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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2. 2021

이와이 슌지의 '편지'는 계속해서 쓰이는 중이다

영화 '라스트 레터'(2020) 리뷰

"오늘 우리들은 졸업식을 맞이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우리에게 있어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아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생의 선택지가 있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걷게 될 것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괴로운 일을 겪게 될 때, 살아가는 일이 고통이 될 때, 분명 우리들은 몇 번이고 이 장소를 떠올릴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가능성이 무한하게 여겨졌던 이 장소를, 모두가 한결같이 소중하게 빛나고 있었던 이 장소를."

-졸업생 대표 토노 미사키의 송사


영화 제목을 <Last Letter> 대신 <Letter Lasts>라고 고쳐도 될까. 'Last'에는 '마지막의'라는 형용사적/부사적 의미도 있지만 '계속하다'라는 동사적 의미도 있다. (이 동사는 자동사와 타동사의 뜻을 둘 다 지녔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라는 김연수의 말처럼, <라스트 레터>(2020)의 이야기는 한 편의 편지가 어떻게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것이 나아가 소설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계절을 담았다.


영화 '라스트 레터' 스틸컷


감독 이와이 슌지의 고향 센다이에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먼저 영화(2018)로 만들어졌고 소설판으로도 나왔으니, 마츠 다카코와 히로세 스즈가 주연한 이 <라스트 레터>는 그러니까 세 번째로 쓰인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는 다섯 번에 걸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만든 단편 영화(2017)가 기반이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 '미사키' 역시 별도의 책으로 썼으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고 또 쓰는 일. 과거가 된 이야기를 거기 내버려 두지 않고 계속해서 꺼내고 발신하고 수신하는 방식으로 쓰여온 이 <라스트 레터>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편지이자 소설의 형식을 닮았다.


<라스트 레터>에서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영화 속 모든 편지가 손으로 쓰인 물리적 실체가 있는 편지라는 점이다. 물성이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수신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도 하며 그것의 발신지(주소)가 존재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에서 20년도 더 지난 얼어붙은 과거를 편지가 녹여내었고 그것이 당사자의 딸을 중심으로 현재에 재소환되었듯, 과거의 '미사키'이자 현재의 '아유미'(히로세 스즈의 1인 2역), 과거의 '유리'이자 현재의 '소요카'(모리 나나의 1인 2역) 그리고 현재의 '유리'(마츠 다카코)와 현재의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오가는 이 이야기는 결국 2020년대에 와 편지라는 수단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라스트 레터' 스틸컷


청량한 여름을 배경으로, <라스트 레터>는 "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좋아해. 너는 어떤 책을 좋아하니?" 같은 이야기, "잘 지내고 있습니까?" 같은 이야기, 그리고 "바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의 시절을 능히 지탱하는지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 영화의 촬영과 음악, 음향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도 누군가에게는 사인을 받고 싶은 '히어로'가 되고는 한다. 지금쯤 다시 떠올려보는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영화를 보기 전의 나'에게 쓰는 긴 편지를 써 내려가야 했다. 1995년 <러브레터>로 시작된 이와이 슌지의 서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 역시 그것을 계속 써야만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문학동네, 2020)


<라스트 레터>는 단 한 권의 소설 밖에는 쓰지 못한 실패한 소설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는 게 <라스트 레터>의 시각이기도 하다. 여태껏 단 한 권의 소설만 썼지만 그는 거기에 모든 이야기를 바쳤고 그것을 여전히 쓰고 있다. 영화에서 그는 총 세 번에 걸쳐서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책에 사인해주기를 요청받는데, 그 세 번은 첫 번째에서 세 번째로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요컨대, 가장 거리가 멀고 중요하지 않은 독자로부터 가장 가깝고 중요한 독자에게로. 한 명의 독자가 있는 한, 그의 소설은 중요한 소설이고 그것을 쓴 사람은 세상 단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소설가다.


영화 '라스트 레터' 국내 메인 포스터

<라스트 레터>(ラストレター, Last Letter, 2020), 이와이 슌지 감독

2021년 2월 24일 (국내) 개봉, 120분, 전체 관람가.


출연: 마츠 다카코, 히로세 스즈, 키마키 류노스케, 안노 히데아키, 모리 나나, 후쿠야마 마사하루,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등.


수입: (주)미디어캐슬

배급: (주)스튜디오산타클로스


영화 '라스트 레터' 스틸컷

*(★ 8/10점.)

*<라스트 레터> 예고편: (링크)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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