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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6. 2018

'좋아하는 것'을 순수히 좋아한 자들의 취향 공동체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와 소설 함께보기

#01. 이식 - 원작 소설의 이른바 '초월 각색'


이 영화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에 관해 몇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어니스트 클라인의) 원작 소설을 이렇게 영화로 옮겨낸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일반적으로 소설은 크게 영화화를 고려하지 않고 쓴 소설과 시작부터 그 고려를 함유한 채로 쓰인 소설로 나누어볼 수 있겠는데(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영화화 판권이 거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전자에 속한다. 이 소설이 데뷔작인 어니스트 클라인은 그저 쓰고 싶은 대로 '휘갈겼'을 뿐이다. 그래서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영화와는 다르게 주는 고유한 재미를 떠나서, 이 소설을 문학적으로 아주 잘 쓴 소설로 칭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방대한 대중문화 레퍼런스들을 아우르기 위해 화자인 '웨이드 와츠'의 후일담 형식을 택한 데에 그치지 않고 그는 매 순간 무슨 영화(와 드라마와 게임과 음악)가 사용되고 있는지 아주 상세히 독자에게 설명해준다. 영화에 비해 소설은 '던전 앤 드래곤'부터 시작해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등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 모를수록 종종 흐름을 놓치거나 몰입도가 저하되기 쉽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손길을 거쳐 영화로 넘어오면서 ('제임스 할리데이'가 집착한) 1980년대에 치우쳤던 대중문화 레퍼런스는 2010년대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고 이른바 '덕력'을 관객에게 조금 덜 요구해도 괜찮게 된 것이 바로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옛날 비디오게임을 할 때면 언제나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삶이 우울하게 느껴지거나 좌절감이 밀려들 때 '플레이어 원'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눈앞에 놓인 화면 속에 픽셀로 표현된 무자비한 맹공격에 집중하게 되면서 모든 걱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 게임 속 2차원 세계에서 삶은 단순했다. 단지 기계와 나의 싸움이다. 왼손으로 움직이고 오른손으로 쏘면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라.

(어니스트 클라인 지음, 전정순 옮김, [레디 플레이어 원], 2015, 에이콘출판, 24쪽.)


#02. 추억 - 게임의 경험이 남긴 것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 말고 잠시 영화 밖으로 나와 컴퓨터 게임을 경험하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집에는 사촌 형이 조립해준 컴퓨터가 생겼고, 몇 년을 쓰다가 꽤 비싸고 사양 좋은 컴퓨터로 새로 장만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접했다. 당시 PC 업체들마다 경쟁적으로 '스타크래프트'나 '타이베리안 선' 따위의 RTS 게임을 번들로 설치해주곤 했는데, 내가 쓰게 된 컴퓨터는 업체에서 사전에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해준 게 아니라 아예 정품 패키지를 얹어줬다. (그때 포함돼 있었던 열세 자리의 CD 키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실시간 온라인 대전 시스템인 '배틀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기가 전국에 PC방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시기였기에 나 역시도 반 친구들과 반 대항, 가끔은 학교 대항으로 3:3 혹은 4:4 대전을 했다.


1998년 발매된 블리자드(Blizzard)사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


그때의 중요한 기억은 게임 자체보다 패키지에 포함된 각 종족별 유닛들의 가이드와 게임 내 캠페인에서 진행되는 스토리였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도 잠시 등장하는 '질럿'(프로토스 종족의 기본 근접 전투 유닛)과 같은 각 유닛들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 생김새 같은 것들을 나는 읽고 또 읽었다. 각 종족들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플레이할 수 있는 캠페인 미션은 이미 클리어하고 나서도 또 했다. 이후 같은 제작사에서 나온 '워크래프트 3'는 물론이고, 국산 RPG의 한 시대를 풍미한 소프트맥스 사의 '창세기전' 시리즈, 중간에 제작사가 도산하고 다른 회사에서 속편이 나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HOMM'(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 등 내가 빠져들었던 게임들의 공통분모는 게임성 자체보다 스토리였다. '창세기전 3 파트 2'의 '살라딘'과 '데미안'은 언제나 '달'을 앞에 두고 뫼비우스의 우주를 논했고, '창세기전 3'의 '철가면'은 라이트블링거를 동료들에게 맡긴 채 앙그라마이뉴를 향해 뛰어들었으며, '워크래프트 3'의 '아서스'와 '일리단', '마이에브' 등 주요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여기다 상세히 서술하지는 않겠지만 코에이 사의 '삼국지'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주요 게임 넘버들과 소설 [삼국지]의 (이문열, 정비석, 황석영 등) 각 번역본을 섭렵하게 만들었다.


2000년 발매된 소프트맥스(SOFTMAX)사의 롤플레잉 게임 '창세기전 3 파트 2'


한 번 끝판왕을 정복하고 나면 질려서 다른 게임을 찾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아니었다. 알면서 다시 하는 게임이 좋았고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버그라든가 치트키 같은 것들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게임의 '덕후'가 된다는 것은 그걸 반복해서 많이 플레이한다는 의미이고, 또 그 게임에 대해 잘 안다는 의미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제임스 할리데이'와 '웨이드 와츠'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분야가 '오아시스'의 모태가 된 게임은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직,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 이상을 보거나 읽은 경우에만 이 글을 읽기를 권합니다.


#03. 도피 - 가상 현실 '오아시스'가 생겨나게 된 배경


'제임스 할리데이'가 '오아시스'를 개발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은 소설에서 훨씬 더 상세히 다뤄진다. 어릴 때부터 사회성이 부족했던 그는 중학교 때 '던전 앤 드래곤' 동호회를 계기로 오그던 모로를 알게 된다. 열다섯 살 때 할리데이는 '재미 삼아' '동호회 회원들과 공유하려고' '아노락의 퀘스트'라는 비디오게임을 직접 개발한다. (제임스 할리데이와 오그던 모로의 관계는 소설에서 아예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과 유사하다고 언급되기도 한다.) 이것이 그리게리어스 게임사의 창립이었고, 회사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시작되었다. 개발하는 모든 게임들이 인기를 끌며 이미 30대에 두 사람은 백만장자가 되었고, '오아시스' 역시 처음에는 MMORPG가 출발이었다.


우리가 플레이하는 온라인 게임들이 한정된 서버 용량으로 인해 접속자가 폭주할 때면 렉이 걸리거나 접속 대기가 걸리는 등의 문제가 있는 반면 '오아시스'는 '오픈소스 가상현실'을 통해 판도를 뒤바꿨다. 접속하는 모든 유저들의 컴퓨터 자체를 서버의 자원으로 끌어와 서버의 가용량이 사실상 무한대였으며, 영화에 등장하는 '마인크래프트 월드'처럼 유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코딩하여 추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각 섹터별로 수백 개가 넘는 행성이 존재하게 된다.) 게다가 인류는 저렴하고 풍요롭던 에너지 시대의 종말을 겪으며 비행기나 자동차 따위의 교통수단을 영위하기 위한 연료비를 대다수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분이나 성별,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식사, 잠, 용변을 빼면) 무엇이든 하거나 될 수 있는 이 세계에 단지 매료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곧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소설에 따르면 오아시스 유저들 대부분은 레벨업 등의 게임 측면보다 문화생활과 사업, 쇼핑, 네트워킹을 즐겼고, 오아시스 내에는 제임스 할리데이의 전폭적인 투자로 수많은 공립 학교들도 지어졌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아니 잠깐, 교육이라고?'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 것이다. 영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제임스 할리데이는 자신이 만든 오아시스라는 플랫폼이 교육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봤고, 재단을 세워 오아시스 내 공립 학교 시스템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소설에서 첫 번째 구리 열쇠 역시 학교가 있는 루두스 행성에서 발견되며,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스터에그 미션에 몰두하는 주 유저층은 10대 청소년들이다. 할리데이 역시 여러 가지 단서를 통해 어른이 아니라 학생들이 단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는 뜻을 내비친다. (소설에서 할리데이의 뜻에 공감한 오그던 모로는 카렌과 함께 비영리 교육용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이처럼 오아시스의 발전 과정은 낭만적이고 희망적일 뿐 아니라 꽤나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그가 1980년대 대중문화에 광적으로 집착한 건 그 시기가 자신이 10대를 보낸 시기라서 그렇다. 죽음을 앞두고 이스터에그 미션을 만들면서도 그는 자신처럼 오아시스를 '플레이'하는 것 자체를 순수히 좋아하고 그것에 몰두할 수 있는 이가 미션을 해결하기를 바라고 그에 따라 관문들을 설계했다. 게임을 열렬히 좋아하는 이라면 영화나 음악 같은 다른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그만한 애정이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며,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되돌려보거나 게임을 무한 반복하는 이가 할리데이 자신뿐 아니라 지구상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으나 그럴 방법을 몰랐고 유년기를 보낸 '던전 앤 드래곤' 동호회와 같이 자신과 공통분모가 있는 '덕후'들과 친해지고 싶어 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우리 세대는 오아시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우리에게 오아시스는 하나의 게임이자 오락 거리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 된 지 오래였다. 우리는 불행한 세상에 태어났고 오아시스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행복을 주는 도피처였다. IOI 놈들 때문에 오아시스가 영리화되고 획일화된다는 발상은 진정한 오아시스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태양을 빼앗겠다거나 하늘을 볼 때마다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앞의 책, 53쪽.)


#04. 직관 - 단지 잘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을 더 좋아하고 탐닉하는 과정


그러니까, 제임스 할리데이에 이어 오아시스의 운영을 담당할 사람이라면 영화에서처럼 부하 직원들이 멘트를 알려줘서 "탭 마시면서 듀란듀란 듣고 로보트론 플레이해" 따위의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그 콘텐츠들을 열렬히 덕질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 자체는 소설과 영화가 공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메타포다. 그러나 소설에서 오아시스 운영자에게 요구하는 자질이 단지 '덕후'였다면, 영화는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뗀다. 이를테면 소설에서는 <몬티 파이튼의 성배>의 어떤 인물이 되어 모든 대사와 행동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히 따라 해야 통과하는 관문이 등장하는 등 (게다가 웨이드는 그 영화를 150번도 더 봤다고 한다!) 덕질계의 최종 보스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영화에서 어떤 단서는 제임스 할리데이와 오그던 모로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대화는 이미 웨이드가 수없이 반복했던 장면(2029년 오피스 파티)에서 나오지만 우연한 계기로 그것은 흔한 대화가 아니라 단서가 된다. 아무도 통과한 적 없는 극악 난이도의 레이싱 미션을 하면서 웨이드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 필요했고, "거꾸로 가 보면 어때"라는 할리데이의 말은 여기서 일종의 본능 혹은 직관을 통해 레이싱 미션을 완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 직관은 콘텐츠에 대해 혹은 제임스 할리데이라는 사람에 대해 단지 잘 아는 것을 넘어, 그 정보들을 통섭하며 탐구하던 중 자신만의 사고를 확장하는 것에서 탄생한다. 이는 IOI의 '조란학 부서'(이는 소설에 사용된 표현이다. IOI가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해, 할리데이가 집착했던 대중문화 레퍼런스들을 분석하고자 신설한 부서다.)에서 나오는 집단지성보다 때로는 웨이드 한 사람의 것이 더 강력할 만큼,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불가사의하고 그 잠재력을 알 수 없는 힘인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이어도 그러할 진데, 이것이 두 사람 이상이라면 어떨까.


#05. 공유 -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하게 된다면,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IOI의 로열티 센터에 가게 되는 인물은 '웨이드'다, 그것도 스스로 꾸민 계략에 의해서다. IOI의 시스템에 접근할 방법을 며칠간 고민한 웨이드는 사내 보안 체계를 해킹해 감시 카메라를 무력화 시키고, 나아가 오수복스의 구슬이 생성한 마법의 장막을 IOI 드론들을 해킹해 임의 조작하는 방식으로 무력화 시킨다. 이것이 영화에서는 '사만다'의 행동으로 바뀌었다. 영화에서 웨이드는 둠 행성에서의 라이브 연설을 통해 자신은 현실 도피를 위해 찾게 된 오아시스에서 가상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찾게 되었다고 하고, 그중 하나로 사랑을 언급한다. 그래, 누군가는 지질한 너드의 연애 판타지를 실현시켜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주장은 설정의 단면만 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여긴다. 소설에서도 이미 IOI의 식서들에 반감을 가지고 '식서 킬러'로 명성을 날리던 '아르테미스', 사만다는 영화로 넘어오면서 독립적인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몇 배는 더 높였다. 게다가 여러 과정들이 있었지만 웨이드와 사만다 둘은 오아시스가 불순한 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반대하고 할리데이의 순수함을 예찬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무언가를 열렬하고 순수히 아끼고 좋아하는 것에서 사랑의 속성을 발견한 이들.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 사만다는 웨이드와 '헬렌'('H')의 묘사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허송세월하는 '척'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데, 둘은 이미 그 떡잎부터 '차세대 제임스 할리데이'가 될 자질이 충분한 이들이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와 그 사람의 어떤 다름에서 출발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서로의 유사점 내지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고 좋아하는 일, 그건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척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장 친한 친구였다. 순수하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 나는 그녀를 이해했고, 믿었고, 좋은 친구로 여겼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성별이나 피부색이나 성적 지향 같은 하찮은 것 때문에 달라질 수도 없었다.

(앞의 책, 461쪽.)


#06. 몰입 - 게임처럼, 더 게임처럼 만들어진 영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 자들의 이야기는 그렇다면 소설에서 영화로 어떻게 넘어왔는가. 가장 중대하면서도 명백한 포인트는 '게임처럼'이다. 앞서 스토리 같은 것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게임의 성패는 결국 사용자를 얼마나 깊이 몰입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스토리든, 매력적인 캐릭터든, 아름다운 비주얼이든, 사용자 경험(UX)을 이루는 전반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영향을 주는 것이다. 당장 첫 번째 관문이 비주얼과 스릴을 극대화할 수 있는 레이싱 게임으로 변모한 것만 봐도 그 각색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다수의 일반적인 관객들이 웨이드가 '던전 앤 드래곤'의 한 공간을 떠올리고, 거기서 만난 중간 보스와 오락실게임을 (그 중간 보스가 대결을 펼쳐보자며 직접 코인을 두 개 넣어준다) 플레이하고 나서 고전 영화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광경을 보는 것보다는 카레이싱에서 훨씬 더 보편적인 수준의 높은 즐거움을 누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레디 플레이어 원>은 우리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행위를, 곧 영화 속 사람들이 햅틱 장갑과 바이저를 통해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 웨이드가 오아시스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바이저를 착용하는 그의 시점 쇼트는 꽤나 직접적으로 이 동일화를 입증한다. 그 순간 관객들 역시도 현실 세계를 (영화관에 온 후) 한 번 더 벗어나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영화에 언급되지 않지만, '오아시스'의 풀이는 'Ontologically Anthropocentric Sensory Immersive Simulation', 곧 '존재론적 인간 중심 감각 몰입형 시뮬레이션'이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 중심이라는 점과 감각 몰입형이라는 점 두 가지일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소설에서 웨이드가 6시간 동안 팩맨 게임을 해서 할리데이가 세운 최단 시간 최고 기록을 넘는 장면 같은 건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블레이드 러너>(1982)가 등장하는 것은 웨이드가 획득한 비취 열쇠를 둘러싸고 있던 은박지를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로 살피던 중, 그 영화에 음성 제어 스캐너가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에서부터다. 작 중 <블레이드 러너>는 할리데이가 열 손가락에 꼽는 영화로, 그는 필립 K. 딕의 원작도 좋아했다고 한다. 대신에 영화화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아예 <샤이닝>(1980)의 세트장과 장면을 직접 등장시킴으로써 체험도를 높인다. 결국 어떤 게임이 오래도록 사랑받게 만드는 '몰입'이라는 속성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연출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당연하게도 간파하고 원작의 메시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대중성과 오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강화해낸 것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내가 오아시스를 창조한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몰랐지. 나는 평생토록 두려워만 했었다. 끝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았단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현실은 실제 삶이니까. 내 말 알겠느냐?

(앞의 책, 527쪽.)


제임스 할리데이는 오아시스 세계를 확장 및 발전시키면서 자연스레 자신이 좋아했던 대중문화의 흔적들을 대거 반영했고, 이스터에그 미션이 시작되면서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취향을 탐닉한 파시발과 아르테미스, 에이치 등 유저들에 의해 분석된다.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한 세 개의 열쇠를 웨이드와 하이파이브 일행이 획득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할리데이의 방대한 취향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고, 오아시스의 실권을 쥐게 되는 하이파이브는 사실상 덕질로 똘똘 뭉친 '취향 공동체'나 다름없다. 세상과 대화할 줄 몰랐던 할리데이는 죽을 때까지 외롭게 살았지만,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른 누군가가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스터에그를 심어놓게 된 것은 아닐까. 나의 관심사를 타인이 알고 좋아해주는 일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오지만은 않는 귀한 일이니까.


#07. "내 게임을 해줘서 고마워"


그렇기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장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대사를 꼽자면 단연 "고맙구나, 내 게임을 해줘서."다. 스필버그의 전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에서 마크 라이런스가 연기한 캐릭터가 꿈을 만드는 거인이었다면, 여기서는 누군가가 자신이 꾼 꿈을 함께 꿔주기를 순수히 바랐던 키덜트다. 마지막 할리데이의 방에서 노년의 그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더 유의미하다. 어떤 이야기(세계)를 만드는 이가 자신의 작품 안에 각종 의미와 설정들을 심어놓을 때, 그는 모순적이게도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하나는 그것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찾아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자는 독자나 관객이 그 작품에 깊이 빠져들면 자연스레 보이고, 후자는 빠져든 그 세계를 좋아하게 될 때 가능하다.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서문("For Susan and Libby, Because there is no map for where we are going")


이 글은 원래 쓰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늦게 쓰였다. 대신 영화를 몇 번 더 감상했고 책을 조금 더 읽었다. 나는 원래 준비를 빨리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여차여차 준비를 마치더라도 그게 제대로 된 건가 몇 번을 더 돌아보곤 하는 사람이어서, 기왕이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무언가 적는 일이 더 조심스럽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내게 그런 영화였다. 게임의 '레디'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스타트'를 누르기까지, 그리고 저마다의 로딩 화면을 보는 내내 나는 언제나 떨렸다. <레디 플레이어 원> 속 현실 세계와 오아시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모든 경계에 도사리고 있는, 오직 볼 수 없고 느낄 수만 있는 그 떨림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도 그랬으면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 요약 리뷰: (링크)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레퍼런스들(IMDB): (링크)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여담:

01. 작품의 주인공 '웨이드 오웬 와츠'의 이니셜은 그러고 보니 'WOW'다.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아주 처음 봤을 때, 나는 며칠간 블리자드 사의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홈페이지를 몇 번 기웃거렸다. 그 게임을 2004년 오픈 베타 때 빠져들어 즐겼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타우렌 드루이드를 키웠다.)


02.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극장용 한국어 자막 번역이 아주 좋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처럼 일종의 고유명사를 살리지 못한 처리도 있었고(그 다음 자막은 정작 '테이크 온 미' 그대로 표기했다), 그럭저럭 용인할 수는 있지만 종종 다소 넘겨짚은 듯한 의역이 등장한다. X1 부트슈트 광고의 '아픔과 즐거움 모두 느껴보세요'(원문은 No Pain, No Gain)는 부트슈트가 한층 리얼한 감각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둠 행성에서 골드를 얻을 때의 쾌감을 더해준다는 이야기인데, pain과 gain을 아예 같은 맥락으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후반 둠 행성 내 아노락의 성채에서 아이락이 폭탄을 터뜨려 길이 막혀버리자 H가 아이언 자이언트의 팔과 다리를 이용해 통로를 만드는 대목에서, 아이락이 재차 공격해 아이언 자이언트가 한 팔을 떨어뜨린다. 이때 아이언 자이언트의 목 부분에 간신히 매달린 '쇼'는 '파시발'에게 "Hang on!"이라고 말하는데 자막은 "기다려!"로 되어 있다. 그게 아니라 문맥상 꽉 잡으라는 말이다.


*부록:

소설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추가되거나 달라진 것들을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대략 이렇다. 17번까지 번호를 적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다. 차이가 정말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01. 영화의 '할리데이 저널'은 소설의 '아노락 연감'을 변용한 것이다. 아노락 연감은 '제임스 할리데이'가 탐닉했던 19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이 쓴) 토막글들을 모아놓은 1,0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소설에서는 오아시스 유저가 각자 소장해서 꺼내 읽을 수 있는 전자책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02. 영화의 첫 번째 미션인 센트럴 파크 레이싱은 소설에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첫 번째 미션은 '던전 앤 드래곤'의 관문('공포의 무덤')에서 시작해 존 바담 감독의 영화 <위험한 게임>(1983), PC게임 '던전 오브 다고라스'(1982)를 아우른다.

 03. 영화의 두 번째 미션에 등장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은 소설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에는 대신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가 이에 상응하는 중요도로 언급된다.

 04. 소설에서 '웨이드'는 세 번째 미션이 끝날 때까지 '아르테미스'를 실제로 만나지 못하고, '에이치', '다이토, '쇼토'(영화의 '쇼')는 세 번째 미션의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오그던 모로'의 주선으로 오그의 저택에서 만나게 된다. 소설에서도 '웨이드'는 '아르테미스'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지만 '아르테미스'는 선을 그으며 거절한 뒤 꽤 오랜 시간 동안 '웨이드'와 연락을 끊는다.

 05. 영화에 등장하는 '디스트랙티드 글로브 클럽'은 소설에서는 제임스 할리데이가 아니라 오그던 모로가 만든 것이다. 오그던 모로가 직접 코딩한 장소이며 그가 독점 소유하고 있으며, 그는 평소에 오아시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생일인 날에만 등장한다. (클럽의 오프닝 DJ로 <스타워즈>의 'R2D2'가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오그던 모로의 아바타는 '만렙'이자 불사의 존재이며 오아시스의 모든 유저 중 유일하게 '슈퍼 유저' 권한을 갖고 있다. 클럽에 IOI 병사들이 난입하는 대목이 있는데 오그는 간단한 공격 한 번으로 건터들에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IOI 병사들 전원을 없애버린다.

 06.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웨이드'가 IOI 로열티 센터에 가게 되고, 자신이 IOI의 시스템을 직접 해킹해 오수복스의 구슬이 생성한 마법의 장막을 해체시킨다.

 07. 오아시스에서는 유튜버나 아프리카 BJ와 비슷한 개념인 'POV'라는 개인 방송 기능이 중도에 추가된다.

 08. 아이언 자이언트는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에 없지만 소설에는 [왕좌의 게임]과 '울트라맨' 등이 나온다.

 09. 게임 '어드벤처'를 개발한 워렌 로비넷에 관해서 소설에서는 아노락이 직접 극 초반부에 언급한다.

 10. 영화에서는 웨이드(파시발)가 아르테미스와 춤을 추던 중 자신의 실명을 누설하고 이를 들은 아이락에 의해 신상이 밝혀지게 되지만, 소설에서 놀란 소렌토는 루두스 행성의 웨이드가 나온 학교의 데이터에 접근해 신상을 직접 알아낸다.

 11. 소설에서 웨이드는 트레일러 아파트 폭파 사건 이후 빈민촌을 떠나 위장 신분을 만들고 콜럼버스에 새 거처를 마련한다.

 12. 소설에서 웨이드(파시발)와 사만다(아르테미스)는 이메일을 많이 주고받고, 비밀 채팅방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오아시스 내에서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함께 관람하기도 한다.

 13. 영화에 등장한 '그리게리어스 120' 아이템은 소설에서는 '베타 캡슐'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한 번 3분간 '울트라맨'으로 변신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14. 영화에는 없지만 소설에는 '핀도르의 수색 알약'이라는 아이템이 있다. 특정 섹터 내에서 하루에 한 번, 원하는 아바타의 위치를 탐색할 수 있는 기능이 있고, 200만 크레딧에 소렌토에게 넘어간다.

 15. 소설에서 점수판의 변동은 훨씬 다이내믹하다. 심지어 소렌토의 아바타가 1위에 오르는 시점도 있고, IOI 식서들의 6자리 사원번호로만 1위부터 10위가 다 채워지는 시점도 있다.

 16. 영화에서 웨이드는 큐레이터로부터 보너스 목숨을 얻지만, 소설에서는 팩맨을 퍼펙트게임으로 클리어했을 때 받은 25센트 코인이 추후 보너스 목숨으로 쓰인다.

 17. 적고 보니 이건 꽤 중요한 포인트인데, 소설에서는 세 번째 열쇠를 작동하려면 한 명만으로는 안 된다. 기억하기로는 세 명 이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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