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ul 19. 2020

세 여성이 발화하는 하나의 스캔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 끼적임

But not the last.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에 관해 말하기 위해선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한 여러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의 사건 역시 '비밀유지'를 당사자 간 서약했으나 사후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정확히는, 사실 자체가 '비밀유지' 될 예정이었던 게 아니라 당사자가 합의 혹은 보상의 성격으로 받은 보상금의 액수가 비밀에 부쳐진 것이지만.) 영화가 기반으로 삼는 사건이 영화계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이 밝혀지기 얼마 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는 일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영화 안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들이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메긴 켈리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 혹은 양면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산타클로스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백인이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2013년 이미 한 차례 논란을 야기한 적이 있으며, 영화 속 사건이 있은 이후인 2018년에는 "백인이 흑인 분장(blackface)을 하는 것이 왜 인종차별인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으로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폭스 뉴스 퇴사 후 이적한 NBC에서도 퇴사했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 그레첸 칼슨(니콜 키드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좌측부터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메긴 켈리'를 비롯해 '그레첸 칼슨'(니콜 키드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등 세 명의 인물을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셋 모두를 서사 주체로 삼으면서도 특정 한 명을 '주인공'화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메긴 켈리'에 관한 언급들은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데 아주 중요한 쟁점은 아닐 수 있겠다. 반면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영화이지만 <위대한 쇼맨>(2017)처럼 실존 인물의 행적이 관객들 사이에서 제법 회자되었던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별개의 것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인물과 공과 과가 있다면 그것을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할 일은 아닐 것이다. 북미 현지에서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 대한 반응이 전반적으로는 호평이 우세하면서도 실제 사건의 내막에 관해 표면적인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는 요지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는 점은 이것과도 무관하지 않겠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에는 여성의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 혹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는 숏이 세 번 정도 등장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성의 시선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영화 전반의 흐름에 있어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영화의 시사회를 통한 첫 관람 당시에는 나도 그랬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오히려 관객에게 그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고자 의도적으로 넣은 숏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 예컨대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케일라'에게 한 바퀴 돌아보라고 말한 뒤 치마를 걷어올리라고 말하는 대목.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이 장면은 폭스 뉴스의 회장으로서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가지고 있는 '로저'가 자신의 방에 가만히 앉아서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며) 어떤 을 누리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케일라'가 원하는 것처럼 방송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나 야망만으로 '메긴'을 비롯한 선배 여성 앵커들이 방송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게 아님 역시 보여준다. '로저'가 머독 일가보다 위에 있지는 않지만 폭스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임을 언급하거나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에 많이 있지만, 그것이 '케일라'와 같은 인물의 어떤 순수한 출세욕과 직업에 대한 애정 같은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순간 차이는 극명해진다. 스캔들의 내막을 파헤치기 위해,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가해자가 그동안 무엇을 누려왔는지를 언급하는 일도 필요할 수 있다. 물론 남성적 시선이 담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나,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 전적으로 시선의 균형 감각과 세심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납득할 만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 장면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건 치마를 더 걷어올리라는 요구에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케일라'의 모습이기도 하고.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이제 살펴보고 싶은 점은 영화의 내레이터가 세 명이라는 점이다. '메긴', '그레첸', '케일라'는 저마다의 상황에서 각각 수시로 내레이터로 개입해 묘사 중인 상황 당시의 기분이나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는 감회, 혹은 해당 사건을 둘러싼 설명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적어도 초반부 '메긴'의 시점에서 폭스 뉴스라는 거대 집단이 돌아가는 모습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꽤 효과적이었으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고르게 묘사하는 동안 사건 전말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내지는 고발보다 겉핥기에 머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내레이션에 관해서는 별도의 글을 통해 이어서 다뤄야 할 것 같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국내 메인 포스터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Bombshell, 2019), 제이 로치 감독

2020년 7월 8일 (국내) 개봉,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출연: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존 리스고, 케이트 맥키넌, 앨리슨 제니, 리브 휴슨, 브리젯 런디-페인, 롭 딜레이니, 말콤 맥도웰, 마크 듀플러스 등.


수입: 그린나래미디어(주)

배급: 씨나몬(주)홈초이스


영화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스틸컷

*(★ 7/10점.)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예고편: (링크)

이전 04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여성 영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