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상황은 때와 장소나 직업을 가려서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유명한 사람일수록 불특정한 다수의 상황과 사람에 노출되어 있고 오히려 타깃이 되기 쉽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현실적'이라는 건 소재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떤 경우 현실성은 이미지를 통해 영화와 영화 바깥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확보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규모는 물량이나 비용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기획력에 있다는 걸 <인질>(2021)은 잘 보여준다. 황정민은 주연을 넘어 기획의 주역이자 영화의 전부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역할을 하고, <인질>은 텐트폴 작품 치고는 제작비가 아주 많이 들어간 편은 아니지만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최대치로 활용해낸다. (작중 '황정민'의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은 점이나 납치범 일당의 캐스팅 측면에서도 이 기획은 꽤 잘 만들어졌다)
영화 '인질' 스틸컷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최철기'(<부당거래>)나 '서도철'(<베테랑>)이 아니라 황정민의 이미지나 "드루와"(<신세계>)와 같은 단편적인 것들일 테고, 연예인에 대하여 사람들은 미디어 등을 통해 본 일부를 가지고 그것을 전부인 것처럼 왜곡/착각하거나 혹은 일정한 이미지를 요구("착한 척하지 마") 하기도 한다. <인질>에서 '황정민'을 납치하는 이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는 행동과 사회성을 보이지만 연예인을 대중이 소비(혹은 소유)하는 방식 자체도 <인질>은 기획과 착상의 일부로 삼는다.(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중보다 연예인이 확실한 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인질>은 대단하고 뚜렷한 메시지나 함의를 담으려 하기보다 어디까지나 (94분밖에 안 되는 상영시간이 잘 말해주듯)여름철 극장에서 만나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여름/겨울 극성수기에 개봉한 천만 영화부터 명절 영화, 혹은 장르적 색깔이 뚜렷한 작품들과 드라마, 뮤지컬까지 거의 모든 종류를 경험한 황정민 외의 다른 경우의 수를 떠올리기 어렵지만(이건 그 배우가 동원한 관객 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런 기획과 시도가 한국 영화계에서 좀 더 많이 논의되고 실현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