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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3. 2021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삶은 어째서 픽션이 아닌가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I just thought there would be more.)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 리처드 링클레이터]


픽션과 픽션이 아닌 것의 차이와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한 편의 영화를 언급해야 한다면 <보이후드>(2014)야말로 가장 적합한 예가 아닐까. 물론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해 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겠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번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같은 배우들을 데려와 매년 조금씩 찍어서 12년에 걸쳐 완성한 영화. <보이후드>의 시나리오는 매년 조금씩, 그것도 촬영을 앞두고 그에 임박해서 쓰였다.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태로. <보이후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일반적인 극영화는 짜인 각본에 따라 만들어지므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알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촬영 도중 어떤 배우가 사망해서 특정 캐릭터에 관해 각본을 수정한다든가 하는 일이라도 생기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보이후드>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링클레이터 감독 본인도 앞일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리고 그 알 수 없음 자체를 창작의 방식이자 동력 삼아서 만든 영화인 것이다. 완성했다 라기보다는 ‘12년을 계속해서 찍었더니’ 나온 영화. 이 모험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염두했던 것일까. 픽션과 삶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인과관계’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나 접했을 법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식의 이야기 구성은 전적으로 사건들의 선후 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구성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면, 이어서 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앞의 것은 뒤의 것의 복선이 되거나 원인을 제공한다. 이것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이다.


영화 '보이후드' 스틸컷


실제 삶은 어떤가. 자주 언급하는 영화 세 편 중 하나인 <쓰리 빌보드>(2017)의 마지막 대사 “가면서 결정하자고.”(I guess we can decide along the way.)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생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내게 도움이 될지 어떤지를 알고 결정한 채로 나아가는 길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안고 일단 나아가보는 길이 삶에는 훨씬 더 많지 않은가. 그러니 결정해놓고 가는 게 아니라 가면서 임기응변하고 미봉책들을 거듭 써내려가는 것이겠지.


따라서 삶에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마치 시나리오 작가가 인과관계를 생각하듯 그것을 들려줄 때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당시에는 몰랐던 어떤 일이 시간이 지나고 돌이킬 때 다른 의미로 각인되고 그것은 ‘지나고 보니’ 생겨나 있는 것이다. 자기 경험을 들려줄 때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래야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정한 어느 시점부터 또 다른 어느 시점까지의 모든 일상을 기록해두었다고 할 때 그것을 하루씩 나열하면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4월과 7월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고 가을에 접어들고 나니 그날의 기억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말하면 조금은 다를 것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이 <보이후드>를 만들기 위해 택한 방식은 그래서 ‘극영화’가 삶에 최대한 밀착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능한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그렇다 해도 매년 15분 정도씩 열두 번만 찍으면 뚝딱 <보이후드>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건 단지 열두 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이어서 붙인 것에 불과할 테니까. 이것이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만약 이 이야기를 01년부터 12년까지 연도순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첫 번째 해와 두 번째 해 사이에, 그리고 두 번째 해와 세 번째 해 사이에는 어떤 통일성이 필요하다. 관객이 연도 구분을 인공적이라 느끼지 않도록 흐름을 자연스럽게 해주는 문법이 하나 필요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주로 이것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 여섯 살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이 있다.


영화 '보이후드' 스틸컷


여섯 살 소년이 열여덟이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여섯 살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은 별로 말도 없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에 가깝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세상의 여러 이야기와 자극과 관계들을 직, 간접적으로 수용하고 반응하는 스펀지 같은 아이다.


‘메이슨’의 캐릭터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정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 속 캐릭터와 서사는 의도된 인과율과 세계관에 따라 움직인다. 열 살 때 무슨 일을 겪었는데 그게 한 몇 년 지나고 나서 나타나는 어떤 행동의 원인이 되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라 그 사람의 성격이 그렇게 되었다는 건 그의 삶을 요약적으로 말할 때라면 가능한 설명이겠지만 너무 많은 것이 감춰지거나 생략돼 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인물을 설명할 경우 그 사람의 삶을 둘러싼 여러 환경과 요소들 가운데 ‘바로 그 사건’ 같이 특정한 무언가를 돌출하거나 대두시키게 된다.


여섯 살 ‘메이슨’에게 주어진 환경은 대략 이런 것이다. 누나가 있고 엄마와 살고 있으며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별거 중으로 가끔씩 찾아와 남매와 주말을 보낸다. 소년은 가족과 함께 살고 학교에 다니며 이것저것을 배우고 자란다. 보이지 않는 사이 조금씩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질문도 생기며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이사를 다니면서 친구와 헤어지고 친구를 사귀며, 엄마의 재혼으로 이복 형제 자매가 생기기도 한다.


<보이후드>의 마법은 여기 있다. 예를 들어 여섯 살 때 엄마가 재혼을 하고 여덟 살 때 이사를 하고 열 살 때 아빠가 카메라를 사주고 열세 살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여섯 살의 한가운데로 잠시 스며들었다가 이내 일곱 살의 어느 날로 이동해 있는 것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서사의 신이 한 인물의 삶을 배치해 놓은 뒤 그것을 전지적인 시선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거기 살고 있던 이의 삶에 잠시 머물기를 반복하는 쪽이다. 매년 조금씩 촬영했으니 배우들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른 채 그저 매년 동료 배우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 마법은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가령 관객인 우리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속편이 어떻게 나왔는지, 미국 대통령이 누가 당선되었는지 같은 걸 다 알고 있지만 촬영 시점의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캠핑을 떠난 아빠와 아들은 과연 <스타워즈>의 속편이 나올 수 있을지 ‘제다이의 귀환’ 이야기 이후 시간대에 무엇이 가능하겠냐는 대화를 나누고, 오바마와 매케인의 선거전 때 아빠는 남매를 데리고 다니며 오바마를 지지하는 피켓을 집집마다 세워놓기도 한다. 사실상 홀로 육아와 생계를 책임지는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트)는 집을 이사하거나 대학에 새로 들어가 심리학을 배우는 등 분주하게 삶을 감당한다. 여기에는 누가 죽거나 다치는 식의 사건들이 개입되지 않으며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생애의 이벤트들도 최소화되어 있다. 이혼이나 부부싸움 같은 어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린 ‘메이슨’이 그것들을 전부 다 파악할 리는 없으니까.


사람마다 유년을 기억하는 방식과 그 기억의 내용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삶에 찾아오는 분기점들을 그 시작과 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가운데의 뜻 모를 순간들로 기억하게 된다고. 언젠가 아빠가 열여섯이 되면 차를 사주겠다고 말했다든지, 아니면 전에 살던 집 벽에다 키재기를 하고 펜으로 선을 그어놓았던 순간이라든지. 가령 여섯 살 ‘메이슨’의 이야기는 엄마의 생계를 위해 가족들이 이사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만 일곱 살 ‘메이슨’의 이야기는 이미 몇 달은 살았을 새 집에서 아침 등교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우리는 그게 몇 달인지 몇 주인지 며칠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메이슨’의 머리가 조금 자라 있을 뿐이다. <보이후드>는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가 아니라 과정에서 또 다른 과정으로의 연속이다.


과정에서 또 다른 과정으로의 연속. 그래서 <보이후드>의 많은 장면들은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고등학생 ‘메이슨’은 여자친구 ‘시나’와 새벽에 한 카페테리아에서 나초를 먹고 있다. 대학생이 되는 것을 앞둔 두 사람의 대화는 대학생 된다고 뭔가 갑자기 변할 것 같지는 않다는 말과 변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삶의 단계 중 하나인 것 같다는 말로 이어지는데, 이 대화의 앞에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다른 장면에서 나오지도 않는 카페테리아 안 다른 손님들의 모습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건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 ‘제시’와 ‘셀린’이 식당 안에서 서로를 마주 본 채 전화 역할극을 하는 장면과 거의 비슷한 연출이다.


이 장면에서의 연출과 컷 편집 방식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용부터가 <보이후드>의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인생이 엄청나게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한 단계일 뿐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자각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의 열쇠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여기서 ‘메이슨’은 자신을 키워준 엄마 ‘올리비아’를 생각한다. 학위를 따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하게 되었지만, 이건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서사’를 돌이킬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올리비아’ 본인도 그런 일들을 내다본 게 아니라 당장 당면해 있는 생계를 해결하고 여러 시행착오와 헤맴 속에서 살아왔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여섯 살 ‘메이슨’은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서 열여덟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직접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메이슨’은 몸만 자란 게 아니라 마음까지 이만큼 자라났다.


영화 '보이후드' 스틸컷


지금 언급한 이야기는 ‘메이슨’이 대학 기숙사로 떠나기 직전 ‘올리비아’가 하는 말과 거의 정확히 대응된다. ‘메이슨’이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고 처음 찍은 사진을 ‘올리비아’는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기숙사로 떠날 때 가져가라고 말하지만 ‘메이슨’은 두고 가겠다고 한다. 이런 걸 굳이 뭐 하러 갖고 가느냐면서. ‘올리비아’에게 그런 순간들은 고스란히 삶의 의미라고 믿어지는 순간들이었을 거다. 아이가 처음 걷기 시작한 순간,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 처음 자전거를 배운 순간, 의붓 아빠가 사준 필름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순간. 그런데 ‘메이슨’은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겠다고 말한다.


사진을 안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는 ‘메이슨’이 다시 짐을 챙기러 방에 들어간 직후 영화의 카메라는 몇 걸음 물러나 벽에 가까이 앉아 있는 ‘올리비아’와 집의 풍경을 멀리서 비춘다. 이제 자식들이 다 떠난 공간에 ‘올리비아’ 홀로 남겨질 것임을 상기하듯이. ‘올리비아’는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떠날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신이 나서 갈 줄은 몰랐다.”라며,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라며, “많은 일이 있었지, 결혼하고, 애 낳고, 이혼하면서.”라며.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사람의 삶이 어차피 우주적 범주로 볼 때 한낱 먼지이자 찰나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이 나중에 뭔가 있을 거라는 희망 아래 지속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떠나간다는 것. <보이후드>에는 그런 대목이 많다. ‘올리비아’가 두 번의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메이슨’과 친해졌던 이복 남매들은 물론 가족처럼 다가왔던 의붓 아빠(들)도 지나간 존재들이 된다. 영화에서 이들의 삶을 더는 보여주지 않지만 ‘메이슨’의 유년을 거쳐갔던 그들의 삶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을 찍을 수도 있겠지.


십수 년 동안 홀로 육아와 생계를 전담했던 자신의 행적을 허망한 듯 돌이키는 ‘올리비아’의 모습으로부터도 영화는 금세 나아간다. ‘I don’t wanna be a part of your parade’라는 Hero의 삽입곡 ‘Family of the Year’ 가사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흔적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지난 누군가의 과정이 되었다가 흔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 그러니 <보이후드>는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라고 말해준다. 미국 텍사스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이 말을 12년에 걸쳐 하는 동안, 영국에서도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어바웃 타임>(2013)을 통해 비슷한 이야길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삶은 픽션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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