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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16. 2021

희망이 사라진 세계 안에서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2018) 리뷰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로마>(2018)만큼은 아니었지만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2018)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성이 컸던 작품이다. 조시 맬러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컨택트>(2016)의 에릭 헤이저러가 각색을 하고 데이빗 핀처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선보여 온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가 참여하는 등 외적으로도 눈여겨 볼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원래 유니버설 픽처스의 작품이었으나 도중에 넷플릭스로 판권이 넘어갔는데, 필모그래피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베테랑 감독 수잔 비에르의 연출도 어느 정도 영화의 신뢰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영화 '버드 박스' 스틸컷


<버드 박스>는 원인불명의 사태로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자살을 하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람을 일으켜 나뭇잎을 움직이거나 그림자가 보이는 등 존재는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식별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모든 창문을 막고 문을 걸어 잠근다. 임신한 주인공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태아 상태를 진찰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이 아비규환 가운데 보는 앞에서 동생이 차도에 뛰어드는 것을 본 뒤 누군가의 도움으로 몇몇 생존자들이 있는 한 집에 들어가게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사태가 발생한 시점이 영화상 현재가 아니라 5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혼란과 무질서와 공포로 가득했던 5년 전 과거와, 그리고 눈을 가린 채 아이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어딘가로 가야 하는 '맬러리'의 현재 시점이 수시로 교차된다. 현재는 '강물에 오른 지 6시간 후'와 같은 자막을 수시로 배치해 고요한 강물 흐름 뒤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며 과거는 그 자체로 극한의 공포를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하는 연출로 채워져 있다.


살기 위해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기 위한 눈가리개를 한다. 바깥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목숨을 걸고 움직이며 또 누군가는 집에 낯선 생존자를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총을 꺼내든다. <버드 박스>가 '그것'의 실체라든지 그들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영화 끝까지 감추는 건 의도적으로 그 '생존의 공포'를 말미에 이르기까지 해소해주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살아있다는 실감과 불과 몇 초 후에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 곧장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불안한 공존을 지속한다.


영화 '버드 박스' 스틸컷


지금까지 제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맬러리'는 우연한 계기로 사람들과 달리 새들이 '그것'의 존재를 먼저 알아차리고 소리를 내는 등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다. 새들이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이 주변에 없다는 뜻이이다. 그래서 생존자들이 모인 집 안에는 새장 안에 든 몇 마리의 새들이 있다. 에릭 헤이저러가 시나리오를 쓴 <컨택트>에서도 '헵타포드'와의 대화 세션 장소 안에 새장 속 새 한 마리의 역할이 마치 그곳이 사람이 있기 안전한 곳인지를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유사한 점은 안전한 정도를 나타내는 사인으로서의 새들의 존재가 영화 안에서 '소리'를 통해 자연의 어떤 것을 상기하게 해준다는 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이 주는 압도적인 두려움 가운데 청정하고 무해한 새 소리들은 관객에게도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일종의 호흡기가 된다.


5년의 시간 동안 '맬러리'는 살아있음의 희망 같은 건 완전히 소진해버린 듯 오로지 '생존'을 위한 갖가지 요령들만을 습득했다. 아이들이 금방 죽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들은 이름도 '보이'와 '걸'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꿈과 동화보다 눈가리개를 언제 벗을 수 있는지, 집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주입받아왔다. '맬러리'는 그래서 세상 어딘가에 생존자들이 더 있고 '그것'에 맞설 수 있다고 믿는 '톰'(트레반테 로즈)과 의견 충돌을 빚기도 한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며 가까스로 몇 해를 생존했지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 '그것'을 봐도 자살하지 않는 어떤 정신이상자 무리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로 눈을 뜨게 하고 '그것'을 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무장을 한 채 생존자들의 집을 돌며 강제로 침입해 창문과 블라인드를 여는 등의 행위를 합니다.) 정말로, 희망은 여기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버드 박스>에서 5년 전과 지금 각각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며 '맬러리'는 살 수 있는 걸까.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과 희망은 나날이 시험받고 약해져간다. <버드 박스>는 그래서 지금과 같은 팬데믹의 시대에 더 밀접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는 영화다. 다른 재난 영화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 않은 채 극장을 드나들 수 있을까. 많은 오프라인 행사들은 취소 혹은 축소되거나 온라인을 통해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고 어떤 업계에서는 새로운 기회와 활로를 물색하고 있기도 하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전염병에 의해 후유증을 겪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마스크 쓴 채로 또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던 적이 있다.


언젠가는 우리는 다시 일상을 되찾을 것이고, 2020년의 일도 2021년의 일도 기억 속에만 있게 될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흘러가겠지. 그러나 막연한 미래보다 당면한 현재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니까. 재난과 혼란의 시대는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든다. 한두 달도 아니고 거의 한 해에 걸쳐서 그렇게 되고 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적도, 상황이 좋아졌던 적도 있지만 한여름을 앞두고 재유행 하게 되리라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없었지. 하지만, 올해가 이제 하반기로 접어들었다는 게 한편으로 어떤 희망을 갖게, 혹은 희망 비슷한 무언가를 품어보게 해주기도 한다. 우리에게 괜찮은 나날이 조금 더 허락되기를 바란다. 희망은 눈에 쉽게 보이는 게 아니라 간신히 찾아야 거기서 작게 바람 일으키듯 감각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2020.09.30.)


영화 '버드 박스' 국내 포스터


https://www.netflix.com/title/80196789

https://brunch.co.kr/@cosmos-j/1304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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