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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0. 2021

필요한 소비를 하고 그것의 영향을 인식하는 일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2021) 리뷰

미리 고백하자면 내 경우는 철저히 맥시멀리스트에 해당되는 삶을 살고 있다. 책 구입이나 영화 관람 등에 뒤따르는 각종 굿즈들을 좋아하고 집에는 자연히 온갖 물건들이 산재해 있는데 경우에 따라 그것들 중 일부 혹은 다수는 평소에 거의 꺼내지지 않거나 활용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심리적 풍족함 내지는 안정감 같은 것을 준다. 콘텐츠 스타트업 ‘디에디트’의 웹사이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라는 문구처럼, 크고 작은 소비가 일상에 가져다주는 원동력이라는 건 내게 있어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확실한 무엇으로 와 닿는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2021)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그것을 주변에 전파하고 있는 조슈아 밀번, 라이언 니코디머스 등 여러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인터뷰와 일상 안팎의 모습들을 포착한 다큐멘터리다.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면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넘어, 이들은 보다 넓은 가치를 미니멀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스틸컷

미국에서 1950년대 연간 50억 달러 정도였던 광고비 지출 규모는 2020년 2,400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한다. 70년 동안 48배 증가한 광고비 규모는 물론 여러 기술과 산업 측면의 변천과 발전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세계에 물건이 너무 많아졌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광고와 홍보, 마케팅은 나날이 진화하여 ‘당신은 지금 이 물건을 필요로 한다’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심어주기도 한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Steve Jobs, 1955-2011


“흔히 사람들은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다르게 접근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무언가를 원하기 전에 이미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니다. 헨리 포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만약 제가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아마 “더 빨리 달리는 말을 원한다”라는 대답을 들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것을 원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게 제가 시장 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아직 쓰이지 않은 것을 미리 읽어내는 일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스틸컷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 위의 말은 전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말이며 PR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디어와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은 자신의 삶을 외부에서 정해놓은 가치와 트렌드에 맞추도록 이끌기도 한다. 말하자면 자기 삶의 가치관과 취향을 더 많은 물건을 사는 행위로 충족하고 스스로의 소속감이나 만족감에 대한 욕구를 소비를 통해 해소하도록 하는 역할도 있다.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이러한 속성을 꼬집는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불평과 불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내 경우의 ‘덕질’과 같은 행위가 행복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게 아님에도 소비 활동으로 연결 짓는 순간, 즉 남들과의 비교가 일상을 조금씩 잠식해나가는 순간, 그것은 소유를 넘어 인생 자체를 남의 것과 비교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포스터


조슈아와 라이언은 “다들 한 번쯤은 인생을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건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원래의 모습을 영원히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해나갈 수 있는 삶. 미디어와 타인에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압도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볼 줄 알고 자신 다움을 찾는 삶.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은 어쩌면 ‘쓸데없이 복잡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우리에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해 볼 시간을 준다. “우리가 꿈꾸는 건 주도적인 삶입니다. 완벽한 삶도 아니고 쉬운 삶도 아니지만 간단한 삶이죠.” 조슈아와 라이언은 “#LessisNow”라는 슬로건(‘적을수록 좋다’라는 뜻)을 걸고 사람들에게 하루에 한 가지씩, 두 가지씩, 그리고 세 가지씩 나날이 필요 없는 물건을 비워내고 일상에 단순함을 부여하는 활동을 설파하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스틸컷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2016)라는 다큐멘터리가 이미 있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은 그 느슨한 속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상영시간이 53분에 불과한 이번 작품이, ‘미니멀리즘’이라는 어쩌면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가치에 대해 제대로 전달해내기에는 한계도 있다. 어쩌면 그 공백은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있는 여러 다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른다. 가령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2019)라든지, <THE 정돈된 라이프>(2020)라든지, 나아가 <데이비드 애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2020) 등과 같은 환경 관련 작품들도 물론 거기 포함된다.


필요한 것만을 소비하기 위해 애쓰고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을 억제하는 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잘 찾아보면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나 하나’의 행동이, 과연 사회와 세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속한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내 삶이 ‘내 삶의 바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것임을 아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소한 자신이 사는 물건, 자신이 소비하는 어떤 행위가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 어쩌면 미니멀리즘의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포스터

최근에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의 일상적인 식습관이나 소비습관 등을 바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눈에 그들은 주의력과 절제야말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올 시대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만든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에 해방의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일상에 활기와 아름다움과 품위를 부여하고 심지어 새로운 의미까지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한다. 삶의 해방은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삶의 해방은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해내면서 온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다 있다(그런데 역설적으로 무엇을 하는 순간은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 순간은 무엇을 하는 순간이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 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이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에는 혜성의 꼬리 같은 것이 필수적으로 붙는다. 선택과 행동이다. 페터 한트케는 타인의 뿌리를 뽑는 것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범죄이나 자신의 뿌리를 뽑는 일은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했다. 하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서라도 다르게 살기를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선택한 사랑의 행위들은 우리가 죽은 뒤에도, 아주 오래된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로 영원히 살아남을 텐데.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위고, 2020, 76쪽)



https://www.netflix.com/title/81074662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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