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무기징역 선고 때 다수 국민이 떠올린 법의 형평성
[표지: 쓰러지는 법의 여신 디케를 whisk로 생성하고 나노바나나로 해상도 높임]
무기징역 선고 때 다수 국민의 떠올린 법의 형평성
법이 침묵할 때 자유는 숨고, 권력이 법 위에 설 때 공화국은 허물어진다. 토크빌이 말했듯, “자유는 법의 절제 속에서만 영원하다.” 지금 우리는 그 절제의 붕괴를 보고 있다.
법의 저울이 흔들리고 정의의 칼날이 녹슬 때, 국가는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요즘 대한민국의 법정 풍경이 그렇다. 대통령은 재판을 멈추고, 사법부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국민은 분노 대신 체념을 배운다. 법꾸라지, 선택적 정의, 방탄입법 등 이런 말들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이름뿐인 간판이 되고, 헌법의 존엄도 권력의 손끝에 휘둘린다.
2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한 인간이 법의 이름으로 심판받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는 헌법이 부여한 절차 앞에 피고인의 자격으로 섰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불명예스러워도, 그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법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했다. 법의 권위는 그 무릎 꿇음에서 되살아났다. 3 심제든 4 심제든 최종 종착지까지 가봐야 할 일이다.
법치주의란 권력이 법 앞에 굴복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권력이 법 위에 설 때, 나라는 이미 공화국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각, 또 다른 현직 대통령은 법정이 아닌 청와대에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2개의 혐의와 5건의 재판을 받던 중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중 하나는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받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향한 모든 사법 절차를 “검찰이 조작한 사건” “정치 보복”으로 치부하며, 대법관 증원과 4 심제, 검찰 해체, 배임죄 폐지, 법왜곡죄 신설 등 일련의 ‘방탄입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이 ‘법 위의 존재’라는 망상에서 비롯된 권력의 자가면책이며, 헌정 질서의 기반을 허무는 위험한 시도다. 제도 개혁의 외피를 쓴 사법 해체이며,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다.
헌법 제84조는 명료하다. 대통령은 ‘재임 중의 범죄’에 대해 소추되지 아니할 뿐, 재임 이전의 범죄는 예외가 아니다. 대부분의 헌법학자가 동의하는 조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은 정지된 듯 멈춰 있다. 법의 경전보다 정치의 계산이 우선한 결과다.
이는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이며, 제도적 폭력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법의 평등이 무너진 곳에서 자유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강자에게 관대한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어제(2월 19일), 한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비상계엄 조치와 관련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는 상황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면, 측근이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고, 수백억 원의 비자금 의혹이 얽힌 사건의 당사자는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갑옷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것이 과연 평등한 정의인가, 아니면 권력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적 정의인가.
사법부는 공화국의 마지막 보루다. 법의 여신 디케는 두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든다. 그것은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를 같은 눈높이로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법부는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으로는 권력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언급처럼, “사법부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다. 정의는 결코 휴식하지 않는다. 재판을 멈추는 순간, 공화국의 시계가 멈춘다.
에드먼드 버크는 경고했다. “악이 승리하는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침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이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할 때, 그 나라는 이미 법치가 아니라 권치(權治)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키케로는 말한다. “법이 침묵하는 곳, 그곳에는 폭력이 지배한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침묵의 입구’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운명을 지녔든, 그보다 앞서는 것은 법의 존엄이다. 이것은 당파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법 위의 방패가 될 수는 없다. 그가 서야 할 곳은 권력의 단상이 아니라 법정의 피고석이다. 그것이 공화국의 원칙이자 헌법이 명령하는 정의의 장소다.
법의 권위는 권력이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정의감이 부여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사법부가 이 믿음을 저버린다면, 국민은 더 이상 법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법을 잃은 공화국은 단지 이름만 남은 껍데기다.
이제 ‘피고 이재명’의 진짜 재판이 시작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정의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 순간, 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법의 형평성이다.
법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권력이 법의 눈을 가릴 때 나라가 무너질 뿐이다. 자유는 법 속에서만 숨 쉬며, 정의는 그 법의 절제 위에 서 있다. 그것이 토크빌이 말한 ‘자유의 기술’이며, 우리가 반드시 다시 회복해야 할 국가의 품격이다.
칼럼니스트 박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