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14
2017.05.31 날씨 맑음 / 펜실베이니아
총 이동 거리 & 시간 : 507.6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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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고도 일주일 만에 비가 그쳤다. 뭉게구름이 피워 오른 걸 보니 며칠간은 비가 안 올 심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간절한 바람일 뿐이었다. 물을 사기 위해 작은 카페를 들렀을 때, 주인아주머니께서 큰 태풍이 남부에서 올라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동안, 비를 뿌리는 양을 보니 무엇이라도 올 것만 같았지만 태풍은 예상치도 못한 변수였다. 숙소에 도착하여 기상 예보를 보니 이번 주에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간다고 태풍경보를 알린다. 아직 애팔래치아 산 줄기 하나를 더 넘어야 하는데 설상가상이다. 한마디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더 나쁜 뉴스는 사실, 자전거를 타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시샘하는 듯 딴생각에 잠기려 하면 다리에서 그리고 엉덩이에서 신호를 준다. 그리곤 나는 곧장 현실로 돌아와 두 다리가 느끼는 고통을 함께 느껴줘야 했다. 이 친구들은 나를 가만히 두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멍청하게 몇 달 동안 페달만 밟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이 문제는 여행을 시작하고부터 나를 괴롭게 했었다. 어떤 피하고 싶은 무언가로부터 현실의 고리를 끊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특별히 어떤 생각으로부터 도망친다던가 외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아주 고마웠을 것 같다.)
며칠 동안 보아 온 것이라곤, 눈 앞에서 버티고 있는 높은 언덕들과 우거진 녹음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나는 발에 힘을 주어 한걸음 한걸음을 나아갔었고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풀숲에 아무렇게나 누워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거라곤 가자, 쉬자, 목마르다, 덥다, 춥다 따위의 인간이 가진 생리적 욕구들 뿐인 것이 나는 그동안 아쉬웠었다.
이 날밤, 성웅이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알래스카까지는 아직 12,000km가 남았고 우리는 이제 고작 500km를 왔으니 여러 가지 시험을 해 볼 시간은 많지 않겠냐고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욕심과 조바심이 그동안 나의 눈을 가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