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Sep 19. 2020

이 세상에는 죽지 않는 이야기가
정말 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조의 아이들』과 그의 평전

영화 <컨택트>(2016)에서 루이스가 딸 한나에게 해주는 말, "넌 막을 수 없어."(You're unstoppable.) 다가올 미래를 미리 기억하면서 거기 전념하고 뛰어드는 일, 운명을 끌어안는 일은 정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삶이 생명을 다하고 나서도 그 삶이 남긴 이야기가 10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생명력과 사랑을 유지한 채로 있다면, 그건 멈출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실로 '무적'인 것이겠다.


[invincible]

(adjective) too powerful to be defeated or overcome. 천하무적의, 아무도 꺾을 수 없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평전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와 소설 '조의 아이들'



루이자 메이 올컷이 세상을 떠난 지 45년이 지난 1933년 출간된 올컷의 평전 제목은 그래서 『Invincible Louisa』다. 이 책이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로 번역 출간됐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조와 로리를 결혼시키지는 않을 거예요." 올컷은 『작은 아씨들』 2부의 집필을 앞두고 편집자 나일스에게 이 조건을 관철시켰다. 다른 사람이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만을 쓰겠다는 그 결연함.


여러 차례 각색된 영화를 통해 흔히 기억하는 <작은 아씨들>은 정확히는 전체 4부로 구성된 『작은 아씨들』 시리즈의 2부까지의 이야기에 해당한다. 『작은 아씨들』 1부(1868)와 2부(1869), 『작은 신사들』(1871), 『조의 아이들』(1886)에 이르기까지, 올컷은 평생 부양과 헌신, 책임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삶을 살았고 자신은 뒷전인 채 가족을 위해 마음을 썼지만 오히려 그것을 창작의 연료로 삼으며 자기 이야기를 썼다. 그러니까 '조'의 이야기는 곧 올컷 본인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 <작은 아씨들>(2019) 서두에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라는 올컷의 말이 인용된다. 그러나 이는 불행을 행복으로 포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씀'과 '삶'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겠다는 말이다. 가령 '에이미'와 '로리' 사이의 일은 올컷 본인이 스위스에서 만난 폴란드 청년이 모델이지만 '조'와 맺어지는 '프리드리히'는 그의 현실 속 모델이 불분명한데, 물론 이것은 올컷 본인이 평생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가 동생의 병간호를 돕기 위해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은 올컷 본인의 유년에서 비롯했다.


소설 '조의 아이들'과 영화 '작은 아씨들'의 엽서들


물론 소설의 이야기가 현실을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가령 <작은 아씨들>에서 '조'에게 출판사 편집자는 "여성 캐릭터를 결혼시키거나 죽이"라고 말했지만 올컷의 편집자 나일스는 미혼 남성의 견해가 중요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고 여성 조카들에게 직접 올컷의 글을 읽혔다.


"『작은 아씨들』은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었으며 복잡하지 않은 데다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려 하지 않았는데, 이런 책을 소녀들이 그토록 기다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코닐리아 메그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김소연 옮김, 2020, 윌북, 183쪽)


"따뜻한 마음을 지닌 루이자는 본 적도, 이름을 들은 적도 없는 수많은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코닐리아 메그스, 앞의 책, 202쪽)




"“얘야. 그건 옛날 생각이란다. 바뀌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성의 시대가 다가왔다고 생각한단다. 남자아이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 이제는 여자아이들도 뒤처지지 않아서, 먼저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 마치 씨는 그 자리에 있는 여러 젊은 여성들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이 여성들은 이곳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부류였다."

(루이자 메이 올컷, 『조의 아이들』, 김재용&오수원 옮김, 2020, 윌북, 569쪽)


『조의 아이들』은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 시리즈 중 3부와 4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번역 출간한 책이다. 정확히 영화 <작은 아씨들>의 결말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플럼필드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영화가 끝난 뒤 그 영화가 선사하는 영화를 한 번 더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에이미'가 '조'에게 해주는 말.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올컷은 아마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이 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작은 신사들』과 『조의 아이들』 출간 사이 15년이 걸렸듯 소설 3부와 4부의 이야기 사이에도 10년이 넘는 간격이 있다.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듯, 계속 읽는 일도 그것을 더 중요하게 만든다.


"바에르 교수와 조의 곁을 아이들의 수많은 팔이 감싸 두 부부의 얼굴 절반이 가려질 지경이었다. 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작은 화단 여러 곳에 각기 아름답게 꽃을 피운 모습 같았다. 사랑이라는 꽃은 어느 땅에서도 잘 자라기에, 가을 서리나 겨울 눈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달콤한 기적 속에서 1년 내내 아름답게 만개한 그 꽃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하고 있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 앞의 책, 524쪽)


소설 '조의 아이들' 중에서


영화에는 '조'가 '베스'에게 조지 엘리엇의 소설 『플로스 강변의 물레방아』 한 대목을 읽어주는 해변 신이 있다.  “우리가 이 땅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음은 이 땅에서 보낸 유년 시절 때문이며,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따던 그 꽃들이 봄마다 이 땅에서 다시 피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것이 자명하고 자명하기에 사랑받는 이 달콤한 단조로움은.” 올컷이 '조'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낸 이 생생한 연대기는 책으로부터 시작해 책으로 계속되고 책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자매들이 엄마로부터 선물 받는 『천로역정』은 올컷의 아버지인 브런슨이 열렬히 사랑한 책이기도 했다. 브런슨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올컷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고 이는 결국 쓰는 일이 사는 일로부터 비롯할 수 있음을 충실히 증명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작은 아씨들'(2019) 스틸컷


영화 속 시얼샤 로넌이 연기한 '조'가 "유년 시절이 끝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대목을 생각하며, 나는 "자기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의 유년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썼었다.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든 시절마다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레타 거윅은 원작에 대해 "소설 속 언어가 너무나 신선하고 생동감 넘쳐서 특별히 각색할 것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레타 거윅과 시얼샤 로넌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조의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땅에서도 천변만화하는 사랑처럼, 어느 시대에나 읽히고 이야기되며 계속해서 'invincible'한 채로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조의 아이들』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후기를 작성했습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소셜 미디어의 명과 암 분명히 이해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