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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28. 2018

'성덕' 영화가 아니라, '계속 쓰는 사람'의 영화

<스탠바이, 웬디>(2017), 벤 르윈

<스탠바이, 웬디>(2017)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긴 글을 쓰는 게 어렵다고 해서 짧은 글을 쓰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반드시 어려운 일이다. 문장을 짓고 단어들을 고르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자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인 이상 그는 계속 써야 한다. 노트에 펜이나 연필을 소리 내어 부딪히든 워드프로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움직이든 간에 말이다. 글쓰기가 어렵다 함은, 그것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쓰는 일에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노력을 아는 한, 누구나 쓸 수 있다.)


<스탠바이, 웬디> 스틸컷


그러니까 '웬디'(다코타 패닝)는, '계속 쓰는 사람'이다. 오로지 중요한 건 그녀가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다. 공들여 쓴 시나리오 뭉치를 잃어버려도, 펜을 꺼내들 수 없는 환경에 놓여도, 누군가 자신의 글에 대해 칭찬하지 않아도 말이다. '웬디'가 쓰는 글은 시나리오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공고한 '스타 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이 영화에서 '웬디'가 어떤 행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는데, 그녀가 '계속 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왜 하필 '스타 트렉'인지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스타 트렉'은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TV를 보고 있지 않을 때도 머릿속에서 '스팍'과 '커크'의 대사를 쓰며 '엔터프라이즈 호'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좋아하며, 자신이 직접 우주복을 입은 승무원이 되어 폐허 된 행성의 공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영화에 종종 삽입된 우주 배경의 신(Scene)들은 '웬디'의 '스타 트렉'에 대한 애정과 그에 따른 깊고 생생한 상상력을 대변하는 장치다.) "유일한 선택은 전진"이라며 함장에게 힘주어 말하는 '스팍'의 대사를 내레이션으로 읊조리는 것보다 강력한 건 그 우주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것에 관해 그 '좋아함'을 말하는 것보다 강력한 건 그것에 관해 쓰는 일일 것이다. (시나리오는 다른 글과 달리 읽히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비록 매일 정해진 일과처럼 TV 앞에 앉아 '스타 트렉' 시리즈를 시청하다 보니 '웬디'가 그것을 자연히 좋아하게 된 것인지 원래부터 그걸 좋아했기 때문에 TV 시리즈를 섭렵하게 된 것인지 영화만으로 그녀의 캐릭터와 취향 같은 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웬디'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계속 쓰는 사람'이라고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스타 트렉' 얘기가 나왔으니 <스탠바이, 웬디>는 그렇다면 이른바 '성덕'에 관한 영화인가. 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이 영화를 과정에 대한 영화라고 칭해볼 것이다. '웬디'가 '스타 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해 어떤 성과(수상)를 이루는지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지는 않는 까닭에서다. 아니, 어쩌면 '웬디'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무사히 제출할 수 있을지의 여부조차도 이 영화를 말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논의는 아니라고 여긴다. 아닐 것이다. 정말로 중요히 여겨야 할 점은, 그녀가 꾸준히 쓴다는 점이며, 쓰는(곧,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며, 또한 그것으로 인해 지금껏 떠나본 적 없는 여정에 나선다는 점이다.


<스탠바이, 웬디> 스틸컷


"(...)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세계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이 병은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이 불안을 모두 떠안겠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인지 한 번 더 알아보겠다.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에서)


인용한 김연수의 글 토막 중 몇 문장은 굳이 영화 <스탠바이, 웬디>와 결부 지어 이야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몇 개의 다른 문장들은 분명 '웬디'를 생각하며 떠올릴 만한 유의미한 내용이라 판단하기에 잠시 꺼내어 본다. '웬디'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아무런 수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녀가 앓는 자폐증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웬디'는 모든 불안과 미지를 기꺼이 떠안은 채 (반려견 '피트'를 안고 걸음을 떼듯이)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는 길을 건너고 가본 적 없는 장소를 향해 나아간다. '웬디'에게 중요한 건 지금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가본 적은 없는 곳이지만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것 자체일 것이다. 계속 쓰는 '웬디'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트렉'에 관해,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광활하고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우주공간에 머리와 마음의 발을 펜과 컴퓨터에 실어 떠나는 것처럼 우리의 여정에서 중요한 건 그 과정 자체라고 믿는다.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 다른 모든 별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은 다른 단 하나의 별을 찾고, 하나의 세계를 깊이 좋아하며 그 세계의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힘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애정에서 나온다. 좋아하는 것은 단지 '좋아하는 것'이지 그 이유가 필요하지 않지만, 삶의 이유와 목표를 만들어주기까지 하는 애정은 그 삶, 그 사람을 끝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 그런 '웬디'를 바라보면서 이 말을 문득 떠올렸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 봐" (작가 김수영의 책 제목) <스탠바이, 웬디>는 그러니까,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과정의 가치를 아는 영화이며, 이야기를 계속 고쳐 써 내려가는 것의 힘을 믿는 영화. 내가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영화는 대체로 그런 영화다. (★ 7/10점.)



<스탠바이, 웬디> 국내 메인 포스터

<스탠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벤 르윈

2018년 5월 30일 (국내) 개봉, 93분, 전체관람가.


출연: 다코타 패닝, 토니 콜렛, 앨리스 이브, 토니 레볼로리, 패튼 오스왈트, 리버 알렉산더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스탠바이, 웬디>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8.05.21 메가박스 동대문)

*<스탠바이, 웬디>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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