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한 목소리로 “도둑이야”.소리쳐야
2021년, '대장동 게이트'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며 저는 2500년 전 고대 중국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글귀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탐욕과 부조리를 꿰뚫어 보며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여는 작은 도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야 한다. 그러나 대장 도둑이 들면 궤짝째 짊어지고 상자째 둘러메고 달아난다. 도망가면서 오히려 둘러멘 상자의 끈과 자물쇠가 튼튼한지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리는 자들이 바로 대장 도둑을 위해 재물을 쌓아 놓은 꼴이 되지 않겠는가?"
이 구절을 대장동 사태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요? 483명의 땅 주인은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땅을 빼앗겼고, 6,000명의 아파트 구매자들은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털린 돈이 무려 1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대장동(大莊洞)이라는 이름처럼 '대장 도둑'에게 제대로 털린 셈입니다.
땅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나중에 땅을 산 사람들,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노력으로 모은 재산을 결과적으로 대장 도둑을 위해 바친 꼴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도둑들은 누가 더 많이 챙겼는지 겨루며 서로 뺨까지 치고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장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일을 하는 데도 큰 지혜를 가진 자들이 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그를 대비하지만, 결과는 그를 도와주는 꼴이 되는 일이 많다."
대장동 사건을 설계한 이들은 땅을 헐값에 사들일 때는 '공영 개발'을 내세우고, 막대한 이익을 챙길 때는 '민간 사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교묘한 술수를 부리는 '큰 지혜'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재명 씨가 언급했던 '반관반민'이라는 기막힌 사업 구조는 바로 이러한 '큰 지혜'의 산물이었던 것이죠.
"제후는 성인의 법도를 따라 나라까지 훔쳐 영화를 누린다. 이처럼 큰 도적을 이롭게 만든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도적들도 결국 성인들이 말하는 '도'를 따라 도둑질을 하므로 성인이란 도적들의 보호자이다. 성인이 없어져야 도적도 없어져 세상이 평화로워진다."
고대 중국의 '제후'는 오늘날 한국의 큰 지역 도지사에 비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빌미 삼아 부귀영화를 누리려 한다는 장자의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지며 소름 끼치는 공감을 자아냅니다.
허리띠 고리를 훔친 자는 처벌받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오히려 권력을 누리는 현실. 장자는 이미 2,500년 전에 성공한 '나라 도둑질'은 처벌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인'이라고 칭송하는 이들, 즉 공자, 예수, 노자, 소크라테스, 부처 등의 가르침을 달달 외워 출세한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과연 어떠합니까? 대법관과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인물, 페라리를 빌려 타고 특검으로 큰 칼을 휘둘렀던 인물 등 '성인 반열'에 오른 이들이 대장동이라는 대장 도둑을 암묵적으로 도왔다는 의혹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이제 그들은 합세하여 이 나라를 차지하려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장자는 정치 지도자들이 낸 잔머리 지혜가 하늘, 물속, 숲 속, 그리고 인간 세상을 얼마나 어지럽게 만드는지 소상히 말합니다.
"활, 쇠뇌, 그물, 주살, 덫, 올가미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새들은 하늘 위를 어지럽게 날게 되었다. 낚시, 미끼, 그물, 전지 그물, 투망, 통발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물고기들은 물속을 어지러이 헤엄치게 되었다. 덫, 함정, 그물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짐승들은 늪 속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게 되었다. 지혜, 거짓, 속임수, 원한, 위선, 교활, 궤변, 논쟁, 의견의 차이 등이 많아지자 세상의 습속은 이론에 미혹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세상은 언제나 크게 어지러운데, 그 죄는 지혜를 좋아하는 점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진정한 도(道)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의 영달을 위한 정치적 잔꾀를 의미합니다. 장자는 이러한 '지혜'가 초래하는 혼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어기고, 아래로는 산과 내의 정화(精華)를 녹여 버리고, 가운데로는 사철의 변화를 무너뜨렸다. 숨 쉬며 움직이는 벌레나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의 본성을 잃게 되었다. 심하도다, 지혜를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천하를 어지럽히게 되다니!"
대장 도둑에게 간언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은 현인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관용봉, 비간, 장홍, 오자서 등 역사의 기록에 남은 현명한 이들조차 대장 도둑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돕는 꼴이 되었다는 장자의 비판은, 대장동 사태에서 간언은커녕 뒷배를 봐주고 몰래 뒷거래를 한 자들의 말로를 짐작게 합니다.
장자의 이러한 깊은 통찰은 단순히 개인의 탐욕을 넘어선 거대한 사회악을 지적합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우주적 조화를 거스르는 제도를 만들어 사회를 병들게 하는 큰 도둑질입니다. 못된 정치인이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하고 악을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하면, 지식, 도덕, 종교로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장자는 이미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장동 게이트를 보면 우리는 2,500년 전 장자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잔머리를 굴려 설계를 잘하고(?) 많은 사람의 돈을 도둑질한 뒤, 그 돈으로 권세 있는 자들을 불러 모아 뒷배를 봐달라고 한 행태. 그러다 보니 더 큰 욕심이 생겨 1조 원 정도의 작은 도둑질을 덮으려면 아예 나라를 차지하는 큰 도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동의 뜰'이라는 허상의 그림을 보여주며 사탕발림과 갈라치기 선동으로 잠시 사람들을 현혹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미 가진 그릇과 분수를 넘어선 지 오래인 이들의 탐욕은 결국 그들을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주변에 따르는 이들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등을 돌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러한 일들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은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대장 도둑'을 뻔히 보고도 잡지 않는다면 결코 안 될 일입니다. 대장 도둑을 잡는 단 하나의 방법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한목소리로 "도둑이야!" 하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대장 도둑 잡아라!"
이 말은 '바보새' 함석헌 선생께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1년 10월, 『씨알의 소리』 5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아무리 도둑이라도 양심은 있다. 제 양심을 먼저 도둑 해 내고 그리고 남을 도둑 하던 것인데, 이제 전체의 부르짖음으로 그 쫓겨났던 양심이 그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는 못 견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아직 약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들이 '도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 사태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요? 우리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이 글은 필자 명의 칼럼으로 2021.10.04일, fn 투데이에 실렸다.
http://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