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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4. 2020

취향은 그 자체로 장르가 될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초기작에 관한 끼적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살피는 건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둔 후기작(혹은 최신작)들을 떠올리며 초기작을 다시 볼 때 발견되는 의미와 느껴지는 쾌감들이 있어서다. 그의 연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에는 지금의 ‘타란티노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이미 담겨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1963~)는 10대 때부터 시나리오를 썼고 20대 때는 캘리포니아의 한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했다. 영화광이었던 그가 이 시기에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섭렵한 1960, 70년대의 수많은 웨스턴, 사무라이 영화들은 고스란히 확고한 취향이 되었다.

2003년과 2004년 각각 1부와 2부로 나뉘어 개봉한 <킬 빌>을 생각해볼까. <황야의 무법자>(1966)부터 <배틀 로얄>(2000)에 이르는, 셀 수 없는 인용이 영화 내내 꽉 차 있다. 당대를 풍미한 다국적의 액션 스타들이 주요 배역을 채운다. ‘빌을 죽이는’ 흔하디 흔한 복수극인 이 이야기에 살을 입히는 건 그 ‘이스터 에그’들을 찾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몰라도 감상에 지장은 없다. 주인공이 <사망유희>(1978)의 이소룡처럼 옷을 입고 나온다고 해서 이소룡의 영화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다. <킬 빌>은 그냥 그렇게 입은 주인공이 큰 칼을 가지고 차디찬 복수 여정을 완수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그의 영화 속 비속어와 폭력은 현실과 연결되지 않고 오직 판타지에 가까운 세계 안에서만 기능하기 때문에 아슬아슬 하면서도 대부분 오락의 선을 넘지 않는다.

그가 영화를 취향 이전에 학문으로서 접했다면 그의 숱한 걸작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덕질’이 더 이상 쓸모 없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정체성이 된 오늘. 바로 그 오늘을 사는 데 있어 필요한 건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잘 좋아하기’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의 오랜 취향은 대중 문화를 저급한 오락이 아니라 교양과 예술의 영역으로 만든다. 취향에는 종착지가 없다. 수많은 출발지만이 있을 따름이다.


영화 '킬 빌 vol.1'

*관객의 취향 '관취타임즈' 1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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