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ug 21. 2019

좋은 사람이 마땅히 이기는 세상을 꿈꾼 드라마의 힘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리뷰

<60일, 지정생존자>는 희망을 섣부른 판타지로 만들지 않으면서, 당면한 현실의 위협과 아픔들을 직시하고 '우리'가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를 공동체와 사회 일원으로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원작 <지정생존자>(ABC, 넷플릭스)의 주요 캐릭터와 설정, 에피소드 일부를 가져오되 대한민국 사회의 실정에 맞게 알맞게 현지화할 줄 알았고,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를 추가함으로써 이야기에 새로운 활력과 긴장을 동시에 가져다주었으며 시즌제 드라마가 일반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열린 결말'을 다음 시즌을 향한 바람으로 능히 만들었다. 하나의 의사결정을 앞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심하고 합심하여 정답 없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최선의 답안을 모색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쁜 일은 언제나 반복될 것이고, 사람들은 편을 나눠 경쟁하고 다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원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가운데 희망을 꿈꾸며,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 것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확인하며 내일이 오늘보다 아주 더 나빠지지만은 않을 거라고 기꺼이 믿어보는 일이,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결국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실패했다"라고 단언하지 않고 다만 더 나은 길을 찾고 있으며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라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타의적 선택에 휘둘리지도 누군가의 계산에 의해 차별받지도 않는, 오직 스스로 살아 있는 주체적 개인이자 이 세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60일, 지정생존자>는 60일간의 권한대행 이후 차기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희망을 확정된 것이 아닌 유보된 것으로 만든다.


'유보'라 함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다. 희망을 덧없으면서 쉽게 찾아오는 낭만으로 소비하지 않고 어렵사리 쟁취하며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끝끝내 맞이하고야 말 무엇인가로 만드는 일은, 문화가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희망이 언제고 거기 있으며 노력하는 한 다가오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개개인의 뜻을 잊지 않으면서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를 본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길, 이 드라마를 지켜본 8주 동안 내내 생각했다.


좋은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란, 현실에는 희망만 존재하지 않으며 또 현실에는 언제나 일생의 순간들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당신 생각은 어떠냐"라고 물어보는 사람, 본인 주장을 관철시키기 전에 상대의 마음은 어떨까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 각자의 자리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맡은 바에 소홀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특정한 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의 삶의 주인일 수 있다. <60일, 지정생존자>는 바로 그 역할을 16화 내내 잃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마땅히 이기는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에서 일부를 변용했다.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은 짧아, 그러니 글을 써 여러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