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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06. 2021

언어와 언어가 서로 투명하게 만나 보일 수 있다면

JTBC 드라마 [런 온](2020) 방영 중의 기록

카카오TV에서 제작하는 [톡이나 할까?]는 작사가 김이나와 게스트가 마주 앉아 카카오톡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는다. 입과 귀를 통한 발화와 청취가 아니라 메신저를 통한 문자 언어의 교류는 말이 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미세한 높낮이와 속도 혹은 그 외 암묵적인 형태의 제스처를 포함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일과 마찬가지로, 서술된 것만으로 그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톡이나 할까?]에서 '톡'을 나누는 두 사람은 표정과 같은 동시적인 반응을 서로에게 내보이는 채로 톡을 나눈다. 진행자와 출연자의 대화를 '보'면서 말과 글과 표정이 이렇게 잘 비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카카오TV '톡이나 할까?' 이동진 평론가 편 중에서


각자의 세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같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맺고 교류한다. 아무것도 직접 표현하지 않은 채로 상대에게 암시적 의미를 전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온갖 표현을 갖고도 상대에게 제 뜻을 전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건 같은 언어가 맞을까.


지난 12월부터 방영 중인 드라마 [런 온](JTBC, 2020)을 보면서 금세 빠져든 것도 '미주'(신세경)와 '선겸'(임시완)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언어가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방식 때문이었다. 식사하면서, 길 가다 마주쳐서, 떨쳐내려고 했지만 생각이 나서, 두 사람은 상대의 깊은 곳을 건드렸다가도 이내 서로를 존중한다. '미주'가 보기에 '선겸'은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으면서 무엇이든 참고 감내하고 고통인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표현하는가 하면 그 순간에도 상대의 기분을 염려한다.


JTBC 드라마 '런 온'


달리기가 생에서 처음 스스로 했던 선택이어서 그것을 계속하고 있었던 '선겸'과 그의 언어가 영화 속 외국어를 번역할 때보다 어렵다고 느끼기도 하는 '미주'는 많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오히려 그 다름 때문에 서로가 경험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어떤 진심을 나누기 시작한다. 아직 [런 온]의 절반도 채 보지 않았고 두 사람의 마음과 삶을 속단하고 싶지 않으며 다만 이미 둘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고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JTBC 드라마 '런 온'
JTBC 드라마 '런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은 사람이 되게도 했다가 바닥이 되게도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섣불리 상대를 탓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학 하지도 않는 일일 것이다. "고통에 익숙한 사람, 잘 견디는 게 디폴트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혹시 하고 있다면."이라고 누군가 말해준다. 때로는 "고마워요, 무슨 일이냐고 안 물어줘서."라고 답하게 만드는 무심한 듯 다감한 행동을 건넨다.

4화에서 '선겸'을 한때 좋아했다던 선수촌 동료 선수 '정현'이 '선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 너는 너를 좀 말해주고 나눠주고 살아 어, 좋은 거 싫은 거, 그거 그거, 먹고 싶은 거. 그래야 유잼 되지."  '정현'은 어떤 사건으로 '선겸'의 뒤에서 그를 향해 수군거리고 피하던 사람들과 달리 '선겸'에게 똑바로 다가가 앉아 정면과 시선을 마주하며 그렇게 말했다. 같은 화에서 '미주'가 한 말도 기록해두려 한다. "모든 말이 다 고백은 아니었어요. 그중에 고백이 있었으면 몰라도." 모든 말들이 모두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타인의 언어를 읽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란 그중 어떤 하나가 지나칠 수 없는 조금은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는 일이 아닐는지.


"나는 아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싶다."

(김복희, 『희망은 사랑을 한다』, '시인의 말'(문학동네, 2020))


한 번에 몰아볼 수 있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니라 매주 몇 회차씩을 긴 호흡으로 보게 되는 드라마를 [더 킹: 영원의 군주](2020) 이후로 다시 시작해 이 기분에 아직 적응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야기의 곁에서 과정을 기록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미주'가 영화를 보면서 한 세계를 만나는 일에 대해 일컬었던 "뭔가 부자 된 기분" 같은 것이기도 하고 불 꺼진 극장에 앉아 있으면 드는 "안전한 기분"이기도 하다.


JTBC 드라마 '런 온'

아. 사실 드라마 [런 온]에는 각종 영화 이스터에그들이 빼곡하다. <배트맨 비긴즈>. <캐롤>. <싸이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달세계 여행>. <라라랜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제리 맥과이어>. <Falsified>. <카사블랑카>. <E.T.> 생각나는 것만 일단 적어도 이 정도.


*드라마 [런 온] 관련 기록 2: (링크)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영화 글쓰기 온라인 수업 1월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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