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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1. 2021

이 여름도, 잘못될 리가 없어

영화 '맘마미아!2'(2018)

셰익스피어도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라며 소네트를 썼다. 수많은 이들이 계절을 찬미했듯, 시들지 않는다는 건 곧 생명의 에너지가 약동한다는 뜻이다. 초록으로 가득한 여름날의 우리 일상에는 평소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휴양지에서 보내는 며칠의 낭만과 추억이 자리해야 하건만, 더는 새삼스럽지도 않게 여행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지난날의 그것을 떠올리는 일이다. 계속해서 ‘우리’라고 썼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직접 추억하지 않는다면 영화로 간접 추억하는 일은 가능하겠다.


영화 '맘마미아!2' 스틸컷


올 파커 감독의 영화 <맘마미아!2>(2018)는 2008년에 나온 <맘마미아>의 속편이다. 내용상 전작으로부터 5년 후를 다루면서도 전작이 있기 전 ‘도나’(메릴 스트립)의 1979년 과거 시점의 이야기를 아우른다. 대학을 갓 졸업한 ‘도나’(릴리 제임스)는 옛날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 믿었다던 그리스의 섬 ‘칼로카이리’로 무작정 떠난다. 절친들과 잠시 떨어져 여름을 보내게 된 여행지에서, ‘도나’는 세 명의 남자들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친밀해지며 낯선 섬마을에서의 일상에 정착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의 현재 시점에서 재-회상되며 엄마와 딸의 서사를 하나로 연결한다.


애초 <맘마미아>는 아바(ABBA)의 노래가 기반인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그 자체로 탄탄한 내러티브를 만들기보다 한 편의 재생목록을 성실히 들려주는 쪽에 가까웠다. 거기에 속편이 굳이 필요했을까? 이 물음에 <맘마미아!2>는 전편을 10년 전에 만났던 관객들과 아바의 팬들의 귓가에 일일이 직접 속삭이듯 전편에서 이미 쓰였던 노래들 다수를 재활용한다. 심지어 ‘Dancing Queen'이 나오는 장면은 그 구성 면에서 두 영화의 방식이 서로 많이 닮아 있기까지 하다.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에게 이 노래가 기억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지금 되새기게 해주겠다는 것.


영화 '맘마미이!2' 스틸컷

영화의 원제는 ‘Mamma Mia! Here We Go Again'인데 이는 ’Mamma Mia'의 가사 중 “Here I Go Again”이란 대목을 변용한 것이다. ’I'가 아니라 ‘We’. 일차적으로 이것은 1편의 주인공 ‘도나’와 2편의 주인공 ‘소피’를 이어주는 의도를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 각별하게 닿는 의미는 이것이 단순한 추억 환기가 아니라 지난날에 우리 각자에게 있었을 활력을 지금 여기에 불러오는 것이다.


<맘마미아!2>의 삭제 장면 중 한 대목에서 ‘도나’는 공항으로 향하기 전 ‘I Wonder'를 부른다. 그 가사 일부를 풀어 적자면 이런 내용이다. “난 궁금해, 무섭기도 하고. 지금 떠나는 게 옳은 일일까? (...) 난 강해질 거야. 일생의 단 한 번의 기회, 그래 난 해볼 거야. 잘못될 리가 없어.” 떠나기 전 런던에서도 떠나온 칼로카이리에서도 ’도나‘는 다가오지 않은 앞날을 향해 기대와 호기심과 염려와 불안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 데도 ’도나‘는 가벼운 짐만 챙겨 떠나온 이 여행이 어떤 식으로든 괜찮게 흘러갈 거라고 노래한다. 여행은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자를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삶으로 인도하는데 그건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의 시간은 오직 앞을 향해서만 흘러간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와 불확실한 것을 받아들이는 의연함인데 이는 물론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당장 “내년엔 해외여행 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무엇이든 시도하기보다는 편안하고 안전한 것에 의지하기 쉬우니까. 의지한다는 건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인데, 한편으로 2021년 여름의 나날이 작년 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우리를 체념하게 만들기도 한다.


앞서 인용한 ‘I Wonder'의 가사는 영화 후반에 이르러 ’My Love, My Life'라는 곡을 통해 변주된다. “내 앞에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네. 밟아볼 엄두조차 못 냈던 낯선 길이...” 수십 년 전 칼로카이리 섬에 먼저 왔던 ‘도나’도, 그런 엄마가 남긴 것을 따라서 새로운 터전을 일구는 ‘소피’도, 누구도 제대로 일러주지 않는 방향과 보이지 않는 앞날 속에서 망설이고 방황했고 헤매는 중이다. 이 여름을 지나보내고 있을 당신에게도 그런 불안감은 자연스럽고 그중 많은 것들은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떨쳐낼 방법도 마땅치 않겠다. 하지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땀은 비 오듯 흐르는데 앞은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멜로디가 있다. "Mamma Mia, Here We Go Again!" 그 길은 잘못될 리가 없다.



*본 리뷰는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 2021년 8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kma.go.kr/kma/archive/pub.jsp?field1=grp&text1=skylove


https://brunch.co.kr/@cosmos-j/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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