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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근 May 24. 2017

[북 아메리카 자전거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5

2017.05.22 날씨 흐림 & 소나기

뉴저지-> Budd lake

총 운행 거리 & 시간 : 108.97km / 8h 48m



  아침에 눈을 뜨니 피부가 너무 아렸다. 약을 세 알이나 먹고 잤지만 효과가 크게 없었다. 바람은 면도날을 움켜쥐고 다리 사이를 비 짚고 들어온 것만 같았다. 감기 몸살이 생긴 게 확실했다. 목구멍엔 커다란 사탕이 걸린 듯 침을 삼킬 때마다 거대해진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출발한 지 이틀 만에 몸져누울 수는 없었다. 종합 감기약 한 알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는 물과 함께 삼켰다. 지금 먹는 감기약이 효과가 있든 없든 그건 나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평소에 행운을 부르는 부적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이번엔 믿어야만 했다. 그렇게 출발을 마음을 먹고 주변에 풀어놓은 짐을 하나씩 다시 주워 담을 때 문득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시 시작을 하긴 했구나’


벌써 5개월 전의 일이라 아침 해가 뜰 때 가방을 꾸리고 매듭을 짓는 행위의 신비를 잊어가고 있었던 참이었다. 짐꾸러미를 결속하는 단순한 행위는 하루의 균형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매듭이 느슨해서도 단단히 해도 안되었다. 적당한 리듬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 적당함을 알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동반했지만 말이다.


  다시, 나는 약속을 지킬 필요도 사회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지도 않아도 되는 ‘삶’으로 들어왔다. 의무가 있다면, 매일 아침 이슬이 맺히는 순간과 붉게 혹은 푸르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다. 짐을 챙기고 자전거를 천천히 움직였다. 비는 부스스 내렸지만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그것보다 오늘은 어떻게 달려야 할지가 더 중요했고, 걱정이 됐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업힐을 마주 했을 땐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고 내 숨은 거칠어졌다. 자전거를 즐겨 타지 않았기에 기어비에 대한 감각도 없었고 무턱대고 허벅지의 힘으로 올라가려니 금방 힘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거대한 쇳덩이를 몸으로 지탱해서 올라가려고 애를 썼을 땐, 차라리 타고 올라가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사실, 타는 것도 힘들었고 끌며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온몸에 열이 금방 달아올랐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떤 방식이든 천천히 한걸음 씩 나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힘들 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과 숲 속에 난 길을 따라갈 때였다. 특정한 대가가 없는 단순 노동 같은 이 여행에 대해 욕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되었었다. 또, 밤이 어둑하게 드리운 산길을 달릴땐 그 고요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주변에 보이는 작은 집들은 늦은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지 작은 미등을 켜놓았고 덕분에 주변이 은은하게 빛이 드리워 저 몽환적인 풍경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시간 30분을 달렸고 또 달렸다. 몇 번이나 쉬었는지 셀 수는 없지만 어제 보단 20km를 더 달렸고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틀을 라이딩 동안 느낀 이 여행의 장점은 하루하루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신 이런 방식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는 생각뿐이다.


언제까지 자전거가 주는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때의 날들처럼 하루하루를 전전하면 이 여정 또한 자연스레 여행이 아닌 삶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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