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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3. 2021

무언가를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2월 마지막 주말의 기록

영화 <패터슨>(2016)의 블루레이/DVD 음성 코멘터리에는 김혜리 기자님의 "아담하고 고유하고 자족적인 자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 야심은 없지만 자아의 중심이 확실하고 타자로부터의 인정이 필수적이지 않은, 타인에게 친절하고 균형이 잡힌 사람."이라는 언급이 있다. 예술가로서 '패터슨'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관한 견해인데, 저 표현을 접한 이후 자신의 시공간을 고유하고 안온하게 지켜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것을 매번 떠올린다.


안리타(문보영, 오수영 공저), 『언젠가 우리 다시』, 커넥티드 북페어에서

혼자의 세계를 지키는 일에 때로는 타자로부터의 영향이 중요할 때가 있다. 어떤 것은 필요하고 어떤 것은 도움이 되며 어떤 것은 응원이 되기도 한다. 1인 출판을 오래 지속하고 있는 안리타 작가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주로 기록하기만 했지 책으로 엮는 일을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내게는 그와 같은 작가가 꾸준히 (공저 포함) 신간 소식을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영향력이 된다. 가깝고 멀게 내가 아는 이들 중, 앞서 인용한 저 '아담하고 고유하고 자족적인 자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를 떠올린다면 그와 그의 작품들이 포함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 다시』의 안리타의 첫 글은 이런 이야기로 시작된다. "(...) 아직 보여주지 못한 풍경이 많다. 언젠가 한 번은 발설할 때가 있겠지, 그 이야기를 이제는 꺼내어보아도 좋겠지, 하는 마음. 오랜 서랍 속 깊숙이 잘 접어둔 지도를 펼쳐보듯 조심스럽고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서서히 열어본다. 언젠가 꼭 해야 할 일, 다시금 흐트러진 길들을 배열해 기억의 지도를 완성하는 일. 아, 그랬었지, 그런 여행이 있었지. 되뇌면서." (57쪽) 이 말들과 그다음 말들을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책 표지의 저 멈춰 있는 재생 버튼도 다시 눌리고 이야기는 몇 쪽에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럴 수 있다고 믿게 해 주는 문장들을 오늘도 만나고 있다.


합정역 6번 출구, 오후 6시 24분

인용으로 시작했으니 인용으로 맺어볼까. 오늘 전해받은 문장들 중 이것이 떠올랐다. "창작욕, 책임감, 성실함이란 말로 포장된 험난한 여정을 반복하는 일이 얼마나 커다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라는 말이 얼마나 무용한지 지금은 감히 안다." (이마루, 『아무튼, 순정만화』에서(코난북스, 2020, 164쪽)) 자기 세계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축해 온 사람일수록,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 오히려 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일을 해내고 있는 이들이 오늘은 어제보다 더 지치지 않는 일상을 보냈으면 하고 생각한다. (2021.02.27.)


망원동, 카페 '모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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