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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2. 2018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참혹한 영화적 체험

<디트로이트>(2017), 캐서린 비글로우

외화의 국내용 포스터에 흔히 들어가곤 하는 카피 문구 같지만, <디트로이트>(2017)를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나는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까지 앉은 자리에 멈춰 일어날 수 없었다. "당신을 앉은 자리에 고정시켜버리고야 말 영화!"(김동진 - cosmos__j) 뭐 이런 식으로 적어보면 될까. 시사회로 이 영화를 본 나는, 정식 개봉을 하자마자 곧바로 극장으로 다시 달려갔다. 정말, 두 번째로 봤을 때도 나는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했다. <디트로이트>는 실제로 미시간 주의 바로 그 도시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찍었다. 최초 시사회도 현지에서 열었다. 1967년에 일어난,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어느 모텔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예고편에서 본 주요 장면들을 떠올리며 상영관을 찾았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만났다. 영화가 나를 충격했다. 이 51년 전 타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지금 왜 내게 닿은 것일까.


<디트로이트> 스틸컷


첫째는, 다큐멘터리라 불러도 상당 부분 무방할 만큼 현장감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뛰어났다는 표현은 진부하다. 당시의 실제 기록 영상들과 사진 자료들은 배우들이 연기한 상황과 조금의 이질감 없이 그 자체로 영화의 내용이자 장르가 되고, 도시 곳곳의 사람들을 차례로 오가던 영화의 카메라는 마침내 총격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알제 모텔'에서 거의 멈춰버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분주히 움직이는 시 경찰과 주 경찰, 주 방위군의 모습과 그들에게 돌을 던지며 빈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꺼내가는 사람들, 집 안에서 바깥을 숨죽이며 지켜보는 사람들, "저격수가 있다!"라는 호명 하에 장갑차 위 사수의 중기관총과 순찰차 문 뒤의 경찰관이 든 산탄총과 권총까지 일제히 퍼붓는 총성, 그 총에 맞은 사람들, 불안과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 황망히 집으로 뛰어가는 사람들. 이 도시에 대해 잘, 아니 거의 알지 못하고 반세기 전의 그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 리 없었지만, 나는 1967년 여름 디트로이트에 며칠간 다녀왔다, 혹은 다녀온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감히 적어볼 수 있을 만큼 그날 그곳의 분위기를 체감했다. 무엇보다 <디트로이트>는 그래서, 체험의 영화다. <허트 로커>(2008)와 <제로 다크 서티>(2012)라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디트로이트> 이전 필모그래피에 완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이라고 적었으나 앞선 내용과 상당 부분 이어진다.) 영화가 다루는 시간의 화술에 있다. 폭동 1일차, 폭동 2일차, ... 로 옮겨가던 영화의 시간적 흐름은 알제 모텔에 도달하는 순간 사실상 실시간이 된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실제로 소비하는, 영화의 상영시간과 거의 1:1의 비율로 일치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영화의 시간은 다시 그 장력을 넓혀 도시 공간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물론 다루는 시간의 범위가 영화의 상영시간에 근접한다고 해서 절로 몰입감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잠시 북미 포스터에 적힌 영문 카피 'IT'S TIME WE KNEW'라는 문장을 생각해본다. 당대를 살았던 미국인이라면 그 말처럼 익숙한 이야기거나 기억 속에 일정 지분이 할애된 이야기이겠으나, 인종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가 아니라면 국내 관객에게는 대체로 <디트로이트>가 배경 삼은 사건 자체는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자동차의 도시' 등 영화에 몇 차례 언급되는 디트로이트에 관한 언급 역시 그렇다면 크게 와닿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준 압도감이 실은 이 이야기가 그 자체로 내게 낯선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여겼고, 영화의 플롯이 마무리되고 난 뒤, 그 낯선 이야기가 결국 보편적인 메시지와 합당하고도 참혹한 질문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감탄했다. 좋은 이야기는 장르에 관계없이,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객을 능히 압도하게 된다.


<디트로이트> 북미 포스터


이런 식으로 <디트로이트>가 인상적인 영화였던 사적인 까닭은 몇 가지 더 부연할 수 있겠으나, 그것보단 이 영화의 끝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하거나 마주했는지를 기록하는 편이 더 좋겠다. 길지는 않은 분량이지만 영화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어떤 인물이 찬송가를 부르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알제 모텔에서의 사건에 연루된 흑인이다. 나는 그 찬송가의 가사에 주목했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피난처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고, 또 (주님을 향해) '우리의 죽음을 어찌 바라만 보고 계시나이까, 일어나소서'라며 읊조리는 내용도 있다. (기억에 의존한 터라, 정확한 가사가 아닐 것이다. N차 관람이나 블루레이 소장 등을 통해 기회가 마련된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찬송가 가사 내용 전체를 별도로 정리해두고 싶다.) 분명히 그것은 허투루 삽입된 신(Scene)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을 향한 찬미와 경의, 구원에 대한 믿음과 열망 등이 담긴 그 노래의 청자는 사실상 영화를 보는 관객인 것이다. 영화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 백인이 백인이라는 이유와 흑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한쪽이 한쪽을 무시하고 탄압하며 모멸하는 모습. 그 폭력을 내내 지켜본 관객에게 <디트로이트>는 묻는다. 바뀐 것은 무엇이고, 그렇다면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이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말이기도 하다. "변화된 것과 변화하지 않은 것 모두를 다루고자 했다."


<디트로이트> 스틸컷
<디트로이트> 스틸컷


폭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뜬금없이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떠올렸는데, 이는 단지 그 작품을 최근에 읽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내용을 <디트로이트>와 직접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따르다고 보고, 다만 한강 작가가 소설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잠시 꺼내야겠다. "폭력이 견디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장면을 힘겹게 써야만 했다." (KBS1 [TV 책] '채식주의자 - 한강을 만나다' 중에서, 2016년 5월 10일 방영) 소설의 언어와 영화의 언어는 다르다. 소설은 작가의 세계를 내면화한 언어이고, 영화는 그걸 외면화한 이미지다. 다만 영화가 폭력적인 상황을 잔혹하게 묘사할 때,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한강 작가의 말을 힘껏 지지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는 관객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상대가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자행하는 모든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니까.


영화의 오프닝에서 일러스트 이미지와 함께 음성으로만 등장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누군가가 하는 말이 이 대목에서 마음에 밟힌다. "이것이 폭력적이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비폭력적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폭동이 벌어져 주 방위군이 투입되고 난 뒤, 시내를 순찰하던 어느 백인 경찰관의 이런 대사가 있다. "저 사람들은 미친 게 아니야.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지." 2018년 지금에서야, 부당한 차별에 대해 목소리라도 어느 정도 낼 수 있게 된 시대라고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1967년 디트로이트에서 흑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초반의 자막 하나를 이렇게 바꿔야겠다. '폭력(원래 자막은 '변화'다.)은 불가피했다. 방법과 시기의 문제였을 뿐.' 나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그 자체로 완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은, 폭력에 맞서기 위한 폭력이 아니면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존엄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인해서만 지속될지도 모른다. 영화 <디트로이트>가 묻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래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세상이 바뀐다고 말할 건가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찬송가를 부르던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죽음들을, 이 분노들을, 이 목소리들을, 이 현장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실 것입니까, 라고. 그런데, 장갑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던 창밖의 주 방위군을 블라인드 너머로 바라보던, 영화의 그 소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 9/10점.)



<디트로이트> 국내 메인 포스터

<디트로이트>(Detroit, 2017), 캐서린 비글로우

2018년 5월 31일 (국내) 개봉, 143분, 15세 관람가.


출연: 존 보예가, 안소니 마키, 윌 폴터, 알지 스미스, 제이콥 라티모어, 잭 레이너, 벤 오툴, 한나 머레이, 케이틀린 디버, 제이슨 밋첼, 존 크래신스키 등.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주)팝엔터테인먼트


<디트로이트>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8.05.28 CGV 여의도)

*<디트로이트>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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