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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5. 2021

‘하우스 오브 카드’부터 ‘아이 엠 낫 오케이’까지

내 넷플릭스 기록장에게

이 글은 특정한 작품의 리뷰라기보다 그간의 기록을 보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록의 기록'이다. 따라서, 길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이 엠 낫 오케이>(I am Not Okay with This, 2020)에서 ‘시드니’(소피아 릴리스)의 내레이션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Dear Diary.”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이 엠 낫 오케이' 스틸컷


일기장에게. 교내 상담 교사에게 받은 일기장, “감정 정리에 도움이 된다”라며 불쑥 건네받은 노트. 시드니의 기록은 그전부터 이미 쓰이고 있었지만 일기장의 존재가 다가온 순간부터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 기록은 언제부터였지?


영화에 관한 것으로 한정할까. 2013년 7월 10일 시작한 네이버 블로그의 첫 글에서 당시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는 과거의 어떤 것으로 인해 발생하였고, 지금의 나의 행동이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또다시 미래의 다른 일들의 단서/원인이 될 것이다." 워쇼스키 자매와 톰 티크베어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에 관한 ‘포스팅’(‘리뷰’라고 칭하기는 다소 민망한 글이기 때문에 이렇게 호명하겠다)에 적었던 문장.



참고 글: ‘김동진의 말’ 01 - “가면서 결정하자고.”

https://brunch.co.kr/@cosmos-j/1228



"시드, 생각해 봤는데 엄마랑 누나랑 대화를 하면 어때? 심술은 빼고. 난 학교에 있을 때 아무한테도 나쁜 말은 안 하려고 노력해. 그럼 대부분 아무도 나한테 나쁜 말 안 해. 근데 누나랑 엄마는 서로 화낼 이유만 찾는 것 같아."

(4화, 시드와 리암의 대화 중에서)


회당 19분에서 28분. <아이 엠 낫 오케이>는 불과 7개 에피소드, 156분이라는 짧은 호흡으로도 3~4시간 분량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훌륭한 시리즈다.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던 건 주인공 '시드'와 자신의 일기장(내내 'Dear Diary'로 언급된다)의 관계였지만 동생 리암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도 꽤 세심하게 그려진다. 다만 여러 사정으로 작년 시즌 2 제작이 공식적으로 취소된 이후 아직까지 후속 소식은 없는 상태. 표면적인 얼개로는 영화로 따지자면 일단 조쉬 트랭크의 <크로니클>(2012)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고 어떤 능력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일들과 그로부터 '시드'가 겪게 되는 상황들은 드라마 <제시카 존스>(2015-2019) 시리즈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제시카 존스>에 관해서는 두 번째 시즌을 보고 나서 이렇게 남긴 기록이 있다.



"난 삶을 살았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그게 내 선택이었다는 것도 모른 채."
(시즌 2, 에피소드 13의 독백 중)

사고로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된 영웅의 이야기, 가 아니라 영웅일 생각도 없었고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인물의 이야기. 액션 대신 내면, 빌런 대신 주변인, 그리고 환희 대신 나락. 제시카 존스는 점점 고독해지고 외로워져 가지만, 어쩌면 다음 시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그저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 시즌 2를 보면서. 여태껏 본 가장 쓸쓸한 독백이었지만 그럼에도. 보는 내내 마음 아픈 드라마였지만, 끝내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를 보면서. (2018.04.18.)


기록은 이런 식으로 의식을 확장시킨다.


위 글을 쓸 당시는 아직 <제시카 존스>의 세 번째 시즌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제시카 존스>부터 <루크 케이지>, <데어데블> 등에 이르기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진 마블 코믹스 원작 드라마들은 이제 제작되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시카 존스' 시즌 3 포스터

넷플릭스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16년 하반기의 일이다. 당시 데이빗 핀처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며 케빈 스페이시, 로빈 라이트 등이 출연하며 지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사실상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인 <하우스 오브 카드>(2013-2020)의 첫 번째 시즌부터 세 번째 시즌까지를 며칠 만에 다 봤다. 마치 폭식하듯이 몰아서 많은 콘텐츠를 연이어 감상한다는 뜻의 ‘빈지 워칭(Binge Watching)’이란 단어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고 난 뒤에는 정치 드라마라는 점에서 일부 유사점이 있는 <지정생존자>를 봤다.


*주: 2018년 공개된 <지정생존자> 시즌 3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졌으나 <지정생존자>는 본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니라 ABC 드라마다.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인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는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있던 날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던 중 뜻밖의 사고를 접한다.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비롯해 상원, 하원, 내각 할 것 없이 수백 명의 행정부 및 의회 인사들이 모두 사망하고,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 안전가옥에 있던 톰은 후드티 차림으로 경호원들에게 불려 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고 변화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설정으로 1화를 시작하는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타 정치 드라마와는 그 결을 전혀 달리한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중심으로 네 개의 시즌에 걸쳐 일체의 온기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하우스 오브 카드>와 달리, <지정생존자>는 처음부터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루아침에 국가의 미래를 떠안게 된 한 사람의 내면을 따라간다.

주지사들은 대통령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와는 담쌓고 살던 가정적인 사람이었던 톰은 당면한 문제들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불신을 감내하며 조금씩 지도자라는 역할에 단단한 진정성으로 임하기 시작한다. 이상적인 지도자로서의 가능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연기에, 자극적이지 않은 조미료들까지 더해져 <지정생존자>는 훌륭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10화까지만 방영되었으며, 11번째 에피소드는 2017년 3월 중 ABC를 통해 방영될 예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됨과,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정체성에 대한 주제의식을 잘 전달하는 좋은 드라마다. (2017.02.04.)


"저도 꼭 보고 싶어 졌습니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
아니 좋은 사람이라서 이기는 세상을요."


위의 작품은 지진희 주연의 <60일, 지정생존자>(2019)로 리메이크돼 tvN에서 방영되었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마지막 16회에 나오는 위의 말을 기억했다.



넷플릭스가 한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 다른 작품을 만나게 하는 방식은 내게 일상적으로 영화를 보고 난 뒤 다른 영화를 찾아보는 과정과 닮았다. 특정 영화를 본 뒤 그 영화가 마음에 들게 되면, 우리는 같은 감독의 다른 연출작을 찾아보거나 특정 배우의 다른 출연작을 찾아보거나, 유사한 소재나 장르의 다른 작품들을 찾는다. 말하자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고 나서 <지정생존자>를 본다는 건 정치 소재 드라마에 흥미를 느꼈다는 의미다.


넷플릭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실황을 다시 보던 어느 날 밤.


물론 언제나 넷플릭스의 추천은 흔히 말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예상치 못한 작품으로의 선택을 이끈다. 가령 <지정생존자>를 보고 난 뒤 내가 이어서 본 시리즈는 <당신과 나, 그리고 그녀>(2016)이며 <센스 8>(2015)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CW채널 드라마인 <다이너스티: 1%의 1%>(2017) 역시 이 시기에 넷플릭스로 감상했다.) 이 무렵만 해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 영화보다는 드라마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 전혀 다른 소재나 장르, 출연진, 제작진의 작품을 연이어 혹은 비슷한 무렵에 만나게 해주는 건 다른 OTT 플랫폼들도 마찬가지이겠으나 넷플릭스 환경에서 작품을 만나는 일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극장에서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작품을 선택하고 관람하는 일이 환경적으로 일부 제약이 있기도 할 테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1의 4화 '신의 선택'에는 '그레이트 스모그'라는 이름이 붙었던 1952년 런던의 스모그 현상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공식 가시거리가 1미터에 불과할 정도의 심각한 안개와 매연으로 도시가 마비되었고, 처칠은 곧 지나갈 자연현상 정도로 가벼이 여겨 정적들의 질타를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 처칠은 한 비서로부터 자신이 젊은 날에 용기와 신념에 관하여 썼던 책의 내용에 대해 상기하게 되고, 당시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시내의 병원을 찾아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던 시민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연설을 통해 정세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2018년 1월 5일,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 리뷰 ‘가장 어두웠던 시간, 그러나 그는 희망을 보았다’ 중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시즌 4 스틸컷


https://www.netflix.com/title/80025678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는 그 화제성만큼이나 작품성 면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역시 그중 하나다. 왕관을 형상화 한 오프닝 크레디트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품. 첫 시즌을 다 감상한 뒤 이렇게 썼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여러 작품들을 잡식하고 혼용하는 탓에 유독 <더 크라운>은 불과 10개의 에피소드인 첫 시즌을 보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드라마는 일주일에 두 시즌을 보기도 했는데, <더 크라운>에는 몇 달이 필요했다. 게다가 보통의 드라마는 종종 오프닝 크레딧은 스킵하기도 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한 번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드라마와 함께인 동안 비슷한 연대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개봉하기도 했고 <덩케르크>의 블루레이가 나오기도 했으니, 무엇보다 품절됐던 <킹스 스피치> 블루레이를 중고로 구하기도 했으니, 나름대로는 영국 현대사와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대적으로는, <더 크라운> 시즌 1은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부터 '처칠의 퇴임'까지다. 영국 현대사를 소상히 알지는 못하지만 굳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미국 영어보다 영국 영어를 좋아해 왔기 때문이고, 또 (적어도 내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쪽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더 뛰어나게 다가왔기 때문인데, <더 크라운>은 한스 짐머가 오프닝 타이틀 테마곡에만 참여했다는 것에 굳이 아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연출진과 각본진을 비롯한 제작진의 라인업이 정말 탄탄하다. (시즌 1의 음악은 이듬해 <원더 우먼>(2017) 등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던, 루퍼트 그렉슨-윌리엄스가 맡았다.) 배우는 물론 제작진 필모그래피만 찾아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물론 의상과 촬영도 훌륭하다. 유려하고 섬세한 미장센, 드라마의 기품, 세밀한 감정 묘사, 치밀한 관계 설정. 잔잔한 듯 보이지만 내내 감탄하면서 보게 되는 드라마다. '릴리벳'은, 딸이기도 했고, 언니이기도 했고, 아내이기도 했으며, 마침내 여왕이어야 했다. 왕관의 무게를 그녀는 오로지 혼자 감당했다. 혹독한 한 시즌을 보내고서야 그녀는 정말 '엘리자베스’가 되었다. (2018.07.08.)



이렇게 남겨진 기록들을 보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감회를 주지만 어떤 작품을 감상할 당시에 보았거나 보고 있었던 다른 작품들을 연이어 떠올리게 된다. <더 크라운>을 보는 동안 <다키스트 아워>나 <덩케르크>, <킹스 스피치> 등 영국 역사와 관련된 여러 인접한 작품들을 함께 만나기도 했으니,


기록은 결국 지난 삶의 조각 일부를 재조립하게 해 준다.


그 후 만난 작품들은 또다시 여러 장르와 국적, 소재 등을 넘나 든다. 나오미 왓츠와 빌리 크루덥이 주연한 <집시>(2017)를 비롯해 캐서린 랭포드와 딜런 미넷이 주연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2017), 그리고 ABC 드라마이지만 현재 시즌 8까지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있는 제임스 스페이더 주연의 <블랙리스트>(2013~), 그리고 김은희 작가의 <킹덤>(2019~2020), <너의 모든 것>(2018)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홀로인 채로 태어나지만, 그래서 서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
(12화 중에서)

진짜가 아닌 것을 믿고 거기 기대고 싶은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아니, 여기 없는 것을 만들어야만 했던 이들의 소중한 집념을 헤아리는 이야기. 필연적 이게도 <나 홀로 그대>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교감은 가능한가' 같은 뻔한 질문에 그치지 않는 이야기다. 대신, 사람과 기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관한 테마에서 시작해 사람이 얼마나 홀로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존재인가에 대해, 그로 인해 서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해 다룬다.

2020년 2월 23일, 윤현민, 고성희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 홀로 그대>를 보고


https://www.netflix.com/title/81008021



2020년에도 여러 소중하거나 의미 있는 넷플릭스 작품들을 만났다. <나 홀로 그대>를 시작으로 <킹덤> 시즌 2, 그리고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반쪽의 이야기>, <내 몸이 사라졌다>, <올드 가드> 등의 영화와 드라마들. 2021년 현재, 넷플릭스 생활은 진행형이다. 내 경우 집에 TV를 두지 않고 있는 덕분에(?) <런 온>이라든가 <더 킹: 영원의 군주>, <미스터 션샤인>, <뷰티 인사이드> 등 여러 좋아하는 tvN이나 JTBC 드라마를 시청한 것도 넷플릭스를 통해서였다.


여전히 콘텐츠 감상 및 관람 환경으로서 집이 아닌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고 체험시킬 수 있는 가치를 옹호하는 쪽이다. 하지만 거실에서, 안방에서, 침실에서 만나는 영화와 드라마가 주는 가치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면 기록은 그 영화를 전부 다 보고 난 뒤에 제대로 할 수 있다. 당연히 영화는 매체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의도한 대로 멈춤이나 되돌림 없이 감상하도록 만들어진 매체이며 그것은 몰입이라는 속성을 기초로 한다.


넷플릭스의 여러 멈춤의 순간들


만약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감상한다면, 자연히 극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은 퇴색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장면이나 대사에서 멈춘 채 그 의미를 곱씹는 일이나 특정한 대목에서 생각이나 감정에 잠긴 채 그것을 잠시 기록해두는 일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노트북으로 넷플릭스 작품을 감상하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통해 메모를 남기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앞으로의 콘텐츠 감상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HBO Max를 통해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를 보면서, 그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상영시간의 제약이 사실상 없는 스트리밍 플랫폼 독점 공개를 전제로 했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양면성을 느꼈다.



이 글의 마무리는, 역시나 “일기장에게”라는 <아이 엠 낫 오케이> 속 내레이션으로부터 착안해야겠다. 몇 년 전부터 지금껏 계속해서 쓰여온 내 영화와 드라마 기록, 그리고 넷플릭스 작품으로부터 쓰인 기록들을 다시 읽는다. 정혜윤은 책 『아무튼, 메모』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때의 노트들은 이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모들은 지금의  삶과 관련이 깊다. 나였던  사람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에 노트에  것들이 무의식에라도 남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어느  무심코   행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이게 메모를 하는 가장  이유인지도 모른다.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에 찌들지 않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고,  삶을 살기 위해서."

(35쪽, 위고, 2020)


며칠 전 에버노트 계정에 만들어진 ‘노트’의 개수가 5천 개를 넘어섰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 숫자가 ‘5,011’을 가리킨다.) 기록도 쌓이고 쌓이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썼는지 한동안 검색하거나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그러나 찾으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과, 머릿속에만 희미한 형체와 감각으로 어렴풋이 존재한다는 자각은 꽤 다른 것이다. 나름대로의 사적이고 부지런한 기록장을 다시 펼쳐볼 때 상기되는 것 중 하나는 그 기록에서 무언가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내 에버노트에서 ‘넷플릭스’를 검색하면 262개의 검색 결과가 뜬다. 짧고 단순한 메모에서부터 일정한 분량과 형식을 갖춘 리뷰에 이르기까지 넷플릭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기록이 전체 기록의 5%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내 에버노트 계정은 2012년에 만들어졌다.)


넷플릭스의 여러 멈춤의 순간들(2)


내 경우 콘텐츠를 만나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일단 영화 블루레이와 DVD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왓챠를 구독 중이고, 한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구독했으며, 웨이브를 구독한 적이 있으며,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 중이고 음악까지 포함하면 멜론과 애플 뮤직도 사용하고 있다. 오늘은 브런치에서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활동한 마지막 날이다. 기록들을 한참이나 꺼내보았지만, 내게 넷플릭스로 만나는 콘텐츠 생활은 삶에 있어 분명 5퍼센트보다는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든 아니든, '찜' 해놓은 작품들만 수십 개가 넘는다. 다 볼 수 있을까... 매주 쏟아지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과 음악들 속에서, 왠지 평생을 허우적거리다가 '아 그거 아직 못 봤는데...'의 연속으로 이 삶이 흘러갈 것만 같다. 그런데, 그래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디어 다이어리.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까? 세상에 찌들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도 미지의 세계 속으로 - Over The Top -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어제 본 <아이 엠 낫 오케이> 마지막 7화를 오늘 다시 본다.


https://www.netflix.com/title/80244781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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