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ain, there is only one logical direction in which to go: Forward!)
[영화 <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벤 르윈]
다코타 패닝이 주연한 영화 <스탠바이, 웬디>(2017)는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 영화다. 세상에,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영화도 쓰는 것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둘 다에 대한 영화라니! 자폐가 있는 ‘웬디’는 <스타트렉> 시리즈를 아주 좋아해서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상상하고 생각하고 쓴다. 우연히 본 제작사의 시나리오 공모전 포스터. 몇 날을 거쳐서 쓴 수백 장의 원고를 들고 ‘웬디’는 날이 밝기도 전 집을 홀로 나선다. (정확히는 미처 닫지 못한 문 밖으로 따라 나온 반려견 ‘피트’와 함께) ‘저 사거리 넘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 마’라고 보호자에게 들었던 그 사거리 횡단보도를 똑바로 걸어서, ‘웬디’는 버스에 오른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 스틸컷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웬디’가 <스타트렉> 시리즈를 열렬히, 그리고 계속 좋아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상황은 시작 자체가 예상 밖의 난관이다.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내야 하는데 우편 접수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서 직접 찾아가야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어렵사리 버스에 탔는데 반려견을 몰래 데리고 탄 것이 발각되어 중도 하차를 당하고, 누군가에게 지갑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런 일들 가운데 ‘웬디’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시나리오 제출해야 하는데… 오늘까진데…” 하는 마음이다. 경로가 바뀌고 수중에 돈이 없고 배가 고프더라도 ‘웬디’에게 주어진 선택은 오직 두 눈 뜨고 ‘피트’를 안고 시나리오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 적이 있다. 계기는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어서였고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지만 무작정 기록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그게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 3년, … 지금이 8년째다. 지난 7월 10일이 지금은 없는 네이버 블로그 계정에 첫 영화 ‘포스팅’을 업로드 한 날이었다. 처음은 투박했고 두 번째는 특별할 것 없었으며 세 번째도 평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말하는 것보단 글 쓰는 게 좀 더 편한 것 같아’ 정도의 막연함 뿐이었다.
그게 한 자릿수가 아니라 천의 자리 정도 되니 막연함은 혼자만의 작은 확실함이 되어 있었다. 쓰고 보니 못 쓴 것이면? 고쳐 쓰면 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어디론가 달려가던 중 ‘웬디’가 들고 있던 시나리오 뭉치를 놓치는 장면이 있다. 수 백장의 A4 용지. 미처 제본이 되어 있지 않았던 종이들은 순서도 뒤엉키고 몇 장은 잃어버린다. 이미 집에서 몰래 떠나온 지 한참이 되었고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웬디’에게는 <스타트렉>의 창작 시나리오를 들고 <스타트렉>의 제작사에 오늘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다. 몸은 그것을 따른다.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되돌리는 방법은 없으므로, ‘웬디’는 이면지에 그것을 다시 쓴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 스틸컷
<스탠바이, 웬디>는 ‘웬디’에게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주거나 극적인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는 성공담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웬디’처럼 <스타트렉>을 좋아하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의 꿈을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들이 곁에 있다는 건 ‘웬디’가 자폐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겠고,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한 ‘웬디’의 시나리오는 언젠가 <스타트렉>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낙관과 희망. 그거면 충분하다고, 아니 그게 오직 모든 것이어서 <스타트렉>에서 스팍은 함장에게 “논리적인 선택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라고 말했다.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