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Mar 14. 2021

드라마 제작진이 출연 배우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NBC 드라마 [블랙리스트] 시즌 8

NBC의 범죄 드라마 [블랙리스트] 시즌 8 에피소드 6 '웰스톤 에이전시'의 줄거리는 넷플릭스에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범죄자들의 거래를 돕는 에이전시가 있다니. 레드가 준 정보로 전담반이 바빠진다. 한편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레드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죽음은, 드라마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넷플릭스에도 공개되고 있는 NBC 드라마 '블랙리스트'

이 에피소드는 'In Memory of Clark Middleton 1957-2020'라는 자막으로 마무리된다. 클라크 미들턴이 연기한 차량관리국(DMV) 직원 '글렌 카터'는 본작의 주인공 '레이먼드 레딩턴'(제임스 스페이더)에게 여러 방식으로 중요한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그의 업무 특성상 주로 사람을 찾아주는 쪽이었는데, '레이먼드'(레드)는 그를 싫어하는 듯 보이면서도 자기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에게 원하는 것을 다 제공해주는 등 적당히 느슨한 협력 관계를 이어간다.


배우 클라트 미들턴(1957-2020)


어떤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레이먼드'는 '글렌'의 어머니로부터 부고를 듣는다. 그가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때문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고. '글렌'의 가족과 주변인들은 일종의 포트럭 파티 행사를 만들어 그를 기리며 애도한다. 일종의 괴짜 같은 성격을 지닌 '글렌'은 생전 '레이먼드'에게 편지를 남겼다. 자기의 추도식에 '휴이 루이스'를 불러달라고. 둘은 일면식도 없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글렌'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휴이 루이스'와 막역한 사이인 걸로 알고 있었고, '레이먼드'는 '글렌'의 어머니가 실망할 것을 우려해 '휴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이 '휴이 루이스' 역시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다.

 

드라마 [블랙리스트]에 출연한 가수 휴이 루이스


'글렌'과 마찬가지로 그를 연기한 클라크 미들턴 역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로 사망했다. 드라마 속 '레이먼드'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작진에게도 이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고민이 생겼다. 그가 해고된 것으로 할까,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난 것으로 할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 것으로 할까? 제작진은 어떤 식으로든 '글렌'의 부재를 드라마 전개 속에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인 제작자 존 보켄캠프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결국 드라마 안에서도 그가 죽은 것으로 하여 그를 애도하기로 했다. 상술한 휴이 루이스는 [블랙리스트]의 여러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 커트 쿠엔이 마침 휴이 루이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기에 섭외되었다.


드라마 [블랙리스트] 속 '글렌 카터'의 추도식


클라크 미들턴은 4세 때부터 소아 특발성 관절염을 앓았지만 1983년부터 2020년까지 45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시즌당 19~22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 [블랙리스트]에서 클라크 미들턴이 출연한 회차는 총 열세 개. 비중이 크지도 않고 출연 분량이 많지도 않지만 [블랙리스트]의 제작진은 '글렌 카터'를 그저 드라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아닌, 하나의 삶으로서 그 자체로 존경하고 깊이 애도했다.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이 폴 워커(1973-2013)를 떠나보낸 것과 같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 배우나 스태프를 애도하는 방식과 사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가 클라크 미들턴을 떠나보내기 위해 한 회차의 전반을 할애한 이 에피소드를 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클라크 미들턴은  <킬 빌 vol. 2>(2004), <씬 시티>(2005), <설국열차>(2013) 등에도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드라마 [블랙리스트]의 주인공이자 제작자 제임스 스페이더
배우 클라크 미들턴의 생전 모습

https://brunch.co.kr/@cosmos-j/1090



인스타그램: @cosmos__j

그 외 모임/클래스 공지 모음(노션):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감각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