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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06. 2021

세상을 인용하고 자기 언어를 타자에게 번역하는 일

드라마 '런 온'(2020) 덕분에 만난 감정들(2)

(본 글은 아래 링크의 글에서 계속됩니다.)


https://brunch.co.kr/@cosmos-j/1204


"뭔가 부자 된 기분이 들거든요, 어떤 한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해서 세상에 알려주는 그 기분이. 손에 뭔가 가득 쥐고 있는 그런 기분? 내가 뭘 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 꼭 부자 된 기분이더라고요."

(미주, 2화 중에서)




'미주'에게 어느 날 처음 다가온 영화는 알 수 없는 위로를 주고 믿을 수 있는 안전함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 꺼진 극장을 '미주'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라 표현했다. '선겸'은 눈앞에 놓인 과정들을 찬찬히 밟아 가는 사람이었으므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깨닫기도 전부터 이미 그것을 해왔고 트랙을 벗어나는 순간을 상상해보지 않았으므로, '미주'와 다른 언어관을 지닌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지닌 두 사람이 생각지 않았고 짐작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의 세계에 들어오는 일이 드라마 말고도 삶에서도 일어난다. '미주'와 '선겸'의 과정은 모두 그런 순간들로 채워졌다. 앞을 보던 사람과 뒤를 돌아보던 사람이 만나 서로의 곁을 바라보게 되는 일들.


해석이 아니라 번역은, 사적인 영역이면서도 그 언어를 통해 세계를 만나게 될 누군가를 상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수십 번 보고 듣다 보면 어느 정도 보이고 들리는 영화 속 언어와 달리, "두 시간짜리 외국어 번역보다 그 사람이 한 우리말 한마디가 훨씬 더 어렵고 해석이 안 될 때가 많"은 경험이 영화 밖 세상에서의 언어를 통해서는 일어난다.



[런 온]의 전체 이야기가 결국은 각자의 삶을 서로에게 자신의 언어와 상대의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결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해주는 이야기였다고 표현하는 일이 과장일까. 자신의 삶을 들려주기 위해 그는 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점이 모자라며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기 전에 언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음할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 수만큼의 언어들이 펼쳐지고 서로 만나고 또 비껴가는 동안의 일들이, 영화를 번역하는 일과 그 번역된 영화를 만나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방영 중 언급한 바와 같이, [런 온]에는 <배트맨 비긴즈>부터 <캐롤>, <제리 맥과이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존 윅>, <카사블랑카> 등 수십 편의 영화 이스터에그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것들이 단지 숨은 상징을 발견해내도록 하거나 작가의 취향을 드러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와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을 만났는지가 그 사람의 일부를 설명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때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 입으로 직접 꺼내는 것만큼이나 다른 작품 속 이야기를 끌어오는 일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저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나 이제 알겠어요. 오미주 씨가 왜 영화를 좋아하는지."

('미주'와 '선겸', 16화 중에서)



세상을 인용하고 자기 언어를 타자에게 번역해내는 [런 온]의 방식과 시도가 드라마가 후반으로 전개되어갈수록 나날이 소중해졌고, 각 회차마다의 이야기가 다른 회차에서 반복되거나 인용되거나 변주되는 일들도 이 세계가 아주 공들여 다듬어진 안정감 있는 세계라고 믿게 만들었다.

잘 표현하는 사람은 잘 인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를 기억해야 하고 그것의 뒤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흐름과 맥락을 헤아리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의 과정이 완벽해질 수 없듯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도 완전무결해질 수는 없다. [런 온]은 계속해서 달리는 일이 언젠가 멈출 수밖에 없음에도 영화가 언젠가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에도, 달리기로 시작해 영화로 끝난다. 트랙에서 출발해 극장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달리기에도 영화에도 끝이 있는 건 돌아가야 할 삶이 있어서인 건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일들이 결국 'Run'에 해당하며 그것들이 삶 위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지속되기에 'On'이 뒤따르는 것인지도. 이 이야기가 진정 어떻게 맺어질지는 우리, 가면서 생각해보자. (2021.02.06.)



#3.


영화: "상상했어도, 그 어떤 상상이었어도, 실제보다 멋지진 않았을 거 같아요. 좋다. 실재해 줘서."

단아: "나도."

영화: "저, 새 목표 생겼어요."

단아: "또 내가 협조해야 돼?"

영화: "대표님은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돼요. 거리 유지해 보려고,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너무 멀면 안 보이고 너무 가까우면 시야가 다 가려질 테니까."

단아: "협조해야 되네."


#4.


미주: "나 이제 좀 알 거 같아요, 기선겸 씨가 살아가는 방식. 그때도 그랬잖아요, 차근차근 한 사람씩 이기다 보니까 눈앞에 아무도 없었다고. 바로 눈앞에 놓인 과정들을 찬찬히 밟아 가는 거. 그렇게 가는구나 싶어서. 처음으로 나한테 웃어 주기도 했고. 그, 9초대 할 뻔했던 그날. 웃는 거 되게 예뻤는데 어, 왜인진 모르겠는데 눈물이 날 거 같더라고요. 그냥 기분이."

선겸: "9초대, 내 입으로 누군가에게 말해 본 거 진짜 처음이에요. 우리 쪽에서는 이게 너무 마의 숫자라서, 근데 그걸 말하는 순간 그 앞에는 오미주 씨가 있었고 그걸 말할 수 있는 순간의 앞에도 오미주 씨가 있었네요?"

미주: "있어서 뭐 어쨌다고요."

선겸: "나한테 이제 9초대는 그런 의미라고요."

미주: "아, 뭐야, 개설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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