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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31. 2020

연말연시를 위한 사적인 영화 재생목록 6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넷플릭스에 접속할 때마다 '뭐 볼까' 하고 그 '뭐'를 찾느라 10분 20분씩 헤매는 누군가를 위해 슬며시 꺼내보는 연말연시를 위한 사적인 영화 재생 목록 여섯 가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것 세 편과 아닌 것 세 편을 각각 골랐다. 이 '연말연시를 위한'이라는 기준은 물론 '내 마음대로'다. 의미부여에 따라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혹은 뭔가를 앞두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01. 무기력을 딛고 일상을 응원하는 주문: <그래비티>(2013)


"놓을 줄도 알아야 해."(You have to learn to let go.)라는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그래비티>는 착륙과 발사가 다르지 않다고, 놓는 것과 붙잡는 것 역시 서로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욕 없는 삶을 기계적으로 살던 주인공 '라이언'이 우주에서 겪게 되는 재난의 체험은 모순적이게도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되는 주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듣지 않는데 '라이언'은 혼자 중얼거린다. "앞으로 10분 안에 불 타 죽을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모험담을 들려줄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끝내주는 여정이 될 거야." 이 영화가 당신의 일상을 응원해줄 거라 믿는다.


영화 <그래비티>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그래비티' 스틸컷

02. 살다 보면 그게 꿈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잘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경험도 해본 게 없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회사의 폐업 위기 앞에서 자신이 평소에 해왔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모든 것이 처음인 경험을 이어간다. 보드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누비고 험준한 히말라야 중턱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논다. 귀인처럼 등장한 유명 사진작가는 정작 자기가 찍고 싶은 대상이 나타나자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여행의 추억이 간절한 사람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작품. 어느 멘토님의 "Do First, Dream Next"라는 말을 주문처럼 떠올리게 되는 영화. 실제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북미 지역 포스터에는 'Stop Dreaming, Start Living'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컷

03. 우리 관계는 과연 잘못됐을까: <결혼 이야기>(2019)  


처음에는 서로 갈라서기 위해 상대와 일종의 분쟁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결혼 이야기>(2019)의 두 사람은 그러니까 '상대와 분쟁을 해야 하는 자신'과 또 다른 반목을 한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두 사람의 영화 이후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결혼 이야기>가 그려낸 멀지 않고 가까운 평행선은 꽤 오래도록 서로 성실히 얽혀 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랑의 수선'이라는 말이 반드시 관계 회복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수선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결혼 이야기>는 한 가정의 풍경을 그렇게 연민과 품위를 갖고 바로 옆에서 관찰한다. 베개가 묵묵히 담아냈을 각자의 눈물과 숨소리를 잊지 않은 채로.

영화 <결혼 이야기>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04. 이불속에서 귤 까먹으며 보고 싶은 이야기: <작은 아씨들>(2019)  


<작은 아씨들>(2019)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내 일상이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그 소중함을 예찬한다. 사소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You look beautiful."이라고 했던 말에 단어 하나, 동사 하나를 바꿔 "You are beautiful."이라고 고쳐 말하는 일. 이런 말도 나온다. "우리가 이 땅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음은 이 땅에서 보낸 유년 시절 때문이며,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따던 그 꽃들이 봄마다 이 땅에서 다시 피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것이 자명하고 자명하기에 사랑받는 이 달콤한 단조로움은."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변의 물레방아』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본 당신과, 저 사소하고 단조롭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관해 오래 이야기하고 싶다. 아. 무엇보다, 영화의 원작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감사하게도, 난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난 일을 찾아내서 기운을 차릴 수 있어."


영화 <작은 아씨들>(2019)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컷

05. 덕질은 영화가 끝나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미스 아메리카나>(2020)  


얼마 전 테일러 스위프트의 아홉 번째 정규 앨범 'evermore'가 발매됐다. 발매 열몇 시간을 앞두고 테일러 스위프트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깜짝 발표를 한 것인데, 이건 불과 4개월 전에 나온 8집 'folklore'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을 위한 선물, 짜잔! 하고 정규 앨범을 몇 달마다 툭툭 내어놓는 아티스트가, 게다가 그 정규 앨범의 퀄리티와 섬세함이 어마어마한 아티스트가 세상에 또 얼마나 있나. <미스 아메리카나>(2020)는 넷플릭스에 있는 여러 훌륭한 '아티스트 조명 다큐멘터리'들 중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비슷하게는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2018)도 훌륭한 추천 리스트에 넣고 싶다.) 내게 그들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건, 분야의 정상에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진심인 이들 이어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좋아하는 것들을 아끼고 더 깊이 좋아하는 일이 과연 삶을 구할 수 있을까? 내게는 거의 절대적으로 'Yes'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심규선과 백예린의 새 앨범을 나란히 들으며 내년 개봉 예정 영화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는 아름답고 이상한 12월이었다.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 스틸컷

06.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온기가 있다: <밤에 우리 영혼은>(2017)


어두운 밤, 불 켜진 어느 집 앞에서 여인이 서성이고 있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준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애디(제인 폰다)가 이렇게 말하면서 밤의 이야기는 펼쳐진다. "괜찮으시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 그냥,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식과도 떨어져 혼자 사는 두 사람은 오랜 이웃이지만 실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다. 말하자면 말동무가 필요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2017)은 71세에 타계한 미국의 소설가 켄트 하루프의 원작을 각색했다. 차분하고 절제된 채로 이끌어가는 소박한 이야기에, 쉽게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노련함까지. <그린 북>(2018)의 대사 중에도 "외로워도 먼저 손 내미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는 말이 있었다. 특별하게 두드러지는 갈등이 있는 것도, 노년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이야기도 아닌 <밤에 우리 영혼은>은 제목 그대로, 외로운 영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로 긴 밤을 채워가는, 수더분하고 무구한 영화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넷플릭스 감상: (링크)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컷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영화 글쓰기 온라인 수업 1월반: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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