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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1. 2022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훤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2022)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마종기, 「비 오는 날」에서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포스터

드라마에서 소설이나 시의 한 대목을 읽어주거나 들려주는 순간을 만날 때의 반가움이 있다. 캐릭터의 내면과 상황을 대변해줄 수 있을 만한 시구를 찾느라 골몰했을 작가의 안목을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명확하지도 확실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마음들을 투영해주는 문학의 역할을 그럴 때 한 번 더 지지하게 된다.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jtbc, 2022)은 표면상 로맨스 장르에 속하지만 기상청 예보팀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직업인들의 일상과 업무 영역 곳곳을 따라다닌다. 여기에는 단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슈퍼컴퓨터의 판단만 개입하는 게 아니라 숱한 계절과 날씨와 그로부터의 파장을 겪어온 ‘기상청 사람들’의 망설임이나 예감이나 믿음 같은 것이 개입된다. 기상 특보 하나를 발령하는 일에도 수십 혹은 수백 억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고 어떤 예상되는 날씨에 대해 예보를 하는 일도 하지 않는 일도 모두 확률만으로 따질 수 없다는 걸 이 이야기는 (6화까지를 본 지금 기준에서) 잘 전해주고 있다.

체감온도, 환절기, 가시거리, 국지성 호우, 열섬현상 같은 날씨 관련 용어들이 각 화의 소제목을 이루고 있다. 가령 어떤 관계를 떠나보내는 일과 새로이 맞이하는 일의 사이에 있는 마음은 두꺼운 외투를 챙기기는 따뜻하고 가벼운 옷을 입기에는 쌀쌀한 날씨에 비유하기도 하고 바로 가까이에 있어도 읽지 못하는 마음과 멀리 있어도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마음의 일들이 가시거리에 빗대어 설명되기도 한다.

최근 원고를 쓰기 위해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 ‘12월 31일에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생각했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우산을 만드는 사람의 일을 바라봤다. (마침 그 원고는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에 실었다) 날씨는 의미를 부여하기 쉬운 수단이면서도 단순화할 수만은 없는 복잡성을 지녔다. ‘시우’(송강)라는 이름은 호우시절이라는 말과 겹친다. ‘하경’(박민영)의 이름은 무엇과 이어질까. ‘춘하추동’만으로 계절 전부를 나타낼 수 없듯 어떤 사랑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물의 특징이나 배경으로서를 넘어서 캐릭터와 관계 자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에 대한 묘사가 더해져, [기상청 사람들]은 날씨라는 소재를 인물과 풍경과 조화시키고 있다. 시즌제로 공개되는 ‘시리즈’를 몰아보는 게 익숙해져 매주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드라마’를 만난 지 제법 오래되었다. 그럴 만한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하는 몇 개의 장면과 몇 개의 발화들을 떠올리며, 6화에 인용된 마종기의 시집을 더듬거린다. (2022.03.01.)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포스터

*글 제목은 언급한 마종기의 시에서 한 대목을 가져왔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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