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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03. 2021

그 많던 세계는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 시간여행들에 관하여

(2019년 5월 28일에 쓴 글이다.)



1. <백 투 더 퓨처>가 다 뻥이라고?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와 영향을 세상에 가져오는지를 서로에게 설명하던 중 몇 편의 영화를 언급한다. 여기는 <핫 텁 타임머신>(2010)부터 <백 투 더 퓨처>(1985)나 <터미네이터>(1984), <사랑의 은하수>(1980)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 제목들이 지나가고, ‘헐크’는 실제 시간여행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과거로 돌아가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게 미래 전체를 뒤바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 이리 중얼거린다. “그럼 <백 투 더 퓨처>가 다 뻥이었단 말이야?” 그러게. 왜 영화들은 지금껏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에 끌어다 관객들의 시간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갖게 만들었나?

시간여행의 모순을 설명하는 단어로 'Grandfather Paradox'라는 게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특정한 물건을 건드리거나 특정한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은 평범한 행동이 인과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난제들에 대해 설명하는 말인데,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은 미국의 공영방송 채널 PBS와의 인터뷰에서 저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여야만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의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낳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시간여행의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살해 같은 극단적인 가정이 아니라도, 미래 혹은 현재의 나는 온갖 사소한 행동들도 과거에 그것들이 서로 어떤 인과 관계가 되었음을 알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 행동에 변화를 주면 그 인과 관계에는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컷


2. 시간여행의 모순


결국 영화의 시간여행을 논하려면 역사가 불가변의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꾸면 그것이 곧 미래가 된다는 가정을 하면 그 자체로 영화의 설정이자 배경이 되기에 모순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동이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고, 미래로 가는 일은 물리적(이론적)으로 가능할 수는 있지만 과거로 가는 일은 이론적으로조차도 그 가능성이 학계에서 널리 인정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시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돌아와서, 결국 영화에서 시간여행의 토대가 되는 건 양자물리학이다. 실제로 몇몇 물리학자들은 각각의 과거들이 그 자체로 한결같고 일관되게 존재한다면 양자 이론을 토대로 한 시간여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영화에서 ‘앤트맨’과 ‘헐크’ 역시 이런 가정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순간 그 과거가 그 자체로 ‘미래’가 되고 본인이 원래 알고 있던 미래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받아들인 채로, 과거 특정 시점의 ‘인피니티 스톤’들을 가져와 ‘타노스’를 막는 데 사용한 후 다시 스톤들을 그것이 원래 있던 시점으로 되가져다 놓기로 하는 작전을 세운다.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 간직할 수만 있다면 영원이 지나도록 그 시간들을 모두 담아서 당신과 함께 보낼 텐데’
-Jim Croce의 곡 ‘Time in a Bottle'(1972) 중에서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스틸컷


‘엔드게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실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였다. 두 영화 속 시간여행의 목적이 유사하기도 하고, 짐 크로스의 위 곡이 바로 이 영화에 삽입되기도 했다. 영화 속 ‘엑스맨’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어떤 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들이 행하는 과거로의 이동은 ‘키티’라는 엑스맨이 지닌 초능력으로 인한 것이기에 역시 시간여행의 물리학적인 이론 토대나 그에 따른 모순을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적 설정으로 봐야 하겠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미래와 과거 두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동시에 다루고 그 자체로 효과적인 편집과 더불어 두 세계 모두의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들이 해소되고 나서,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런 내용이다. “과거는 새롭고 불확실한 세상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무한한 결과의 세상. 무수한 선택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매 선택, 매 순간이 시간의 강물에 물결을 일으키고 작은 물결들이 모여 강물의 흐름을 바꾸니 미래는 결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3. 100일 동안 영화만 보면 뭐가 되나요 


미래가 결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은, 위로일까 아닐까. 다행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내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듯, 시간이동 자체보다는 개인의 믿음과 신념에 더 무게를 둔 영화로 다가왔다. 이를테면 ‘울버린’에 대한 ‘프로페서 X’의 믿음이 그렇다. 그는 “I have faith in him.”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시간여행 영화들을 보면서 나는 그 영화들을 즐기며 빠져들었다가도 결국 그것들이 영화 속 설정에 의해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홀로 슬퍼지곤 했다. 저게 다 영화의 일이라면 영화 밖의 내 일은, 내일은 뭐가 되는 것인지 생각하며. 평행 우주든 타임 패러독스든 만약이라는 가정을 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오직 이야기다. ‘왓챠’ 애플리케이션에 따르면 지금까지 내가 별점을 남긴 영화는 총 1,358편이다. 최소 2,606시간 동안 영화를 본 내게 ‘왓챠’는 ‘100일 동안 영화 본 웅녀급 영화인’이라고 농담처럼 적어 놓았다. 신화 속 ‘웅녀’는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은 100일 동안 영화만 보면 결국 무엇이 되나. 요즘 게임중독이 한참 난리인데 나는 그냥 ‘영화중독’이 되나? 생애 첫 영화를 보았을 때의 나와 1,000번째 영화를 보았을 때의 나, 그리고 1,350번째 영화를 보았을 때의 나는 각각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걸까?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극장에서 보던 당시는 말하자면 내게는 ‘벨 에포크’ 같은 것이었다. 평행우주처럼 그 세계들이 모두 남아있을까, 아니면 오로지 지금의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그 많던 세계는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갔을까.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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