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이 골든 벨을 울리는 주인공보다는 우연의 행운 혹은 술 한 잔의 행운을 찾는 그... 술집 안에 있는 손님 1에 더 집중을 했던 거지. 이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무슨 술을 시켰을까. 무슨 이유로 저 구석 자리에 우중충하게 앉아 있을까 하는 뭐 그런 식의 접근인 거지."
(미주, 8화 중에서)
드라마 '런 온' 16회(최종회),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
[런 온]을 2020년의 마무리로 2021년의 시작으로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잘 만드는 작품은 직업마저도 이야기의 필수적인 것으로 삼는다. '오미주'(신세경)가 통번역을 한다는 것과 '기선겸'(임시완)이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런 온]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할 만큼 중요했고 언어관과 삶의 태도에 있어 각자의 다른 세계 속에 살아왔던 두 사람은 겹겹이 쌓이는 계기들 속에서 서로가 아니면 안 될 만큼의 필연적인 관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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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런 작품을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거기에 매번 따르는 대답은 어쩔 수 없이 "그렇다"가 된다. 지금 각별하고 소중한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작품들이 채워간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그것과 동일한 종류의 경험을 어디선가 반복하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고유함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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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종영하고 난 뒤에도 주, 조연할 것 없이 모두 각자 거기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것이라 기꺼이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함과 특별함이 다른 게 아니라 다만 마음에 달려 있다고 여기게 해주는 사람들. 평소보다 더 특별히 기억해두고 싶었던 소중한 말들, 표정들, 목소리, 발화하기 전의 머뭇거림, 안도, 말 사이의 멈춤, 숨기지 않고 감추지 못하는 마음들. 눈물과 땀. 바라보고 거리를 두고 거리를 좁히고 이름을 부르는 일들. [런 온]을 달리는 내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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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가기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이가 있어 고마웠고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그것에 관해 미안해하는 마음을 잊지 못했으며 소중한 사람의 완주를 그 사람이 보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고 느꼈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알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들. [런 온]을 보는 내내 그들 곁에서 운동화 끈을 조여 묶고 다시 일어서는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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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게. 안 아플게."
(단아, 16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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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트랙을 어떻게 달려 나갈 것인지에 관해 어떤 이야기는 그것이 다 지나가고 나서도 여전히 곁에 남아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애쓰는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많은 삶의 방식들을 하나하나 존중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다시 꺼내도 그때 그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잠시 잊고 잠시 멀어진 동안에도 계속해서 살고 있어서 지나 보면 그게 참 다행이고 고맙다고 여기게 된다. 그럴 거다. 피상적이면서도 좋은 이야기들이 세상에는 있지만, 오늘만큼은 이것만이 나를 배우고 성장하게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더 간직해 보기로 했다.(2021.02.04.)
그럴 거죠 작가님?
제말이요
#1.
미주: "우리는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 못 하겠죠?" 선겸: "응.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미주: "저 사람은 저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서로 다른 세계를 나란히 둬도 되지 않을까?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이해 못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맙시다. 그건 불가해한 일이고 우리는 우리여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면 되지." 선겸: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던가요? 지금인 것 같아서." 미주: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선겸: "사랑해요."
#2.
"누구나 자신만 열어 보고 싶은 보석함이 있대요. 뭐 그 안에 담긴 게 꼭 보석이란 얘긴 아니고 음, 바닷가에서 주운 씨 글라스일 수도 있고 조개껍질일 수도 아, 누군가의 교복 단추일 수도 있지. 추억을 간직하는 거니까. 자, 나만이 열어 볼 수 있는 보석함 속의 반짝이는 추억이 되는 거. 그 시절을, 앞으로 영원히 없을 순간을 소장하게 되는. 그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