBDC 법률자문단을 구성했다. 지난 8월 28일에는 2021년 중에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 추진을 위한 외부 컨설팅 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공고를 냈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2019년 1월까지만 해도 CBDC 발행에 대해서 반대 입장이 분명했다. 그때 발간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보면 반대 이유가 구체적이다.


  〈CBDC 발행 논의에 보다 적극적인 일부 국가들의 발행 동기가 우리나라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이유는 우리나라는 현금수요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고 다수의 업체가 소액지급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소수 민간업체의 지급서비스 독점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예: 스웨덴)이 낮다.


  또한 일부 개발도상국(우루과이·튀니지 등)과 달리 예금계좌 보유율이 95%에 달하고, 인터넷·모바일뱅킹 관련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등 금융포용의 정도도 이미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다만 각국의 대응, 기반기술의 발전 상황 등을 예의 주시하면서 자체 연구는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방식에 관계없이 고객의 정보가 결국은 중앙은행에 모이게 된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현재 CBDC에 대해 국민 대부분의 인식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별다른 공청회나 설명회 등도 없이 한국은행이 단기간에 입장이 바뀌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참고로 영국중앙은행(BOE)은 지난 6월 12일부터 금년 말까지 은행·기술업체·결제산업·학계 등을 대상으로 CBDC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改憲만큼 중요한 일


5·16 후인 1962년의 화폐개혁은 기득권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단행되었으나, 경제적 혼란만 야기했다. 사진=조선DB

  CBDC 전면 발행은 과거의 화폐개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제·사회적으로 대변혁을 초래한다. 아울러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국민에 대한 강력한 통제수단을 중앙정부가 쥐게 된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CBDC를 국민을 꼼짝 못 하게 예속(隷屬)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중국이 CBDC 방식으로 위안화를 발행하려는 이면(裏面)에는 모든 위안화 거래 내역을 컴퓨터를 통해 감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면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자유화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인 부자들이 글로벌 금융망을 통해 돈을 해외로 빼내는 국부(國富) 유출이 일어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중국은 이런 문제의 해법(解法)으로 위안화를 CBDC로 발행해 모든 위안화 거래자들의 실명과 거래 내역을 추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및 디지털 자산 전문가인 이진길 ㈜통블록 대표는 “디지털화폐인 CBDC가 은행에서 고객 전자지갑으로 넘어간 후에, 거래이력 추적 불가능 여부가 국내외 수준급 디지털뱅킹 엔지니어들의 화두”라면서 “디지털화폐의 특성상 기술적으로 추적이 가능하여 익명성이 보장될 수 없다”고 말한다.


  CBDC는 분명히 장점이 많지만 이런 문제들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반대와 저항으로 중앙법정화폐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경제 시대에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IT강국으로 디지털화폐에 대하여 보완적인 기술 연구와 개발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CBDC 발행은 어차피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차분하게 장단점을 설명하고 전문가와 학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의 하나라도 중국의 동조 압박에 의해서 또는 의회 다수를 차지한 정부·여당이 예전의 화폐개혁처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불시에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대혼란이 올 것이 분명하고, 경제 토양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바탕까지 무너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2022년 3월까지로 임기가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정부에서는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CBDC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논의를 한 후, 점진적 실시 여부는 다음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이 옳다. CBDC 전면 발행은 개헌(改憲)만큼 나라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B&nNewsNumb=2020121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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