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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28. 2018

대중문화를 향한 순수한 애정, 그 감동적인 집합체

<레디 플레이어 원>(2018), 스티븐 스필버그

만약 'IMAX Laser 3D'로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인정해야겠다. 나는 얼마 동안, 지금 보고 있는, 눈앞에 펼쳐지는 게 '영화'라는 사실을, 그 현실을 잊고 있었다. 원작 소설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사회는 영화로 넘어오면서 조금이나마 톤업된 모습이다. 제목처럼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한 편의 거대한 게임이다.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던)가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남긴 세 개의 단서(하나의 이스터에그로 향하는)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를 향해가는 어드벤처와 같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다중 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으로 시작해 모든 인류가 사용하는 범세계적 가상 현실로 자리 잡은 '오아시스'는 단순히 게임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 취미, 쇼핑 등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이 되어 있다. '오아시스'의 가상화폐가 사실상 실생활의 빈부까지 결정한다는 측면만 봐도 2011년 출간된 원작이 미래 사회를 꽤나 정교하고 날카롭게 예측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정 국가나 지역 등 현실 세계에서의 경계도 그다지 큰 영화적 요소나 장치가 되지 않는다. 빈민촌은 '주거' 외에는 아무런 심미적 기능이나 육체적 보호의 장치가 되지 못하는 컨테이너 가건물로 빼곡하다. 이모네 집에 얹혀사는 '웨이드'는 덜컹거리는 세탁기 위에 요를 깔고 몸을 겨우 뉘며, 폐차 더미 안의 틈새 아지트에서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그러나 <레디 플레이어 원>은 자신이 표현하는 세계를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많은 영화들이 재현에 열중하느라 스스로의 이야기를 놓친다.) '파시발'('웨이드'의 아바타 이름)을 비롯한 '오아시스' 속 아바타들은 누가 보든 '아바타'이며, 게임이나 만화 캐릭터들이 즐비한 이 세계는 의도적으로 '가상 현실'이라는 걸 관객이 알 수 있게 직조돼 있다. 반면 빈민촌의 컨테이너 아파트 군락의 모습은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2017) 속 사후 세계('미구엘'이 처음 다리를 건너서 마주한 광경)를 연상케 할 만큼 '삶'의 생동감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나름대로 두 공간은 그 외양도 꽤나 흡사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아시스'가 너무 사실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고스란히 '게임 속 세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무도 게임 같아서 오히려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극 중 인물들은 여러 차례 "여긴 현실이 아니야!"라며 주의를 환기시킨다. 압도적인 시각 효과의 레이싱 게임으로 시작해 출시 40여 년은 지난 아케이드 게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와 고전에의 회귀다. '오아시스'에 로그인한 '웨이드'와 동료 친구들은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차이와 경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용한다. 대조적으로 '오아시스'의 경영권을 노리고 이스터에그를 찾는 데 사력을 집중시키는 거대 기업 'IOI'가 더 가상현실에 과몰입해 분별을 잃은 듯 보인다.


19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헌사와 오마주, 애정으로 가득한 <레디 플레이어 원>의 '창조주'인 스티븐 스필버그(그리고 원작자이자 영화의 각색, 기획에 직접 참여한 어니스트 클라인)가 왜 이 세계를 가장 완벽하게 이끌 수 있는 플레이어인지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자체로 역사이자 상징이 된 그의 인장을 부정하는 건 현대 영화 산업의 한 축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스필버그의 전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에서 꿈을 만드는 거인 'BFG'를 연기했던 마크 라이런스는 이번에도 스필버그 영화의 현자로서 '플레이어'들의 심적 지주가 된다. 알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비롯한 방대한 문화적 단서들을 다 꿰고 있지 못해도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 황홀경의 극치에 비해, 관객을 현혹시키는 사악한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누구보다 게임을 열렬히 좋아했던 개발자 '제임스 할리데이'의 순수함은 결국 이 영화의 태도인 동시에 주제 자체다. 이야기의 주어이자 곧 동사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이스터에그를 찾아 나서는 주체가 모두 10대의 청소년들이란 점이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꿈꾸는 어른(거인)이 세상을 크게 만든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어린 'Player 1'들은 게임기 속에 코인을 넣으며 그 세상을 순수히 지켜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믿고 그것을 끝내 잃지 않는 마음들이 모여, 이 현실을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끈다는 것. 20대에 덜컥 <죠스>(1975)로 세상을 삼키기 시작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여전히 늙지 않았다. 자신의 초기 단편의 이름을 따 제작사 '앰블린 엔터테인먼트'를 차린 그는 앞으로도 늙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른이 되고서도 여전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실현시키는 자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잘 보이고 잘 들린다. 기꺼이 빠져들 준비만 돼 있다면. (★ 10/10점.)



<레디 플레이어 원> 북미 포스터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 스티븐 스필버그

2018년 3월 28일 (국내) 개봉, 140분, 12세 관람가.


출연: 타이 셰리던, 올리비아 쿡, 마크 라이런스, 벤 멘델슨, 사이먼 페그, T.J. 밀러, 리나 웨이스 등.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엔딩크레딧 후 쿠키영상은 따로 없다.

*10분이 넘는 엔딩크레딧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지 루카스의 회사인 ILM을 포함, 끝을 모르고 빼곡하게 이름을 올린 시각효과 스태프들!

*'Jump'(Van Halen)로 열고 'You Make My Dreams'(Hall & Oates)로 닫는 음악 선곡을 비롯해, <빽 투 더 퓨처>, <샤이닝>, <고질라> 등 새겨들을 만한 사운드트랙들이 많다.

*원작의 각색 방향 및 원작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리할 예정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틸컷

*<레디 플레이어 원> 해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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