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Sep 01. 2019

그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모두의 생각을 그 자체로 존중할 수는 없다는 것

(며칠 전 일기에서 언급한, 영화 <벌새>에 대한 왓챠 모 코멘트를 읽고 며칠간 곱씹으며 느낀 점을 썼다.)


본인의 감상이 어떤지에 대해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본인과 완전하게 똑같은 생각과 감상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정말 문제는, 본인이 느낀 바를 표현하는 걸 넘어서 작품 너머의 감독/작가의 삶을 다 아는 것처럼 편향적으로 재단하는 일. 그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다. 작품만으로 그 이면의 작가의 삶에 대해 단언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그렇다. (행여 자전적 이야기가 일부 담겨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도 되는 조롱 같은 건 없다. 그건 비판이 되지 못한다.


1994년에 대치동에 살았다는 것 자체가 최상류층임을 반드시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혹은 영화의 배경이 대치동, 강남이라는 설정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떠나 그냥 그 영화가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데 작품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결여된 주장이 누군가의 존중을 기대할 자격이 있을까? 그가 과연 "다른 사람의 감상을 존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건, 특정 영화를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보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태도의 문제다. 표현 자체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비판과 비난을 구별하지 (않거나) 못하는 일, '취향 존중'을 말하면서 그것을 본인에게만 적용하는 일, (즉, 본인의 것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표현이며 자신의 의견을 향한 상대의 코멘트나 비판은 공격이나 시비라고 간주하는 경우.) 자신이 공개적으로 표명해놓은 주장이 있을 때 그게 누군가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일이 (적어도) 내 기준에선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모 작가님이 한 독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길 하셨다. "표현의 자유는 아무거나 써도 된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표현에 책임을 질 줄 알 때, 읽는 누군가를 염두에 둘 때에만 허락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랍시고 자기 생각만 중요하다며 아무 말이나 쓰는 건, 표현이 아니라 그저 배설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의 세상에만 살 게 아닌 한 '우리'는 언제나 타인에게 민감해져야 한다. (그건 나도 인간인 이상 마찬가지로 노력해야 하는 대목이다.) 혼자의 세계에 머무는 것보다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세계만이 타당하다고 느끼는 오만함이다. 오만하고 배타적인 사람의 취향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늘 생각한다. 감독이나 작가가 특정한 범죄나 사회적 가치에 반하는 무언가를 행한 게 아닌 이상, 창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삶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가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감상은 헤아려 줄 필요나 가치가 없다고 믿는다. (이에 아주 적확한 예시는 아니겠으나,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모든 고객을 그 자체로 존중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상대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뒤따를 때에만 '서비스'를 제공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걸 흔히 '매너'라 부르곤 한다.) '표현의 자유'나 '취존'을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사람은 그걸 누리기를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모두의 견해를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그건 최소한의 '대화의 태도'를 갖춘 이에게만 해당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모욕과 비하마저도 본인 감상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일은 '틀린'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위근우 기자님의 책 제목처럼.) 일단 표출부터 하기 전에 내 표현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볼 일이다. 자신이 그 영화에 대해 느낀 견해 자체를 수정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공개되는 말과 글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악플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정말로 누군가를 욕하거나 조롱하고 싶다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족할 일. 김영민 교수님의 칼럼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비판이 필요하다고 해서, 막말을 비판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을 수정하고 다듬으며 글을 지인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인터뷰와 다른 이들의 감상 등을 찾아봤다. <벌새>를 관람하고 나면 왓챠에 남긴 '보고 싶어요' 상태의 코멘트는 이 글 대신 별점을 포함한 영화에 대한 생각과 감상의 끼적임으로 대체되겠지만, 지금 여기 쓴 내용 자체는 철회할 생각이 없다. 나는 누군가 자신의 표현의 자유랍시고 다른 누군가에 대한 모욕적이거나 조롱, 비하 섞인 언사를 담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기꺼이 불편하게 여길 것이므로.




P.S. 그러나 나 역시 그 코멘트를 쓴 사람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글에다 '이 내용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라고 쓴 것 역시도 하나의 오만함인 걸까. "본인은 창작자의 노고와 고민에 대해 일말의 존중도 하지 않았으면서 정작 자신의 생각에 대해 그 누구라도 존중해주길 바라느냐"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링크)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반: (링크)

*영화 글 이메일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 (링크)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이 마땅히 이기는 세상을 꿈꾼 드라마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