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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30. 2020

레디, 플레이어들: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것은 왜 '망겜 심폐소생 현실 어드벤처'인가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들도 언급됩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2003년 출시된 넥슨의 MMORPG ‘메이플스토리’에 등장하는 NPC(Non-Player Character) 중 한 명인 ‘나인하트’가 유저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분명히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 당신의 용기, 당신의 선택, 당신의 여정을요.” 게임 내 등장하는 던전 ‘차원의 도서관’에 얽힌 에피소드에서 그는 모두가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며 위와 같은 말을 유저들에게 전한다. ‘차원의 도서관’은 게임 설정 상 세상의 모든 지식과 기록들이 마법의 힘으로 스며드는 곳인데, 말 그대로 이것은 어떤 차원을 넘어선 저 세계에서 게임이라는 상상으로나마 가능한 것이겠다. 다시 말해서, 기록의 힘이란 한계가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담기에는 모자라고 그것의 분량 자체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제대로 범주화해놓지 않으면 찾을 수도 없을 만큼의 것이 되기도 한다. 아닌 것이 또 얼마나 있겠나 싶겠지만,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온라인 게임도 종래에는 ‘서비스 종료’의 순간을 맞이한다. 시장 내 경쟁자와 대체재는 넘쳐나고 인기와 유행은 강물과 계절처럼 흘러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2019)의 감독 박윤진은 이미 그 물결이 저 멀리 지나간 지 한참이 되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자리에 남아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1999년 출시된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와 그것을 ‘아직도’ 플레이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영화 안에 잠시 지나가듯 등장하는 ‘메이플스토리’의 저 인용이 영화가 끝난 뒤에는 어쩌면 작품 전체를 헤아리는 데에 하나의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2020년에 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포스터에는 ‘망겜 심폐소생 현실 어드벤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망겜’ 이야기이자 ‘심폐소생’ 이야기인 동시에 ‘현실’ 이야기이면서 ‘어드벤처’ 이야기다. ‘일랜시아’는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가고 난 뒤 제대로 운영, 관리되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버려지다시피 했다. 16년 차 ‘일랜시아 유저’인 감독은 게임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이것은 혼자의 의문으로 그치지 않고 답을 구하기 위한 과정을 촉발시켰다. 영화에서 그 과정은 게임 안과 밖에서 따로 혹은 동시에 진행된다. ‘마님은돌쇠만쌀줘’라는 게임 내 길드의 장이기도 한 감독은 게임 안에서 만나는 (자신의 길드 멤버를 포함한) 다른 유저들에게 채팅으로 위의 질문을 하는가 하면, 게임 밖에서도 온라인에서 친분을 쌓았으나 오프라인으로는 몇 번 만나본 적 없는 길드 멤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 각자의 답을 듣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저사양 컴퓨터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임이 ‘일랜시아’ 외에 없어서, 또 어떤 사람은 최신 게임들에 비해 눈이 덜 피로해서, 또 어떤 사람은 옛 추억을 붙잡고 그것을 부흥시키고 싶어서 라고 응답한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포착하는 이 문답들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게임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화두로 이어진다. 학원을 여덟 군데씩 다니며 청소년기부터 경쟁 사회에 내던져졌던 이야기,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게임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는 부업을 해서 자취방 월세를 내는 이야기, 취업 준비 등의 과정에서 현실적인 여러 좌절을 겪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는 투자 시간이나 비용에 비례해 그에 따른 보상이 돌아오기 때문에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 등은 현실 속 문제들에 무기력해지기 쉬운 현대인들의 한쪽 구석에 간직돼 있을 어떤 감정의 나선을 관통한다. 노력에 따른 결과가 보장되어 있어서, 유년의 추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게임 내에서 형성된 커뮤니티가 소중해서, 사람들은 ‘망겜’이 되어버린 ‘일랜시아’의 세계를 각자의 이유들로 떠나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감독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랜시아 왜 하세요?”라는 물음은 감독에게 ‘그렇다면 나는 왜 그것을 할까’로 돌아오며 관객에게는 “당신은 게임을 왜 하나요(혹은 했나요)?”라는 화두를 던진다.


유명 게임 유튜버들의 영상에서 언급 및 묘사되는 ‘일랜시아’의 현재 모습과 IMF 당시의 뉴스 자료화면 등의 활용은 다소 무난하고 편의적으로 비칠 여지도 있지만 이 점은 게임-현실의 관계와 더불어 게임이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오락거리에만 그치지는 않는다는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시선과도 맞물려 이물감 없이 다가온다. 이 게임-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과 그 원작 소설이 이미 잘 이야기 한 바 있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어니스트 클라인 본인이 원작 소설을 썼고 그것은 자신의 소설 데뷔작이다. 그리고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박윤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내가 오아시스를 창조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몰랐지. 나는 평생토록 두려워만 했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단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현실은 실제 삶이니까. 내 말 알겠느냐?”

 -어니스트 클라인, 『레디 플레이어 원』, 2015, 전정순 옮김, 에이콘출판, 527쪽.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게임 개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몰라 은둔하며 스스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음악,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집대성하여 게임 기반의 가상 세계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2045년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이 ‘오아시스’가 세계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식량 파동과 에너지 위기 등으로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의욕을 잃고 가상 세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식사와 수면, 용변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영위할 수 있는 ‘오아시스’의 세계는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회자되었던 ‘일랜시아’를 고스란히 연상케 한다. 또한 물가 상승이나 취업난과 같이 고단함과 무기력감을 주는 생존 요소들로부터 벗어나 ‘일랜시아’와 같은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오아시스’에서 거의 24시간 지내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순수한 ‘덕질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의 가치와 그것이 서로의 취향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었을 때 일어날 법한 일을 현실-가상현실의 관계를 통해 보여줬다면,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이야기는 개발자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그 가지를 뻗어간다. 여기에는 상술했던 게임-현실의 관계가 중요하게 개입한다. (영화 제목부터 이미 게임 속 캐릭터 이름 ‘내언니전지현’과 감독 ‘나’를 나란히 배치해 그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게임-현실의 관계는 어떻게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가.


먼저 짚어볼 수 있는 점은 장면과 장면을 나란히 이어 붙이는 것을 통해 부연 설명 없이 이미지 자체로 관계를 정립한 것이다. 영화에는 감독(이후 종종 감독 대신 ‘내언니전지현’ 혹은 ‘나’로도 지칭할 것이다)이 장으로 있는 길드의 멤버들이 펜션을 잡고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등의 시간을 보내는 ‘정모’ 장면이 나오는데, 펜션 내에 있는 작은 수영장 안에서 이들이 노는 모습은 직전 장면에서의 게임에 접속한 길드원들이 게임 내 해변에서 수영하는 모습 바로 다음 컷으로 이어진다. 길드 멤버 ‘레렐’을 만나러 지방에 내려간 감독은 그로부터 직접 그린 그림을 생일 선물로 받는데, 이것 역시 ‘레렐’이 게임 내에서 ‘내언니전지현’에게 게임 아이템을 선물로 주는 모습과 나란한 이미지로 비친다. 펜션 안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길드 멤버들의 모습이 게임 내에서 한 프레임 안에 모인 채 ‘스크린샷’을 찍는 모습과 연결되는가 하면, 태풍 ‘소니’의 상륙 당시 풍경이 게임 내에서 길드 멤버들이 뗏목을 타고 격랑이 몰아치는 바다를 떠다니는 모습과도 맞물려 있다. 이렇듯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장면의 직관적인 연결만으로도 영화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영리하게 보여준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좀 더 작품 전반을 근본적으로 통과한다. 흔히 사람들은 주변 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기 게임을 선호하기에 운영자 없이 방치된 게임을 찾아서 할 동기는 적을 것이므로, 비인기 게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거기 많은 추억과 애정을 갖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일랜시아’의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감독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장점 없어요”라 답하는 한 길드 멤버의 이야기가 이를 한편으로 대변한다. 영화 VOD 한 편보다도 낮은 하드디스크 용량을 차지하는 철 지나고 낡은 게임에 어떤 장점이나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켜켜이 쌓여나간 지난 순간들이 아직 녹아 있는 게임에 좀 더 머무르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머무르는 것은 무기력한 것인가.


몇 년째 업데이트 없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태인 ‘일랜시아’에는 각종 버그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들이 난무했는데, 어떤 매크로 프로그램에는 게임 이용 편의를 증대시키는 기능들도 있어서 게임에 남은 유저들은 그 일부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유저들에게 피해를 주는 악성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 중 일부마저 떠나갔다. 정상적인 게임 이용에 지장을 주는 상황인데 제재 및 해결을 해줄 운영진이 사실상 없으니 그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감독이 주목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유저들이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게임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겠으나, 유저들은 네이버 카페 등의 커뮤니티에 성토만 할 뿐, ‘일랜시아’의 개발/유통사인 넥슨에 문제를 알리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는 일부 유저들이 편의성을 위해 활용하고 있던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같이 금지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고단한 현실에서의 무력감이 게임에까지 전이되었다는 점으로도 보인다. 일례로 한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은 그것을 활용하는 특정 캐릭터를 게임 내에서 만나는 (프레임 내 일정 범위 안에 들어오는) 다른 유저들의 게임 접속을 종료시켜버리는 역할을 했는데 유저들은 그 캐릭터를 게임 내에서 피해 다닐 따름이었다.


결국 행동에 나선 것은 ‘내언니전지현’ 그리고 ‘나’였다. 넥슨의 고객센터에 직접 찾아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신고한 것. 며칠 뒤 ‘일랜시아’ 측에서는 해당 문제를 수정한다는 공지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그동안 해당 문제를 넥슨에 누구도 제대로 건의하지 않았으리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내언니전지현’은 게임 커뮤니티에서 유명 인사가 된다. 게임 내에서 만난 유저들은 그에게 연신 ‘고맙다’라는 채팅을 날린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위의 에피소드와 함께 영화에는 감독이 넥슨의 개발자 노조 ‘스타팅포인트’(게임에서 처음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유저가 보게 되는 공간을 지칭하는 말) 회원들을 찾아가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다만 인디포럼과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버전에서는 이 이야기가 약간은 사족처럼 비치는 면도 있다.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았던 문제를 유저가 직접 나서 결국 게임 회사를 움직이게 했다는 측면에서 게임업계에서 선도적으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이끌어낸 ‘스타팅포인트’ 노조의 활동은 동떨어진 화두가 아니지만 그 등장 시점과 분량 안배 등에 있어서 균형감이 아쉬웠다. 그러나 약 16분 정도의 상영시간이 추가된 86분의 극장 개봉 버전은 이 대목에서 알맞은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진짜 이야기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말해볼 수도 있을 정도다. 이것은 영화-현실의 관계와 게임-현실의 관계가 서로 만나서 게임-영화의 연결을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에 이른다. (‘일랜시아’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게임들의 화면 비율은 고전 영화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영화제 후 개봉에 이르기까지 몇 개월 동안의 추가 컷 편집 및 후반 작업은 주로 ‘게임 내에 머무르는 이야기’보다 ‘게임과 현실을 서로 연결해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를 보강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 가령 걸그룹 ‘아이즈 원’의 ‘라비앙로즈’라는 곡을 배경음악 삼아 게임 내에서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 멤버들이 군무를 보여주듯 무리 지어 움직임을 펼치는 장면들을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한 대목은 영화제 버전(이하 ‘A’)에서 극장 개봉 버전(이하 ‘B’)으로 오면서 그 분량이 축소되었다. 반면 B에는 게임 유튜버들이 ‘일랜시아’를 ‘망겜’이라 언급하는 자료 영상들이 추가되었고 감독이 넥슨 고객센터를 찾아가는 장면 일부가 영화 초반으로 그 편집점이 당겨졌다.


추가된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은 주요 영화제들을 통해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화제가 되고 난 뒤 ‘일랜시아’에 일어난 변화와 넥슨 측의 움직임들을 담는 데 할애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랜시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포착한 넥슨은 12년 만에 게임 내 여름맞이 이벤트를 진행했고, 감독을 중심으로 유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간담회까지 마련했다. 이처럼 게임 개발사의 움직임을 일부 추가함으로써 ‘스타팅포인트’ 노조원들이 등장하는 대목 역시 A에서보다 B에서 더 현실 세계 화두를 충실히 담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메인 포스터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망겜’‘심폐소생’‘현실’‘어드벤처’를 담는 균형 감각 역시 주로 넥슨 측의 움직임들을 담아낸 방식과 결과물의 변화로부터 비롯하는 것처럼 보인다. 넥슨의 게임 개발을 총괄했던 전 임원을 만나는 대목에는 게임업계의 판도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 추가되어 있다. 요컨대 온라인 게임 산업이 본격적, 실질적으로 태동 및 발전하기 전이었던 1990년대 후반에는 사업성의 여부보다 개발자 스스로가 즐겁게 임할 수 있는 여러 기획과 시도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반면 게임 업계의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점차 변화했다는 것. 월정액 요금제 대신 추가 과금을 유도하는 부분 유료화 방식이 정착된 것과 3D를 위시한 기술적 변화 등이 이와 함께 다뤄진다. 이는 ‘일랜시아’가 감독을 비롯한 사용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개발자 입장에서도 이미 과거의 산물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는 점을 내포한다. (이 점은 ‘심폐소생’에 대해 완전한 낙관을 하지는 않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B에서 새로 추가된 요소 중 특히 영화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대목은 과거 ‘일랜시아’의 초기 개발을 담당했던 개발자 ‘아레수’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단지 게임에 불과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를 어떤 세계 안에서 어떻게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지에 관해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회고한다. 가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생겨나는 인간관계와 그들 간의 교류는 ‘진짜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보다 다소 앞서 영화에는 감독이 한 유저를 만나러 가던 중 ‘나는 게임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다는 두려움에 캠코더로 이것저것 정보를 남겼었다.’라는 언급이 있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잘 알지 못하는 남성과 단 둘이 대면한다는 사실 자체가 줄 수 있는 우려가 일차적으로 포함돼 있지만, 길드 멤버를 포함한 여러 ‘일랜시아’ 유저들을 만나러 가던 당시의 감독에게는 여전히 ‘내언니전지현’과 ‘나’ 사이, 그러니까 게임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어떤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진짜인 것이면서 동시에 진짜가 아닐 수도 있는 것. 반면 ‘일랜시아’ 초기 개발자이기 이전에 열렬한 게이머였던 ‘아레수’에게는 게임 내에서 다른 유저와 일정한 시간에 특정 (게임 내)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인터넷이 통신 사정으로 끊어진 것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며 전전긍긍했을 만큼 게임과 현실이 서로 하나로 통과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때 결국 용산전자상가로 황급히 뛰어가 새 모뎀을 구입해왔다고 한다.) 물론 온라인 내에서의 만남과, 온라인-오프라인이 이어지는 만남을 같은 범주에서 논하기란 한계가 있겠으나 이는 한편으로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성인인 채로 온라인 게임 유저가 된 세대와 2000년대 초반 유년인 채로 온라인 게임 유저가 된 세대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도 다가온다. 이 점이 특수하게 언급될 만한 것인 이유는 오늘날 PC 게임보다 바쁜 시간을 쪼갤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이 주류가 되고 MMORPG 세계 내에서도 ‘자동사냥’과 같이 즐거움보다 효율과 편의를 고려한 기능들이 대거 추가된 점 때문이다. 현 세대의 게임이 ‘일랜시아’ 세대의 게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언니전지현’을 플레이하는 ‘나’는 두 세대를 연이어 경험한 시선을 통해서 ‘일랜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관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짚기 위해 ‘이스터에그’를 말해야만 한다. ‘아레수’는 특수한 프로그램을 써야만 보이는 어떤 문구를 게임 내 곳곳에 심어놓았다. ‘아레수 바보 맞지?’라는 문구가 쓰인 게 그것이다. 성공할지 어떨지도 모른 채 오직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개발하고 싶은 것’을 개발한 그를 누군가는 돈 벌 줄 모르는 바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발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아니 없을 수도 있는 이스터에그를 게임 내에 숨겨놓는 마음은 오직 개발자의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한다. 앞서 언급한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영화 속 여정의 중요한 단서는 개발자 ‘할리데이’가 좋아했던 ‘어드벤처’라는 1970년대 게임의 이스터에그에 숨어 있다. ‘어드벤처’의 개발자 워렌 로비넷이 특정한 위치에서만 찾을 수 있는 숨은 공간에 ‘어드벤처는 워렌 로비넷이 개발했다’라는 문구를 넣어둔 것.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아레수’가 ‘일랜시아’에 심은 이스터에그를 ‘내언니전지현’ 그리고 ‘나’가 발견하는 순간, 이 ‘어드벤처’의 챕터 하나가 새로 열린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포착하는 ‘현실 속 무기력’과 ‘게임 속 즐거움’의 관계라는 것은 게임 유저와 개발자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게임에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에 대해 건의하지 않는 유저와 직접 게임 개발사를 찾아가는 유저. 하던 게임을 쉽게 그만두고 다른 인기 게임을 찾아가는 유저와 16년이 넘도록 ‘망겜’에 남아 있는 유저. 그리고, 경제와 효율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개발자와 ‘돈이 되는 기획’을 만들어야 하는 개발자. 현실 어드벤처를 포기한 채 게임 속으로 젖어들었던 수많은 유저들은 결국 다시 게임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거나 또 다른 게임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어떤 경우 누군가에게는 ‘망겜 심폐소생’이 게임 안과 밖을 오가며 여정의 중요한 동기로 자리 잡는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아레수’에게 ‘아레수가 천재라는 소문이 있던데...’라는 말풍선을 게임 NPC의 옆에 합성해 넣은 액자를 선물함으로써 게임과 현실을 연결한다. (‘스타팅포인트’ 노조에게도 비슷한 선물을 전달하는 대목이 앞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시도는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다큐멘터리로서 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이야기 마무리하기’의 모범적 장면으로 읽힌다. 애초 이것은 심폐소생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내언니전지현’(게임)과 ‘나’(현실) 사이의 관계를 찾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게임과 현실의 관계는 유저 개인이 처한 삶의 상황과 게임을 즐기는 목적, 유저 커뮤니티와 개발자 및 개발사 사이의 관계, IMF 등 사회적 변화와 게임업계의 트렌드 변화 사이의 관계 등 여러 층위에서 나란히 연결 지어 살펴볼 수 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이와 같은 단계들을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 안에 직관적인 이미지와 내레이션, 인터뷰이-인터뷰어의 상호 작용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출시된 지 이미 20년이 넘은 ‘일랜시아’는 언젠가 ‘서비스 종료’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고, 더 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것이다. 그러나 (‘일랜시아’와 마찬가지로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서 ‘나인하트’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고, 그렇다면 유저와 개발자의 용기와 선택과 여정은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현실 세계를 낙관하지도 게임 세계에 갇히지도 않으면서 삶에서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중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으로. 그리고 ‘16년 차 일랜시아 유저이자 길드마스터이자 영화 전공자’라는 감독 자신만이 지닌 고유한 세계관을 통해서. ‘일랜시아 왜 하세요?’로 시작했던 물음은 ‘일랜시아가 없어진다면’으로 향하고, 이는 ‘없어지더라도’라는 가정과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앎을 포함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감독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여러 길드 멤버들을 실명이 아닌 ‘로렐’, ‘공아지’, ‘짬돌잉’, ‘쿠이쭈’ 등 캐릭터 이름으로 소개한다. 감독 본인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언니전지현’으로 소개 및 언급되는 것은 물론이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이미 처음부터 가상의 것이라고 해서 그게 가짜인 것은 아니라는, 나름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타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확인하는 일은 다르다. 그러니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엔딩에 이르러 ‘일랜시아’ 홈페이지에 쓰인 게임 세계관을 인용하는 것일 테다. ‘고대인들은 어둠의 별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마지막 희망이었던 프로토 타입과 살아남은 몇몇 소수 고대인들의 영력을 하나로 하여 일랜시아를 창조하고 이곳으로 이주를 합니다. 언젠가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아마 거기에는 이런 말이 숨어 있을 것 같다. ‘플레이어’들, 레디! 게임과 영화라는 ‘차원의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내언니전지현과 나>의 관객에게 그렇게 열린다.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영화 글쓰기 온라인 수업 1월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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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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