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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14. 2022

세 번의 여름 동안 만난 소설가 김애란의 산문

'잊기 좋은 이름'(2019)과 서점 리스본

분명 돌아갈 수 없음을 아는 시절이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만큼 많은 영화들과 많은 책들을 만났던 때가 없다. 대략 2018년 초부터 이듬해 가을 무렵까지의 날들. 몇 군데의 서점들을 다니며 낯선 지적 자극과 경험들을 흡수하듯 받아들였고 이미 만난 세계가 주는 안온함을 좇아 본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러 어두운 밤 더 어두운 극장으로 향했다. 많은 소비를 했고 벌이는 그에 걸맞지 않게 적었지만, 그래서 지금도 마치 오늘만을 살듯이 쓰고 담고 비우는 것 같지만,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을 열렬히 좋아하기만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소중하다. 그날들을 걸어오고 건너올 수 있었기에 이렇게 세 번의 여름을 지나는 동안 그때가 그러했다고 적을 수 있다. 경의선숲길을 걷는 밤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대해서도.


@연남동, '서점 리스본'에서


"그러니 때때로 우리가 허공에 던진 부메랑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는 듯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가지 말아야 할 자리로 가거나 잘못된 장소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공들여 바라보고 싶습니다. 떠날 때 부메랑과 돌아온 부메랑은 같은 것이 아니란 걸 선배처럼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더 던지고 다시 온 힘을 다해 던지는 안부 속에서 선배의 일상이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와 감정이, 사람이, 순결하지 않아 자주 오해받고, 상처 주며, 절망하는 일도 잦겠지만. 떠난 자리로 번번이 돌아오고야 마는 소설의 성질을, 이야기의 관성을 앞으로도 받아내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요. 부메랑이 돌아오는 동안 저도 눈 덮인 선풍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발을 맞으며 언니 옆에 쪼그려 앉아 있으려 합니다. 불 쐬듯 눈을 맞으려 합니다. 그러곤 탈탈탈탈 돌아가는 선배의 선풍기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릴 거예요.

"저 파란 날개 좀 봐. 성희 언니 손바닥을 닮았네, 손바닥을 닮았어."

그리고 오늘 손바닥에 푸른 멍이 들 정도로 선배에게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에서 (열림원, 2019)


김애란의 산문을 여름마다 꺼내 읽고 있다. 이번에는 그가 동료 소설가 윤성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을 오래 읽었다. 오직 소설을 쓴다는 사실로 인해 서로 연결된 사람들. 책에는 김연수, 편혜영, 박완서 등 다른 소설가들의 이름도 언급되는데,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그들의 소설들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쓰는 사람들이 다른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주하는 종류의 연대감처럼, 쓰는 이는 자신이 쓰는 글을 결국에는 닮게 된다고도 생각한다. 글쓴이의 손을 떠난 글들이 손을 떠난 뒤에도 계속 존재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거기 있어 작품과 작가는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기를 지속한다.


김애란 산문 '잊기 좋은 이름'에서


내게 김애란은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과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입동」,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을 깨닫게 하는 이 중 하나다. 김애란이 자신이 자란 시공간과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방식과 그것들이 빚는 세계는 그의 소설에서 만나온 모습과 닮아 있다. 세부를 포착하고 그것을 하나의 세계로서 생생히 체험시키는 것이 어떤 소설의 일이라면, 그리하여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틈을 선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어떤 소설가의 산문은 마치 소설인 것처럼 다가와 잊을 수 없는 시절로 남는다. 나는 여기저기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산문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그건 이런 산문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한창 김애란의 산문과 소설과 강연, 인터뷰 등에 심취해 있던 때가 앞에서 말한 온전하고 열렬한 시절에 고스란히 포개어진다.


세 번의 여름을 생각한다는 건 그동안 축적된 많은 기록들을 꺼내보는 과정을 동반하는 일이다. 영화에 관해서든 영화가 아닌 것에 관해서든, 셀 수 없는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쓰였다. 잘 쓰인 것도 있지만 숙고되지 못한 채 쓰인 문장들도 많다. 꼭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글을 먼저 보내고 삶이 그것을 따라간다. 어떤 경우에는 쓴 글이 나보다 낫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당면한 업무나 청탁들을 해치우듯 해내느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퇴고할 시간이 늘 부족한 요즘이다. 김애란과 같은 이들의 문장을 읽으면서 갖는 바람은 이런 것이다. 내 글이 하나의 작품 혹은 그 비슷한 무엇으로 남을 수 있다면, 내 삶은 적어도 그 글에 가까운 것이었으면 한다는 것. 흠잡을 데 없는 글이 아니라 삶을 닮은 글이면 족할 것이다.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들의 글은 늘 이런 궁리를 하게 한다. 그 이름들은 그래서 영영 잊을 수 없을 이름이다.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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