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넷플릭스 기록장에게
“Dear Diary.”
"난 삶을 살았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그게 내 선택이었다는 것도 모른 채."
(시즌 2, 에피소드 13의 독백 중)
사고로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된 영웅의 이야기, 가 아니라 영웅일 생각도 없었고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인물의 이야기. 액션 대신 내면, 빌런 대신 주변인, 그리고 환희 대신 나락. 제시카 존스는 점점 고독해지고 외로워져 가지만, 어쩌면 다음 시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그저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 시즌 2를 보면서. 여태껏 본 가장 쓸쓸한 독백이었지만 그럼에도. 보는 내내 마음 아픈 드라마였지만, 끝내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를 보면서. (2018.04.18.)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인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는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있던 날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보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던 중 뜻밖의 사고를 접한다.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비롯해 상원, 하원, 내각 할 것 없이 수백 명의 행정부 및 의회 인사들이 모두 사망하고,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로 안전가옥에 있던 톰은 후드티 차림으로 경호원들에게 불려 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고 변화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설정으로 1화를 시작하는 드라마 <지정생존자>는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타 정치 드라마와는 그 결을 전혀 달리한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중심으로 네 개의 시즌에 걸쳐 일체의 온기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하우스 오브 카드>와 달리, <지정생존자>는 처음부터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루아침에 국가의 미래를 떠안게 된 한 사람의 내면을 따라간다.
주지사들은 대통령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와는 담쌓고 살던 가정적인 사람이었던 톰은 당면한 문제들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불신을 감내하며 조금씩 지도자라는 역할에 단단한 진정성으로 임하기 시작한다. 이상적인 지도자로서의 가능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연기에, 자극적이지 않은 조미료들까지 더해져 <지정생존자>는 훌륭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10화까지만 방영되었으며, 11번째 에피소드는 2017년 3월 중 ABC를 통해 방영될 예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됨과,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정체성에 대한 주제의식을 잘 전달하는 좋은 드라마다. (2017.02.04.)
"저도 꼭 보고 싶어 졌습니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
아니 좋은 사람이라서 이기는 세상을요."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1의 4화 '신의 선택'에는 '그레이트 스모그'라는 이름이 붙었던 1952년 런던의 스모그 현상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공식 가시거리가 1미터에 불과할 정도의 심각한 안개와 매연으로 도시가 마비되었고, 처칠은 곧 지나갈 자연현상 정도로 가벼이 여겨 정적들의 질타를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 처칠은 한 비서로부터 자신이 젊은 날에 용기와 신념에 관하여 썼던 책의 내용에 대해 상기하게 되고, 당시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시내의 병원을 찾아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던 시민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연설을 통해 정세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2018년 1월 5일, 영화 <다키스트 아워>(2017) 리뷰 ‘가장 어두웠던 시간, 그러나 그는 희망을 보았다’ 중에서)
평소에도 그렇지만, 여러 작품들을 잡식하고 혼용하는 탓에 유독 <더 크라운>은 불과 10개의 에피소드인 첫 시즌을 보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드라마는 일주일에 두 시즌을 보기도 했는데, <더 크라운>에는 몇 달이 필요했다. 게다가 보통의 드라마는 종종 오프닝 크레딧은 스킵하기도 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한 번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드라마와 함께인 동안 비슷한 연대에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개봉하기도 했고 <덩케르크>의 블루레이가 나오기도 했으니, 무엇보다 품절됐던 <킹스 스피치> 블루레이를 중고로 구하기도 했으니, 나름대로는 영국 현대사와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대적으로는, <더 크라운> 시즌 1은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부터 '처칠의 퇴임'까지다. 영국 현대사를 소상히 알지는 못하지만 굳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미국 영어보다 영국 영어를 좋아해 왔기 때문이고, 또 (적어도 내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쪽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더 뛰어나게 다가왔기 때문인데, <더 크라운>은 한스 짐머가 오프닝 타이틀 테마곡에만 참여했다는 것에 굳이 아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연출진과 각본진을 비롯한 제작진의 라인업이 정말 탄탄하다. (시즌 1의 음악은 이듬해 <원더 우먼>(2017) 등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던, 루퍼트 그렉슨-윌리엄스가 맡았다.) 배우는 물론 제작진 필모그래피만 찾아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물론 의상과 촬영도 훌륭하다. 유려하고 섬세한 미장센, 드라마의 기품, 세밀한 감정 묘사, 치밀한 관계 설정. 잔잔한 듯 보이지만 내내 감탄하면서 보게 되는 드라마다. '릴리벳'은, 딸이기도 했고, 언니이기도 했고, 아내이기도 했으며, 마침내 여왕이어야 했다. 왕관의 무게를 그녀는 오로지 혼자 감당했다. 혹독한 한 시즌을 보내고서야 그녀는 정말 '엘리자베스’가 되었다. (2018.07.08.)
"우리는 모두 홀로인 채로 태어나지만, 그래서 서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
(12화 중에서)
진짜가 아닌 것을 믿고 거기 기대고 싶은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아니, 여기 없는 것을 만들어야만 했던 이들의 소중한 집념을 헤아리는 이야기. 필연적 이게도 <나 홀로 그대>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교감은 가능한가' 같은 뻔한 질문에 그치지 않는 이야기다. 대신, 사람과 기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관한 테마에서 시작해 사람이 얼마나 홀로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존재인가에 대해, 그로 인해 서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해 다룬다.
2020년 2월 23일, 윤현민, 고성희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 홀로 그대>를 보고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