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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15. 2021

슈가맨은 거기 없었다

넷플릭스 영화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2018) 리뷰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1학년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온라인 과제를 내서 학부모들의 항의로 결국 징계 처분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읽은 적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지자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학생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본인들의 사진을 함께 올리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사진에 그는 '저는 눈웃음 매력적인 공주님들께 금사빠', '우리 반에 미인이 넘 많아요…남자 친구들 좋겠다', '매력적이고 섹시한' 같은 내용의 댓글을 적었다.


학부모가 국민신문고에 이 내용을 알리면서 해당 지역 교육청에서 주의 조치를 했지만 교사의 행각을 그치지 않았다. 주말 효도 숙제로 ‘자기 속옷을 빨래하고 그 사진을 찍어올리’게 한 것. 그 사진에도 그는 '공주님 수줍게 클리어', '이쁜 속옷, 부끄부끄' 같은 내용의 댓글을 적었다. 만약 온라인 개학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가 교사가 아니었어도 문제지만 그런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며, 교육청의 미온적인 대처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어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적 희롱에 ‘그쳤’다는 것을 차라리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경우 이것은 개인의 그릇된 성적 취향을 표시하는 일 정도를 넘어 누군가의 꿈 자체를 빼앗아버릴 수 있다. 과장이 아니라, 지금 말할 영화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2018) 이야기다.


넷플릭스 영화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스틸컷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싱가포르의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감독 산디 탄이 만든 자전적 작품이다. 10대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필름으로 영화 찍기를 꿈꿨던 산디는 일찍이 컬트적 취향을 갖고 그것에 심취해 있던 소녀였다. 외국 영화잡지를 구해서 탐독하고 자신이 찾는 영화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우리나라의 영화진흥위원회쯤 되는 지역 기관에 편지로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을 만큼.


영화 제작 수업에서 산디는 조지라는 서양인 교사를 만나는데, 누벨바그 영화에 박식하고 영화 자체를 진심으로 아끼는 영화광인 듯 보였던 조지는 산디와 가까워지면서 이상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배를 만져보라든가. 그때는 산디가 조지의 제안으로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싱가포르로 돌아온 산디는 열여섯 살 때 ‘셔커스’라는 제목의 영화 각본을 완성하고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촬영 및 연출을 맡았던 조지는 편집본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필름 전체를 갖고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산디가 만들고 싶어 했던 ‘셔커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무슨 내용이고 어떤 장르였어도 어쩌면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그때 산디에게는 자신이 좋아하고 꿈꾸는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혹은 상태 자체가 더 중요했을 테니까. 공들여 찍었으나 자신의 손에서 빼앗긴 그 필름들을 생각하며 내내 분노했고 상실감을 느꼈던 산디는,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뜻밖의 편지를 받는다. 이 모든 일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넷플릭스 영화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스틸컷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라는 부제(영화의 원제는 ‘Shirkers’다)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서칭 포 슈가맨>(2012) 같은 작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같은 작품이 담는 여정과도 물론 다르다. 차라리 시작되지도 못했고 찾아지지도 못한 여정에 대해 애통하게 여기면서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설레는 투로 되짚는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제대로 된 영화 수업도 영화 학교도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감독 산디 탄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저 수많은 영화를 보고 머리속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 전,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불확실함을 꿈꾼다는 건 그런 것이다. 당장 실체가 없고 앞으로 있을지의 여부조차 모르지만 그것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현재를 살게 한다.


잃어버린 그 필름들은 단지 필름이 아니라, 한 사람의 꿈이었고 그것을 향한 탐닉과 애정이 가득 담긴 집합체였다. 그런 것이 어떤 사람의 사리사욕에 의해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 다만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는 죄를 심판하거나 추궁하는 대신 자신이 25년 전 무엇을 꿈꾸었는지 머리와 마음 안에 깊이 있던 것을 영화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필름이 사라진 일의 내막에는 좀 더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당신도 그런 꿈이 하나 있지 않았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모든 일들을 겪고 세월이 흘러 자기만의 방식으로 꿈을 되찾은 영화감독의 이야기는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모두가 꿈꾼 흔적을 여기 소환한다.



https://www.netflix.com/title/80241061

넷플릭스 영화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포스터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 및 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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