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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17. 2019

희망을 이야기하자며 손 내미는 드라마

tvN <60일, 지정생존자>를 보면서

정치와는 인연이 멀어 보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참혹한 테러 정국에서 한순간에 대통령이 되고, 정치 경력과 경험이 없어 안팎의 공세와 위협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좋은 보좌진의 도움으로 조금씩 '진짜 대통령이 되어가는' 이야기.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ABC 드라마 원작의 기본적인 설정을 단지 다시 가져오기만 하는 게 아니다. 국내의 정세와 환경에 맞게 일부 변화를 준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성격과 특성의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와 '박무진'(지진희) 사이에 훌륭한 공통점, 즉 주인공의 선택과 성장이 결국 작품 전체의 세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대변한다는 점을 <지정생존자>가 그랬듯 <60일, 지정생존자>는 포착한다. 톰 커크먼이 잔여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일이든, 박무진이 딱 60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일이든 모두 완벽한 정답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지를 고민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그 진정한 뜻이 있겠다.



6화 중반의 어느 포장마차. "청와대 일이란 게 대부분 그런 일들이죠. 모범답안이 없는 답안지에 국민들은 매번 정답을 원해요. 지금, 당장, 그것도 눈앞에서."라는 한주승(허준호)의 말에 박무진은 묻는다. "궁금한데요. 실장님께선 대통령님께 어떤 조언을 드렸었는지." 한주승은 답한다. "장관님을 추천했습니다. 젊고, 유능하고, 정치색이 없어 정책에만 열중할 수 있는. 카이스트 교수 출신 환경부장관. 인사는, 메시지니까요. 청와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60일, 지정생존자>는 권한대행 혼자만의 성장기가 아니다. 원작이 그랬듯 비서실장과 대변인, 행정관, 경호원을 비롯한 주변 스태프들은 보좌진에 머물지 않고 자신들에게도 훌륭한 드라마가 있다는 걸 매 장면 드러낸다. 드라마를 보며 매 회차 마음에 닿는 말들을 메모 중이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특정 캐릭터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에게서 번갈아, 골고루, 계속해서 나온다. 말들은 발화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사회 과목에 좀 약하다'며 사전 찾아가며 한참 동안 헌법을 들여다보는 박 대행의 모습에서 성실함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국가 안보가 걸린 임무 수행을 '명령'하면서 대원을 사지로 보내야 해서 새벽잠을 설치는 박 대행의 모습에서 권력이란 기회이기만 하지 않고 무게일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 테러의 잔해 속에서 끝내 답을 찾고자 애쓰는 국정원 테러분석관의 눈빛과 걸음걸이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해서 파고들어야만 하는 일의 슬픔을 보게 된다.



드라마가 희망을 말하는 일이,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 더는 다치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일이, 무얼 그리 새삼스럽고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인 사회 인식을 담은 냉소적인 작품들만 볼 것인가. 뻔한 것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지금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60일, 지정생존자>는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매 순간 고민하는 인물들의 생생한 얼굴들을 놓치지 않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를 다져가고 있다. 현재까지 회당 평균 약 74분, 그리고 16부작이니까 앞으로 남은 에피소드는 열 개. 가장 먼저 공개된 사운드트랙의 제목 역시 'My Hope'다. 우리 다시 희망을 이야기합시다,라고 어떤 드라마는 그렇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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