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래야만했는지묻는기행에게이천육백년전의시인이대답했다. 그까닭은우리가무쇠세기에살고있기때문이라고. 그러니시대에좌절할지언정사람을미워하지는말라고. 운명에불행해지고병들더라도스스로를학대하지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말고, 지치지말고)."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문학동네, 2020, 172쪽
백석의 일대기를 기반으로 한 이 소설에는 위와 같이 기원전 7세기의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의 인용이 있다. 특별한 것은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라는 대목이다. 당연히 이 소설은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그들은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고 기행은 마치 미래에서 온 자신 혹은 누군가의 지시 혹은 계시처럼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다. 비록 냉담하고 지쳤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아래의 시 이후에도 50여 년을 더 살았다는 점이다.
2022.07.28, 마음산책 ‘마음폴짝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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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94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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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소설가 김연수의 말은 미야자와 겐지부터 시작해 신숙주와 성삼문, 외젠 뷔르낭, 알리스 헤르츠좀머, 백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테마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직 글로 쓰는 행위로 인해서만 가능한 일들. 그리고 힘들고 어두운 순간일수록 빛과 긍정을 말하는 (예술로서의) 쓰기와 그로부터 쓰인 글의 힘.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이야기하고 인용해왔지만 생각해보니 지금껏 한번도 소설가 김연수를 대면할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좋아하는 작가'를 십수 명은 열거할 수 있지만 내게 그중 맨 앞은 확실하게 '김연수'였다. 그로 인해 나는 '작가'와 '쓰는 사람'의 차이를 생각하게 됐고 개연함을 넘어 핍진하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됐으며 불확실한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에 관해 배우게 됐다. 소설과 산문을 막론하고 한두 문장의 인용과 발췌만으로 담을 수 없는, 오직 전체의 맥락을 헤아려야만 파악할 수 있는 글의 정수를 느낀 것도 전적으로 그의 덕분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개정판 (마음산책,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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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2004, 마음산책)의 개정판이 최근 출간됐다. '개정판'이라 이름 붙었지만 그에 따르면 거의 처음부터 새로 쓰이거나 되풀이해서 쓰인 책에 가깝다. 30대에 낸 책을 50대가 되어 다시 읽고 생각하고 오랜 기간 새롭게 지어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과거의 자신이 미래에게 전해주는 선언이었을까. 아니면 미래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을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게는 김연수의 문장들이, 과거에 읽었던 그의 숱한 말들이, 오늘의 내게 다가와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위한 방향이 된다고 느낀다. 마음산책북클럽에서의 북토크를 마친 후, 그는 사인에 내게 각별한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 속 한 대목을 생각나게 하는 말을 적어주셨다. 소설가가 아닌 나는 몇 백 년 뒤의 시점에서 현재를 지시하는 말 같은 것을 할 능력은 못 되지만 그런 것이나 다름없는 말은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기행의 헤시오도스 같은 사람. 그게 내게는 별 수 없이, 김연수다. (2022.07.28.)
왼쪽은 ‘소설가의 일’에 받은 사인, 그리고 오른쪽은 ‘청춘의 문장들’(개정판)에 적힌 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