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2022) 리뷰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2022, 이하 ‘기상청 사람들’)은 그 제목에 소재와 내용, 장르가 모두 집약된 작품이다. 배우 박민영과 송강이 각각 연기한 ‘진하경’과 ‘이시우’를 주인공으로, 두 사람이 속해 있는 기상청의 본청 총괄예보팀을 주 배경으로 사랑 이야기와 직업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 속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차피 컴퓨터가 다 예측하고 판단해주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상황실에서 밤낮을 교대하면서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와 불확실성을 토대로 장마나 태풍, 폭염과 같은 기상 현상들을 가능한 정확히 알리고자 한다.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일에는 여전히 불가항력의 영역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인물들이 가져보는 직업에 대한 신념과 난관에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이 드라마 내내 깃들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총 16부로 구성된 [기상청 사람들]의 매 회차는 ‘환절기’, ‘체감온도’, ‘가시거리’, ‘이동성 고기압’과 같은 기상 관련 용어들이 소제목이다. 짙은 안개 때문에 극도로 제한된 가시거리로 인해 고민하는 상황실의 이야기는 관계에 어려워하고 상처받으며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길 없는 주인공들의 감정 묘사와 조응한다. 지나간 관계를 떠나보내는 일과 새롭게 다가온 관계를 맞이하는 일의 사이에 있는 마음은 두꺼운 외투를 입기에는 따뜻하고 가벼운 옷을 입기에는 아직 쌀쌀한 환절기에 비유된다. 연이어 북상하는 대형 태풍을 앞두고 태풍의 진로를 예측해야만 하는 상황은 이별을 통보한 상대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에 관해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가늠해보는 주인공의 내면과 맞물린다. 지금 말할 것은 바로 이 ‘태풍’에 대한 것이다.
본청 총괄예보팀 과장인 ‘하경’은 14호 태풍과 15호 태풍의 연이은 발생에 태풍의 진로를 어떻게 예보할지 결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다행히 14호 태풍의 진로는 정확히 예보했지만 전국에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힌 상황이다. 예보가 들어맞은 것에 기뻐하거나 보람을 느낄 겨를도 없이 15호 태풍의 예상 경로를 두고 총괄1팀은 세 개의 시나리오를 상정한다. 전남 남해안 상륙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체를 관통한 뒤 포항으로 빠져나가는 시나리오, 동쪽으로 더 꺾여 남부지방 일부에만 영향을 주는 시나리오, 그리고 북태평양 고기압의 수축으로 인해 제주를 지나 일본 규슈 지역으로 방향을 트는 시나리오가 각각 있다. 셋 모두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본청과 제주 태풍센터 간 공조가 이루어진다. 제주 해상에 배를 타고 나가 기상 관측 장비인 ‘존데’를 직접 띄워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은 세찬 바람과 폭우 속에서 긴박하게 그려진다. 얻어진 자료를 기반으로 다행히 15호 태풍이 한반도에 직접적 타격을 입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만, ‘하경’은 국민들이 태풍 피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발표하기로 한다. ‘하경’은 선배에게 “예보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다”라며 결정의 이유를 말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관통하며 [기상청 사람들]은 매 회차 날씨를 소재로 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엮어내고 기상청 조직 내 각 분야와 직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직업 현장, 그리고 일과 가정 안팎에서 생겨나는 저마다의 고충을 섬세하게 그린다. 주인공 ‘하경’과 ‘시우’의 감정과 관계 묘사에 충실하지만 ‘사내연애’라는 키워드 자체에만 골몰하지 않고, 그들이 속해 있는 조직인 기상청을 단지 소재나 배경에 그치지 않고 서사와 생생히 호흡하고 공명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이 이야기는 곳곳에서 묘한 뭉클함과 위로를 안겨준다. (위 에피소드에서 서울 본청과 제주 태풍센터간에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에는 상기시키기도 한다.)
태풍이 발생하는 이유는 ‘지구가 자전을 반복하면서 생긴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태풍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의 ‘하경’의 내레이션은 순환하고 반복되는 날씨와 계절의 흐름을 인생과 인간관계에 빗대어 표현한다. “지금 이 태풍이 당장은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르나 길게 보면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태풍이 결국 자연의 균형을 위해 생겨나듯 삶에서 마주하는 고난이나 상처도 그것을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 지금 준비한 시나리오가 들어맞든 빗나가든 인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끊임없이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마음이 변하거나 계절이 흘러가는 일은 얼핏 슬프기도 하지만, 한 번 겪어본 지난 계절을 우리는 더 성숙한 채로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