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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근 Jun 07. 2017

[북반구 대륙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17

2017.06.3 날씨 맑음 / 펜실베이니아(델몬트)

총 이동 거리 & 시간 : 654.11km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여느 때처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동근아 오늘은 102km 달려야 될 것 같네”

“응?? 먼 거리치곤 너무 늦게 출발하는 거 아니야? 오늘은 업다운이 어느 정돈데?”


그가 전체적인 루트를 담당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난 늘 따라주어야 했다.


“800m 정돈데 오늘 애팔래치아 산맥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빠져나간다고!?”


나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갑자기 너무 좋아졌었다. 오늘 하루쯤 좀 더 고생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평지로만 50km 이상 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장거리를 달린다고 하지만 길들이 무난하게 이어진다고 하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미국에 온 지 17일 만에 모처럼 여유 있는 라이딩이었다. 강을 따라 평탄한 길들의 연속이었고, 마주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와 손인사도 하며 달려서 그런지 이제야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눈앞에 놓인 것만 이겨내려고 하다 보니 즐길 시간이 부족했었다. 서로의 등만 바라보고 라이딩하는 시간이 많았었고 주변 풍경을 보며 대화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나란히 달리며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었고 그 순간들이 만족스럽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주치는 가족들과 인사를 하며 지나치는데 앞서가던 성웅이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자신도 놀랬는지 곧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진 채로 있었다. 괜찮냐며 뒤 따라가니 마주쳤던 가족들도 방향을 바꿔 그에게 다가섰다. 그는 자전거와 엉켜있었고 페니어 백은 자전거와 따로 나뒹굴고 있었다.


“강성웅 괜찮나??” “괜찮아? 무슨 일이야? 일어설 수 있겠어?”


우리는 앞다투어 괜찮냐고 묻고는 자전거를 일으켜 한 구석에 두고 그를 부축했다.

그의 왼쪽 다리는 땅에 피부가 쓸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넘어지는 충격에 왼쪽 손목도 함께 다친 듯했다. 물을 꺼내어 무릎과 손목에 급하게 부었다.


“어디에 미끌렸나?? 갑자기 어떻게 된 건데?”


그는 웃으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걱정해주던 가족들에게 괜찮다고 엄지를 보였다. 그제야 그들은 조심히 여행하길 바란다며 가던 길로 돌아갔다.


우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떠나지 못했다. 무릎보다는 손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손목이 꺾여 통증 때문에 그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급한 대로 가져온 스포츠 테이프로 손목을 고정시키고 부서진 페니어 백을 케이블 타이로 고정시켰다. 앞으로 60km는 더 달려야 하는데 그의 컨디션이 안 좋아진 거 같아 걱정이 컸다. 그 뒤로, 번번이 가고 서고를 반복했다. 괜찮냐는 물음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목 때문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 우리에게 좋은 뉴스는 이제 애팔래치아 산맥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평지로 뻗은 산길을 통해 서두르면 해가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얼른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자며 격려를 하고 본격적인 웨스트 펜실베이니아 트레일 코스로 들어섰다. 우리는 정해진 길로 따라 12km 남짓을 달리던 중 앞서가던 성웅이가 멈춰 섰다. 쉬려고 하나보다 하고 뒤따라가니 길을 따라 나있는 터널을 큰 쇠창살이 막아서고 있었다. 우리는 허탈하고도 어이가 없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었다. 홍수가 났었는지 섬에서 터널까지 이어진 길 위엔 거대한 나무들이 널브러져 썩고 있어 수많은 벌레들과 악취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너무 허탈해서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다시 되돌아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지나온 1m가 소중한 여행이었기에 되돌아가야 하는 10km가 넘는 거리는 우리의 의욕을 처참히 밟아버리기에 충분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야 했다.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어두워지기 전에 결정을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캠핑을 할 생각도 했었지만 우린 식수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벌레가 너무 많았었다. 결국,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저전 거를 일으켰다. 가려던 순간에 나는 저 깊고 어두운 터널을 한번 들여다보고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빠져나갈 길이라도 있길 바라는 소망이 컸었다.


터널로 다가갈수록 그 속에서 나오는 건조한 바람이 온몸으로 불어왔다. 쇠창살도 세월이 만들어낸 빨간 얼룩으로 물들어있었다. 빠르게 나무들을 밟으며 가고 있을 때 터널 왼쪽에 작은 계단들이 조금씩 드러났다. 매우 가파른 경사였지만 길을 만들어놓은 게 분명했다. 다급하게 성웅이를 불렀고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는 자전거를 두고 달려왔고 우리 둘은 가파른 경사를 바라보며 또 한 번의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자전거와 짐을 들고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아찔해왔다.


터널에 기대어 그에게 물었다. 

“일단 짐은 빼고 자전거만 먼저 옮길까?”


그는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

“짐 빼지 말고 같이 하니씩 옮기자”


그의 말대로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싶어 우리는 천천히 하나씩 언덕 위로 옮겼다. 올라가 보니 트레일 코스라는 표지판이 자리해있었고 이런 걸 트레일이라고 만들어 놓았다는 것에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론, 이것마저도 다행이다 싶었다. 어쨌든,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 곳은 정말 산 중턱에서부터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끊임없이 산 밑으로 내려갔다. 도처에 나무뿌리와 잘린 가지, 돌멩이들이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보다 신중하게 내려와야 했다. 덕분에 내려오는 시간이 많이 걸려 트레일을 빠져나와 큰 주차장으로 들어섰을 땐 이미 어둑어둑했었다. 나무가 많아 더 어두워진 거 같았다. 지도를 보니 델몬트까지 27km밖에 남지 않아 2시간 정도 더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린 다시 트레일 길로 들어갔다. 하지만, 2km 정도 들어갔을 때 우린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숲이 너무 우거져 앞이 보이질 않았고 여기서 밤을 맞이 하면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틀째 날 곰을 보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들과 협상을 할 자신이 없었고 또, 여행을 오기 전 트레일 길에서 야생 동물들에게 습격을 받은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아온 탓이 컸다.


우린 결국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살펴보며 글을 쓸 만한 종이를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쓸만한 것들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지도를 확인하고 큰 도로가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지나가는 트럭들을 다 불러 세울 심상이었다. 그만큼 우린 절박했다. 40분째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봤지만 태울 수 없다는 손짓을 하고는 전부 지나가버렸다. 시골 마을이라 차들도 많이 지나가지 않았고 내비게이션을 재설정해보아도 계속해서 숲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만 뜰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차도에서 비켜 나와 자전거를 눕혀두고 앉았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림 밖에 없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니 생각보다 제약이 많았다. 밤에는 더 이상 라이딩이 힘들었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짐의 양도 한계가 있어 충분한 음식과 물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배는 점점 고파오고 마실 물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입은 말라왔다.


마침, 며칠 전에 사놓은 껌이 생각나 가방에서 꺼내어 하나씩 씹으며 뱉어냈다. 그러던 중, 성웅이가 도로가로 뛰쳐나가더니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검은색 픽업트럭이 오고 있었다. 트럭은 우리 앞에서 부드럽게 멈추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고 델몬트까지 가는데 오늘은 더 이상 라이딩 하기가 힘들 것 같으니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델몬트 까지는 가진 않지만 근처 마을로 들어가는데 괜찮으면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가 가는 곳은 Saltbugs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타고 가는 길에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우리는 그가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뒷좌석 곳곳에 방화복과 헬맷이 피자박스와 함께 뒹굴고 있어 말하지 않았어도 그가 소방관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20분 정도 달려 마을에 도착하여 우리를 그곳에 있는 경찰과 소방관들에게 소개하고는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다시 달려야 했기에 걱정이 됐지만 차에서 내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들 중 한 명이 성웅이의 상처를 보더니 앰뷸런스로 가자고 했다. 그는 치료를 해주면 58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하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농담이라고 말하며 정성스레 소독과 드레싱을 해주는데 보고 있는 내가 너무 감사했다. 힘든 하루 속에서 누군가가 우릴 보듬어 주는 느낌이었다.


치료가 끝나갈 때쯤 그는 우리에게 돌아와 차에 타라고 말하더니 델몬트까지 데려다주었다. 귀찮을 법한데도 신경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 연신 허리 숙여 인사를 드리니 소방관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거라고 말하는 그가 너무 멋져 보였었다. 


유라시아 횡단 때도 느꼈지만, 이 여행은 혼자서 이룰 수는 없는 게 분명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하나둘씩 보태어져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정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길 위에서 누군가의 소방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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