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서

덤불은 곰이다. 로즈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

by 정혜원

늦은 겨울 보리밭의 보리가 싹을 틔웠다

바람결에 싹들은 한쪽으로 가르마를 가르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아무도 걸음 하지 않은 밭에 한 발자국 발을 내딛는다

겨우내 땅이 얼어 들린 뿌리를 밟기 위해

무거운 무게를 싣는다


이들이 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내딛는다

가능한 한 가볍게 종종걸음 한다

가벼워져라!

가벼워져라!


이것이 너를 살리는 길이고

너를 아끼는 마음이라지만

선뜻 내키지 않은 발걸음

미안한 마음


바람이 너의 어깨를 흔들며 지나간다

나는 그 가녀린 어깨를 스쳐야 한다

너를 살리기 위해

너에게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맡기며

자유롭게 춤추는 행렬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나는 잠시 내 일을 잊는다.


-성장하기 위해 내가 견뎌야 할 아픔(무게)은 무엇인가요?

-자유하다고 느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