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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2. 2021

갑자기 파리로 떠나게 된 에밀리의 직장생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리뷰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스틸컷


새해 첫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2020)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공개 당시 찜해두었던 작품이기는 하나 문제는 그 '찜'의 목록에 백 편도 넘는 작품들이 올라 있으므로 보게 된 계기는 단지 '오늘 눈에 띄었다'라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라고 했지만 한 개 시즌 10화 278분. 회당 30분도 안 될 만큼 짧아서 전혀 부담 가는 분량이 아니었던 데다 이미 다음 시즌 제작이 확정됐다는 걸 알고 봐서 다음 이야기를 너무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거의 한 호흡으로 감상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이 영화의 코스튬 디자이너 패트리샤 필드가 본작의 코스튬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이지만)라든가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 본작과 마찬가지로 각본가이자 제작자 대런 스타의 작품이다) 같은 작품으로부터의 기시감이 얼마간 드는 일이 과연 안 좋은 일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스틸컷


드라마가 실생활 공간을 완벽히 실제에 충실하게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도시도 물론이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이 '에밀리'(릴리 콜린스)가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에 비록 이 시리즈가 공간적 배경으로 담아내는 파리의 모습이 일부이거나 피상적이라 해도 그게 내게는 큰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자체라 처음 자기 상사 대신 갑자기 파리 지사로 오게 된 '에밀리'가 보는 도시의 모습이기도 하겠고.


매 회차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앞서 지칭한 '과정'이라는 건 사내에서의 냉대나 멸시에도 당당하게 광고 속 성적 대상화를 광고주에게 이야기하는 일이나 큰 목표 없이 시작한 소셜미디어 계정을 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고 기회를 포착하는 수완 같은 것을 떠올려볼 수 있다.


스테레오 타입이나 클리셰 같은 단어도 결국 그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라 보기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 속 '에밀리'의 행적은 오히려 예측 불가능하면서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증명해내는 일로 보였다. 환상과 꿈으로만 가득해 보였던 처음의 '에밀리'도 이제는 위기 대처력을 길러내고 자립의 방식을 찾는 동시에 주변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적응형 캐릭터로 다가왔다. 적당히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시즌을 맺는 방식과 짧은 분량도 제작자의 능숙한 재주로 읽히기도 했고.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 포스터


그러니 드는 생각은 대중적인 것, 익숙한 것, 예상 가능한 것, 이런 말들이 꼭 나쁜 쪽으로 쓰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에서도 좋은 면을 찾아내는 일도 콘텐츠 생태계와 창작자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도 좀 있다. 작중 피에르 카도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어떤 이가 무가치하다고 폄하하는 일이 어떤 이에게는 꿈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는 일이 문화 예술의 역할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다. 미디어와 미디어 바깥이 서로 연결되거나 충돌하거나 하면서 서로의 간극과 유사점과 차이점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생산하는 일이, 그것이 더 많이 이야기된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인 것과 현실 아닌 것 사이에서 좋은 가교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2020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시리즈로 [퀸스 갬빗] 바로 다음에 랭크됐다.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영화 글쓰기 온라인 수업 1월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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