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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23. 2019

여름은 짧아, 그러니 글을 써 여러분!

4주간의 클래스가 끝났다

7월 한 달간 특정한 요일을 기다 일이 있다면 그건 월요일이었다. 이다혜 기자의 클래스 <여름은 짧아 글을 써! 여러분>을 수강하는 네 번의 월요일. 저녁마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를 찾는 발걸음은 오직 '더 좋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마음의 필요와 고민에 의해서만 움직여졌다. 4주의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가? 글쓰기의 핵심은 거기에 없다.



"소설가 D. H. 로렌스는 "사람이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번째 삶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두번째 삶에서는 그 실수로부터 이득을 얻도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한 번의 삶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어느 소설에서 나도 쓴 적이 있지만, 사소한 실수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인생의 의미를 알아내려면 적어도 두 번의 삶은 필요하다. (...)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김연수, 『시절일기』, 레제, 2019, 19-20쪽에서)



앞의 책에서 김연수는 프란츠 카프카와 스테파니 도우릭의 책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최근에 '글을 쓰는 일의 진짜 가치는 과정에 있다'라는 사실을 이보다 잘 설명한 문장은 만나지 못했다. 이다혜 기자의 클래스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글쓰기에 관한 실질적인 노하우를,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고 있었지만 클래스 중에도 "내 표현을 잘하려면 타인의 것을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라는 말은 매 시간 빠지지 않았다. 하나 더. "누군가의 설명이나 요약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으로 긴 글을 읽고 생각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 역시 빠지지 않았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그렇지 않은 분야가 없기는 하겠으나 글쓰기 역시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없는, 오직 본인의 연습과 훈련만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글(문자)로 표현된 것은 생각이나 마음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나는 끝내 '완벽한 글'이라는 것을 쓸 수 없다. 다만 '쓸 수 있는 데까지', 지금 순간에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의 판단과 퇴고의 노력을 거쳐 '될 수 있는 한 잘 표현된' 나의 언어를 전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네 번의 강의를 마치고서야 "나는 어떤 영화에 대해 무엇을 왜 쓰고 싶은가"라는 진짜 질문이 시작되었다. 두 시간의 강의를 들은 후 네 번의 월요일 모두 명동 거리의 인파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두 시간 동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8시간의 수업을 들었다고 하여 당장 '480분만큼 더 좋은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과정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6월 말의 내 글과 7월 말 지금의 내 글 사이에 어떤 특정한 차이가 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방적 소통의 시대에 본인이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7월이었고, 영상 미디어의 시대에 글쓰기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한 7월이었다. 결국 좋은 글을 쓰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무조건 많이 읽고 계속해서 쓰는 것' 뿐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계속 시작되기만 하듯, 무엇인가를 쓰는 일 역시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2019.07.22.)


@명동역 근처, 커피빈에서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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