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Dec 03. 2022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강의로 시작한 12월

작은 차이들의 연인

김혜리 기자의 가을 특강에 이어서 신형철 문학평론가와 함께한 마음산책 겨울 특강. 가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따로 더 생각하고 정리해두고 싶은 대목을 가득 만나 하나의 글만으로는 대신할 수 없겠어서 나는 다만 이 강의를 듣는 평일 저녁이 그렇지 않은 평일 저녁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했다.


2022.12.01, 마음산책 '마음폴짝홀'에서


두 번에 걸친 강의를 듣는 2주의 기간 동안 추워진 날씨에 대해 생각했고, 두 번 다 강의 시작 전 같은 카페에 있었지만 달리 흘러나오던 음악에 대해 생각했으며(첫날에는 여러 아티스트와 장르의 곡이 섞여 나왔지만 둘째 날에는 윤하의 노래만 계속해서 나왔다), 앉았던 자리가 다르거나 강의를 마친 뒤 허기를 달래러 저녁을 먹은 곳이 다르거나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이것들도 <패터슨>(2016)의 월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이야기 속 '차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주와 서울을 왕래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일정상 첫 강의 때는 책 사인을 받지 못했으나 두 번째는 더 시간을 할애해주신 덕에 책 사인을 받으며 두 번에 걸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직접 전해드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뵈었던 북클럽문학동네 강연('우리는 얼마나 깊은가? - 깊이-읽기와 깊이-있기')이 꼭 3년 하고 하루 전(2019.11.30.)이었다는 것과 4년 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의 출간 무렵 있었던 강연도 11월이었다는 사실도.


2018.11.02, 인터파크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2019.11.30, 마포중앙도서관 '마중홀'에서


그것들은 단지 사실일 뿐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차이가 되고 삶에서 특정한 시기에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그 이후로도 제법 오랫동안 중요한 영감이 되거나 각별한 스토리-텔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뵌 적 있는 분 같다"라고 하신 평론가의 말씀도 내게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그는 박준 시인의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의 발문에서 "작은 차이들의 연인"이라는 표현을 쓴 적 있다. (「조금 먼저 사는 사람」, 98쪽) 우리는 모두 누군가보다 '조금 먼저 사는 사람'일 수 있고 '작은 차이들의 연인'이 될 수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와 짐 자무시의 <패터슨>을 주제로 한 2주에 걸친 강의를 들었다는 것이, 그것을 만나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을 다른 많은 삶의 선택들보다 더 훗날을 값지게 해 줄 것이라고 믿게 된 12월의 첫 번째 날이었다. 취향과 가치관을 나누고 삶의 숱한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들이 의미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하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못한다는 것도. (2022.12.01.)


신형철 문학평론가와 함께, 그리고 사인.


(...) "영화가 보여주는 총 여덟 번의 아침에, 시계는 매번 조금씩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침대에서 막 눈을 뜬 부부의 자세는 매번 다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매일 같으면서 다른 이 아침의 햇살 속에 존재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신성은 일상 속의 반복과 그 미세한 차이 속에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매번 감지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둘의 삶은 달라진다. 전자는 최상의 경우 일상에 깃드는 신성을 감지하게 되겠지만, 후자는 최악의 경우 비자발적 허무주의자가 될 것이다." (...)

-신형철, 「인간의 형식: <패터슨>, 혹은 시인과 시작(詩作)에 대한 하나의 성찰」
『문학동네 2018년 봄호』에서


영화 패터슨 국내 포스터



김동진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외 활동 아카이브: bit.ly/cosmos__j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기행의 헤시오도스 같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