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얼굴 1895>(2021)는 2013년 초연돼 2020년 7월 4연 막을 올린 동명의 창작가무극 실황을 담은 작품이다. '1895'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명성황후'와 을미사변 자체보다는 가공의 인물인 '휘'와 '선화'에 더 무게가 실렸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전체의 중심을 지탱하는 것은 차지연이 연기한 '명성황후'가 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코로나 19로 인해 작년 4연 당시 공연 기간이 예정보다 짧아졌다는 점에서도 2021년에 만나는 실황은 한층 더 일상 바깥의 것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 스틸컷
사진사 '휘'의 시점에서 재생되는 과거. 지난 일은 그대로 박제돼 있지 않고 생각과 해석의 주체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재소환된다. 왜 '명성황후'에게는 고종과 달리 공인된 사진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출발한다. 객석에서 볼 때 무대의 길이보다도 깊이가 더 인상적이며 3면에 투사되는 영상 역시 군무의 배경이 되는 미술 장치를 더 화려하게 담아낸다. 연기와 노래, 안무와 의상, 무대 장치와 영상 기술이 결합된 결과물이 표면적으로는 '명성황후/민자영'의 얼굴에 주목하는 듯하면서도 왕실보다 민중들의 시점에도 적지 않은 시선을 할애한다.
왕후 책봉 시점인 1866년부터 임오군란, 갑신정변과 을미사변을 아우르는 시대 배경이 크게 1897년 시점을 중심으로 1910년대까지 오가며 겹겹이 연결된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서사 구성과 흐름은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명성황후'는 물론 '김옥균'과 '휘', '선화'까지 골고루 조명하기 위한 의도였다면 사건 전개보다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쪽이 오히려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 스틸컷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 스틸컷
그러나 핵심이 되는 '잃어버린 얼굴'은 물론 '내가 울었노라', '대원환국' 등 주요 넘버들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 몰입감을 잃지 않게 하며 "별은 멀리 있지만 누구에게나 보이며 달은 작지만 천하를 비춘다"와 같이 기억에 남는 대사들도 곳곳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배우의 땀과 눈빛 등 실황으로만 표현 가능할 요소 역시 시선을 끝내 붙든다.
최종 막이 내릴 때 등장하는 마지막 사진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사진에 배우의 모습을 덧입힌 것인데, 일면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짧은 몇 개의 단어들로 누군가에게 재단될 인물의 삶도 어떤 이에게는 내내 들여다볼수록 더 깊이 일렁이는 입체적인 얼굴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휘'는 주로 민중이 아닌 왕실에서 쓰이는 이름인데 사진사 캐릭터의 이름이 되었다는 점도 본 작품의 의도를 일부나마 짐작하게 해 준다. 요컨대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역사적 해석이나 서사 전개보다는 공연 예술과 영상 예술이 접목된 결과물 그 자체로서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액자 안에만 머물지 않을 때, 더 많은 이야기가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넘어 시작될 수 있다.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 포스터 <잃어버린 얼굴 1895>(2021), 이지나 감독
2021년 2월 24일 개봉, 148분, 전체 관람가.
출연: 차지연, 김용한, 최정수, 강상준, 신상언, 김건혜, 금승훈 등.
제작/배급: (재)서울예술단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 스틸컷 *
현장에서 만나지 못하고 실황으로 먼저 보게 된 이 이야기가, 작중 차지연의 한마디처럼 마스크를 쓴 채 긴장 속에 스크린으로 시선을 향하는 관객에게 물어오는 기분이기도 했다. "모두, 무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