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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3. 2020

오늘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2020)를 보고

드라마 감상을 시작하며 초반부를 지나는 동안 이렇게 적었었다. "과거에 대한 의문을 안고 살아온 이의 세계가 다른 이의 세계에 들어와 그동안 삶에서 믿어왔던 가치들을 흔들어놓는다.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한 사람이 곧 한 세상이 되어간다. 두 세계가 결국은 하나의 중력으로 움직이게 되어버릴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하나의 중력이었다.


가상 세계,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가 감수해야 하는 불호응 중 하나는 바로 그 세계를 설명하는 일 자체에서 온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파식적'을 기반으로 하지만 <더 킹: 영원의 군주>(SBS, 2020)는 평행세계가 존재하는 원리를 쉽게 설명하거나 타임 패러독스를 극복 또는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공을 쏟지는 않는다. 이 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렵다'라고 이 이야기를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내게는 이것이 이성과 감정의 영역도, 과학과 비과학의 영역도 아닌 것으로 다가왔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두고 '배우가 저 상황을 연기하고 있군.'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어떤 의미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을 보면서도 중점으로 생각한 것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


하나는,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인 동시에 유년의 한 사건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중요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믿어온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는 일. 무슨 말을 해도 '반쯤 미친놈' 취급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납득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다른 하나는, 말도 안 된다고 그럴 리도 만무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눈 앞에서 조금씩 가능한 일이 되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은 일. 평행 세계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사람까지 있다면 그건 더 믿기 어려운 것이겠다. 자신을 처음 만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드디어 자네를 보는군."이라고 말했을 때의 당혹감이 그 긴 과정들을 지나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는 것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떤 사건을 되돌리고 그것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특정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이, 그로 인해 자기가 지금 알고 있는 미래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과연 어떤 마음의 판단을 내릴 것인가 하는 일.



'태을'(김고은)은 처음부터 경찰이 된 이유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용감해질 수는 없으니까, 내가 용감해지기로 했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태을'은, 처음부터 미지와 불명의 세계 앞에서 자신을 기꺼이 내던질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생이란 게 한치 앞도 알 수가 없지요.
그렇게 한치 앞도 모르면서 생을 다 걸고
도착하고 싶은 어딘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운명입니다.
옮길 운에 목숨 명.
내 모든 생을 걸고 옮기는 걸음이 바로 운명이니까요.
(9화, 부영군의 말)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얼핏 '대한민국 경찰'인 '태을'이 '대한제국 황제'인 '곤'(이민호)을 만난 이후 상징적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운명에 우연은 없다는 걸.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그중 어떤 운명은, 운명이 우릴 선택하기도 한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있었고 이런 일상도 잠시일 거란 슬픈 예감도 들었었는데, 나는 나를 선택한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한다."(8화) 같은 중요한 내레이션은 대부분 '곤'이 아닌 '태을'에게서 나온다.


김고은이 연기한 '태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을 지나 낯선 그 세계와 자신이 사는 세계 사이의 관계와 그 존재 이유를 '곤'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적극적으로 파헤친다. 나아가 '곤'이 대한민국으로 처음 발을 딛게 된 그 우연한 사건이 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대한제국에서의 어떤 음모를  비롯해 '곤'이 처해 있고 마주하게 될 더 큰 운명과 관련되어 있음이 '태을'과 '곤'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동안 점차 밝혀진다


"보통 이럴 땐 영원을 약속하던데. 우린, 오늘만 살자고?"
"응, 내일은 없어. 그래서, 난 오늘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손 잡은 거야. 오늘만 사니까."
(11화, 곤과 태을의 대화)


'태을'은 '곤'이 대한민국에 처음 왔을 때 했던 '오늘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뒤에 가 '곤'에게 다시 꺼내기도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몇 겹의 세계를 다룬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의 경험과 성장, 변화에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볼 때 필요한 것은 간단하다. 만파식적의 어떤 힘으로 인해 서로 열리게 된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이라는 세계가 각각 있다는 전제를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더 킹: 영원의 군주>는 회당 70분에서 80분 안팎의 시간으로 편성되었음에도 16부작으로 다루기에 어쩌면 방대한 세계를 구축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회당 방영시간에 24부작으로 편성되었던 <미스터 션샤인>(tvN, 2018)이 거의 모든 면에서 섬세하고 탁월하게 만들어진 것을 떠올리면 <더 킹: 영원의 군주>는 만듦새에 있어 비교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부 조연 캐릭터의 활용이 그러한데, '곤'과 '태을'을 중심으로 흘러가야만 했기에 다른 인물들에 더 무게를 싣지 못한 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하게 되기도 한다.


알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다른 시간 속에서 왔다는 걸.
아마도 아주 많은 것들을 결정한 어느 날일 것이다.
(11화, 태을의 내레이션)



영화를 볼 때처럼 드라마에 있어서도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난 뒤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일부 장면을 놓쳤다면 그 영화를 본 게 아니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처음 한두 회를 보고, 유튜브 등에서 몇 개의 클립을 보고, 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 시간을 쪼개어 여러 다른 책과 영화들을 동시에 감상해야만 했음에도,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조금 오랜만에 매 회차가 공개될 때마다 집중해서 본 한국 드라마였다. 사운드트랙을 오래 들었고 '영'과 '은섭'(우도환)처럼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에 공존하는 여러 같은 얼굴들을 오래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운명처럼 다가온 모든 일들 앞에 쉽사리 체념하지 않되 그것에 주저 없이 뜅어드는, 그 사람들의 하나하나의 걸음들을.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중력처럼 다가오는 '연'이라는 게 드라마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하고.


'영원할 수 없어도 기억할 수 없는 서로가 된대도 우린 운명처럼 만나게 될 거야'
(Zion.T, 'I Just Want to Stay with You' 중에서)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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