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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6. 2021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여름이 될 때마다 꺼내보는 이야기


"늘 이렇다니까. 꼭 한 발씩 늦어."

[영화 <걸어도 걸어도>(歩いても 歩いても, 2008),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정한 계절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전할 말을 오래 고르고 골랐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다른 말을 한 뒤 돌아서서 ‘이 말도 했어야 했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일이라든지, 아니면 이제는 실현될 수 없는 어떤 일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지난날의 어느 시간에 자신이 했거나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회상하는 일 같은 것. 하지만 그게 여름이라면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또 나머지 절반을 맞이하는 무렵이겠고, 봄이 가려다 살짝 물러나는 것인지 여름이 오려다가 주춤하는 것인지 모를 날씨 가운데라면 멀어져 가고 있는 지난 계절의 일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어김없이 낮 기온은 조금씩 올라 30도를 향하고 있다. 옷차림이 얇게 가벼워지고 손수건이나 휴대용 선풍기와 같은 소지품이 익숙해지는 이때. 땀을 흘리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 없이 어디론가 향해야만 하는 나날을 생각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의 잔영이 스친다. 마치 여름은 그런 계절이라고 말해주기라도 하듯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형의 기일을 맞이해서 삼대가 한 집에 모인 ‘료타’(아베 히로시)의 가족들. 그의 형은 십오 년 전 바다에 빠진 어떤 소년을 구하다가 죽었고, ‘요시오’라는 이름의 그 소년은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도 매년 이 집을 찾아온다. 이제는 그만 불러도 되지 않겠냐고 묻는 ‘료타’의 말에 일부러 부르는 거라고 하는 ‘료타’ 어머니의 의중을 어렵사리 짐작하기라도 하듯, ‘요시오’는 매번 온몸이 땀투성이인 채 때가 가득한 흰 양말 뒤꿈치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다다미 바닥에 무릎 꿇어앉는다.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아들이 지금도 잘 살고 있으리라 믿듯이 ‘료타’의 어머니는 ‘요시오’가 가고 나면 흉을 늘어놓는다. 오래 신어 다 해진 구두, 몸에 맞지 않는 빌려 입었을 것이 분명한 작은 양복, 매년 몇 킬로그램씩은 찌는 듯한 살, 비굴한 미소.


“똑같아. 부모한테는 똑같아. 미워할 상대가 없는 만큼 이쪽만 더 괴로울 뿐이지. 그 아이한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괴로운 날이 있어도 그걸로 벌받지는 않을 거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걸어도 걸어도』, 박명진 옮김, 민음사, 2017, 144쪽


‘료타’는 자신도 ‘요시오’에게 그리 호감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가족들이 그를 못마땅히 여기는 게 못마땅하다. 땀을 흘린다는 건 그 자체로 살아있음을 내보이는 현상이지만 ‘살아있고자 한다’라는 작용이자 상태이기도 할 테니, ‘료타’가 보기에 ‘요시오’는 대단할 것 없을지라도 1인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이다.


“저울질하지 말란 말입니다, 남의 인생을 두고... 그 친구도 나름 열심히 살아 보려는 건데,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는 거잖아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앞의 책, 115쪽.


영화 ‘걸어도 걸어도’ 스틸컷


<걸어도 걸어도>에서 중요한 건 영화 안에서 당장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10년도 더 지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보다도 중요한 건 그 사건을 떠올리는 현재 가족들 각자의 감정이다. 특정한 대사나 상황으로 이것이 표면화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걸어도 걸어도>는 온갖 ‘과거의 것’들로 가득한 작품이어서다. 상실이거나 후회인 것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이야기를 썼다. 영화가 나온 뒤 그것을 소설로 옮기면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쓴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라고 중얼거리며, 아무리 걸어도 “이런저런 일들은 이렇게 모양새와 상대를 조금씩 바꿔 가면서 반복되는지도 모른다”(앞의 책, 179쪽)라는 걸 뒤늦게 깨달아가는 작중 ‘료타’처럼 이제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 영화감독이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만나는 다른 관객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부모님을 생각한다.


하루를 보낸 다음날 일상으로 돌아가는 ‘료타’ 내외가 버스 타는 것을 배웅한 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료타’의 부모. 아버지(하라다 요시오)는 “다음엔 설에 보겠군.” 하고 중얼거린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버스 뒷좌석에 앉은 ‘료타’는 아버지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이제 설에는 안 가도 되겠어”라고 말한다. ‘료타’의 아내도 장단 맞추듯 “부담스러우실 테니 다음엔 자지 말고 저녁에 와요” 한다. 부모 마음과 자식 마음이 이리 다른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전날 ‘료타’ 아버지는 이런 말도 했다. “가끔은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목소리라도 들려드려라.” ‘우리 아빠’도 꼭 비슷한 말을 하신다. “뭔 일 있으면 전화하고, 엄마한테도 전화 자주 하고.” 아빠의 말투라는 게 대체로 그렇다. “전화 자주 해.”라고 하면 문장을 끝맺는 것 같아서 그런지 “전화 자주 하고,” 아니면 “전화 자주 하고…” 쯤 되는 의미로 하시는 말씀일 거다. 늘 몇 마디 안 하고 끊는 것 같아 일부러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려 해도, 통화는 짧다. ‘용건만 간단히’라는 수식어가 너무도 어울릴 만큼.


몇 해 전까지 엄마는 허리가 좋지 않아 서울에 있는 병원을 여러 차례 오가셨다. 노화에 따른 퇴행성이라는 성격이 있어서 완치라는 게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일도 하시고 일상에 큰 불편은 없으셨었다. 최근 다시 편치 않아졌는지, 병원 예약을 해달라고 하셨다. 당연한 것이지만 평소에 잘 생각하지 못하는 일. 가족의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우리는 다만 순간을 살 수 있을 뿐이어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나의 시간과 부모의 시간은 서로 몇 계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나아가고 있지만 언제라도 따라잡을 수 있거나 나란할 수 있는 것처럼 군다. ‘이제 추석 때 뵙겠구나’ 정도의 막연한 궁리를 하던 나는 캘린더를 보며 일정을 조정하고, 병원에 전화로 예약을 한다. 오고 가실 기차 시간표를 확인해본다.


엄마는 병원에만 다녀가는 게 아니라 나와 하루를 같이 보내실 예정이다. 내 집에 오면 엄마는 분명 이리저리 둘러보며 정리와 청소를 하실 거다. 그렇더라도, 나도 일단 청소를 좀 해둬야겠다. 어딘가에 먼지가 쌓이지는 않았는지 둘러본다. (2021.06.06.)


다시 꺼내 읽는 소설 ‘걸어도 걸어도’ (영화의 원작 소설이 아니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소설화 한 것이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 및 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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