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이후의 짧은 생각
위의 표는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2021년 3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실린 최근 3년간 1월~3월의 국내 개봉 영화 편수 및 매출액, 관객 수 자료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작년 내내 개봉이 연기되었던 영화들을 포함해 여러 신작들이 극장 문을 두드렸다는 걸 먼저 확인할 수 있죠. 연간 비교가 아닌 3개월 비교라 단순 의미 부여는 어렵지만 일단 3개월의 수치로는 영화의 개봉 편수 자체는 평년 수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문제는 매출액과 관객 수에 있겠지요.
2020년 1월: 165편, 1,437억 원, 1,684만 명
2020년 2월: 150편, 623억 원, 737만 명
2020년 3월: 154편, 152억 원, 183만 명
2021년 1월: 135편, 158억 원, 179만 명
2021년 2월: 149편, 287억 원, 311만 명
2021년 3월: 204편, 302억 원, 326만 명
지난 1월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는 2월 개봉작을 대상으로 추가 지원금을 주는 방안을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극장의 영화 입장권 수입을 극장과 배급사가 사전에 정한 부율에 따라 나눠 갖는 구조인 탓에 극장 관객 수 자체가 영화 산업의 규모나 다름없게 되는데요. 당시 발표는 직영점의 경우 관객 1명당 1,000원, 위탁점의 경우 관객 1명당 500원의 지원금을 배급사 측에 주는 내용 등을 포함했습니다. 극장 입장에서는 개봉 영화 라인업이 다양할수록 관객 유치에 도움이 되고 배급사 입장에서는 미약하게나마 수익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는 조치였죠.
결과적으로 2월 개봉작이 눈에 띌 만큼 늘지는 않았습니다. 3월에는 <미나리>, <고질라 VS. 콩> 등이 비교적 괜찮은 관객 수 기록을 보였지만 4월 지금까지 <자산어보>, <모탈 컴뱃>, <서복>, <내일의 기억>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나타내며 여전히 극장은 불황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1월 말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아직도 주말 박스오피스 2~3위권을 오르내리는 것도 희귀한 일이죠.
통상 2~4월이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 화제작들이 다수 개봉하는 시기이며, 또 4월 말부터 5월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규모 있는 영화들이 다시 늘기 시작합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4월 28일 개봉)를 비롯해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5월 19일 개봉), <크루엘라>(5월 개봉 예정) 등 국내외 여러 신작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4월 마지막 주를 통과하고 있는데, 5월의 극장 분위기는 또 어떠할지. 초조하게 지켜봅니다.
예전 자료들을 찾다가 2019년 가을에 배우 에드워트 노튼의 인터뷰에서 한 대목을 보고 기록해두었던 것을 다시 꺼내봅니다.
2019년 2월에 있었던 북미의 한 영화 시상식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극장이 아닌 플랫폼을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는 아카데미(Oscar)가 아니라 에미(Emmy)로 가야 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 있습니다. (물론 이 맥락이 전부는 아니고,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치를 옹호하는 발언입니다.) 극장에서 상영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와,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 전용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관객(시청자)에게 같은 경험을 줄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이었는데요. 2019년 10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를 통해 배우 에드워드 노튼은 이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극장이 오히려 극장에서의 경험(Theatrical Experience)을 망치고 있다”라는 건데요.
에드워트 노튼 본인이 연출한 영화 <마더리스 브루클린>의 북미 지역 개봉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여기서의 극장은 정확히는 멀티플렉스를 지칭합니다. “북미 지역의 극장 중 60퍼센트가 넘는 곳이 영상 품질과 음향 품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아무도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라며 에드워드 노튼은 “쓰레기 같은 음향과 흐릿한 영상”(crappy sound and dim picture)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어서, 극장이 자신이 갖고 있는 시설과 장비가 표현할 수 있는 본연의 성능을 100퍼센트 발휘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발걸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건 집에서 경험할 수 없어!”라고 자연히 알게 되리라는 것.
국내에서도 ‘익스트림무비’ 같은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 회원들은 각 극장의 ‘마스킹’과 같은 상영 조건에 대해 민감하게 지적합니다. 마스킹이란 영화가 가진 본래의 화면비를 관객이 온전히 볼 수 있도록 남는 공간을 검은 천 등으로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 마스킹을 각 영화가 가진 저마다의 화면비와 조건에 맞게 제대로 하는 극장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죠.
에드워드 노튼의 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말한 ‘극장 본연의 경험’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말은 넷플릭스를 옹호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를 언급하며 그는 “넷플릭스는 스페인어로 된 흑백 영화를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기꺼이 투자하는 회사”라며 넷플릭스가 자사 오리지널 영화인 <로마>를 극장에 상영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거론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목소리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고, 말해질 수 있으며 치하받을 수 있다는, 보편성과 확산성의 가치를 언급합니다. 이 말은 2021년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생각하게 되는 유효한 화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와 집에서 IPTV나 VOD, 혹은 넷플릭스, 왓챠 등으로 접하는 영화 중 어느 쪽이 그 빈도와 소비 시간 등이 더 높은 비중일까요. 위와 비슷한 시기에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발언도 한창 화제였던 적이 있습니다.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 혹은 ‘어디까지가 영화의 기준인가’ 하는 것에 대해 지난 몇 년간보다도 많은 논의가 제기된 적이 또 있을는지. 그만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빠르게 바뀌고 있으니까요. 영화를 좋아하고 또 영화를 직, 간접적인 업으로 삼고 있는 제게 이 질문은 평생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정말 무엇인가... 뭘까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은 답을 찾으면 좋겠어요. (내일에게는 또 다른 내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