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 주간지 <씨네21> 창간 26주년 기념 두 번째 특대호인 1,301호에는 '2010-2020 최고의 영화 10'이라는 특집 기획으로 국내외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이 선정한 영화 리스트가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사한 기회로 이번 지면에 제 사적인 리스트를 실었어요. 나름의 기준과 의미에서 고르고 고른 2010년~2020년 최고의 영화 열 편의 목록과 그 선정 이유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를 포함했습니다.
다른 분들과 겹치는 영화도 있지만 저만 뽑은 영화도 있고, 열 편 안에 넣을까 말까 하다가 피드에 올린 11-20위에 넣은 작품들로 대신한 영화도, 아직 관람하지 못한 영화들의 이름도 여럿 눈에 띄네요. 이번 설문에 참여한 사람은 저를 포함해 92명입니다. <씨네21> 1.301호의 39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특집 지면에서 제 영화 목록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고른 열 편입니다.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 등을 통해 제 글을 계속 읽어온 분이라면 나머지 영화들 중 일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1. <로마>(2018, 알폰소 쿠아론)
쿠아론에게 영화 속 '클레오'가 그랬듯, 내 삶 역시 혼자의 힘으로 살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2. <레디 플레이어 원>(2018, 스티븐 스필버그)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스필버그와 클라인의 이 이야기를 만나고 난 뒤, '그럴 수 있다'라고 믿게 되었다. 어떤 '덕질'은 세상도 능히 구할지도 모른다.
3. <컨택트>(2016, 드니 빌뇌브)
'한나'에게 해주는 '루이스'의 말처럼, 내 삶 너머에도 이야기가 존재할까? 이 영화야말로 내게는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확고한 세계다. 테드 창과 드니 빌뇌브의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의 매혹이다.
(...)
4. <쓰리 빌보드>(2017, 마틴 맥도나)
서로에게 상처 낸 이들이 자신의 마음에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어보는 영화. "가면서 결정하자"라는 말은 내 인생의 대사가 되었다.
5. <다가오는 것들>(2016, 미아 한센 러브)
시련이 나에게 ‘닥쳐온’ 것이 아니라 ‘다가온’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순간 삶에는 무엇인가 일어난다.
6.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이안)
희망의 낮과 절망의 밤들 사이에서 잔혹하지만 희망적이다. 파도가 지나가고 나서도 마음은 요동친다.
7. <패터슨>(2016, 짐 자무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내일도 무엇인가를 계속 쓸 것이다. 일상의 작은 예술들을 옹호하는 짐 자무시의 시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일주일의 마법.
8. <휴고>(2011,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도 영화를 좋아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9. <작은 아씨들>(2019, 그레타 거윅)
어떤 이야기는 반복할수록 더 중요해진다. 루이자 메이 올컷을 100년도 넘게 지나서 다시 만나는 일이, 이렇게 2020년대에 와닿을 줄이야.
10. <스타 이즈 본>(2018, 브래들리 쿠퍼)
연기 잘하는 사람의 노래와 노래 잘하는 사람의 연기가 만나 탄생한, 야심 없이도 매끈하고 탄탄한 감독 데뷔작.
'2010-2020 당신의 영화 베스트 10은 무엇입니까 ('로마', '레디 플레이어 원', 그리고...) 평론가 달시 파켓 님, <세컨드> 편집인 안정연 님의 다음으로 내 목록이 실렸다. 사실은, 열 편만 고르기 아쉬워 <씨네21>에 실은 열 편의 영화 외에 따로 열 편을 더 골랐습니다. 말하자면 1번부터 10번까지의 영화 대신, 번외로 고른 11번부터 20번까지의 영화. 물론 이는 ‘1번으로 꼽은 영화보다 11번으로 꼽은 영화가 더 못 만들었다’ 같은 뜻을 담지는 않습니다. 선호가 우열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좋아하는 영화들의 이름과 그 잔영을 떠올리는 흐뭇함(!), 열 편 안에 들지 못할 영화를 가려내야 하는 절망(?), 골라낸 열 편의 순위를 매겨야 한다는 고통(?) 속에 그 열 편을 고르고 골라내는 일은 제법 많은 즐거움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매년 느껴왔지만 제 목록은 언제나 영미권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여전히 편식 혹은 편향의 흔적도 적지 않군요. 고민 끝에 열 편 안에 포함하지 못한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영화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1. <그래비티>(2013, 알폰소 쿠아론)
12. <보이후드>(2014, 리처드 링클레이터)
13. <캐롤>(2015, 토드 헤인즈)
1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셀린 시아마)
15. <기생충>(2019, 봉준호)
16. <그녀>(2013, 스파이크 존즈)
17.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아녜스 바르다)
18. <소셜 네트워크>(2010, 데이빗 핀처)
19.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마틴 스코세이지)
20.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케네스 로너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각자에게는, 2010년대를 기억하게 할 최고의 영화는 어떤 작품들이었을지요.
여러 감독, 평론가, 기자들의 각자의 영화 목록을 읽는 일도 이번 <씨네21>의 큰 즐거움이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임수연 기자님께, 그리고 제 목록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해주신 이다혜 기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