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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2. 2023

취향기록, 그게 돈이 됩니까?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2013년 7월 블로그에 첫 글을 업로드할 때만 해도 취향기록이 돈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나서 어떤 형태로든 감상과 생각을 기록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이 있고 거기에 몇 문장을 보태는 일이 별 다른 존재감을 획득하리라고는 짐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지금, 10년째 ‘영화리뷰’를 쓰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시작해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카카오 브런치스토리를 주 플랫폼으로 사용 중이며, 몇 개의 고정 기고 활동과 글쓰기 강의 등을 맡고 있다. 어떻게 지금껏 계속 쓸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무엇인가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오래 지속하는 일이 내 거의 유일한 장기가 아닐까 여기고 있지만 간단히 축약하기 어려운 나름의 지난한 과정을 복기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취향을 기록해 그것을 N잡의 1/N 쯤으로 삼고 있는 오늘의 바탕이 된 어제들의 기록이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일


리뷰나 비평 자체가 직업적 정체성이 되지 않는 한, 좋아하는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건 전적으로 스스로를 위한 일이다. 글을 쓸 자격이나 권한을 누군가 부여해 줘야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직업 혹은 직업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돈이 되어야 하고 돈은 생성형이 아니라 일정한 노동이나 활동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모든 과정은 혼자서 행하지만 그 결과물은 누군가의 조회나 구독, 반응 등을 거치게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쓰기를 일정 기간 계속한 사람은 기록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 된다. 타인에게 그 기록이 읽히기 시작하면 할수록 조금씩, 무언가가 보이지 않지만 일어난다. 어쩌면 여기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기록의 행위 자체에는 누군가의 인정이 필수적이지 않지만 직업이라고 불릴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동력이 필요하고 직업의 세계에서 그 동력은 곧 돈이다. (내 경우 그것은 원고료, 강의료 등으로 불린다.)


2015년 10월, 브런치(현 브런치스토리)로부터 내 글이 브런치북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것이 출판 공모전의 성격으로 지금도 매년 진행되고 있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제1회 수상작이었고, ‘그 영화와 이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 글들의 모음은 일정한 상금을 받는 은상 수상작에 올랐다. 그 해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베타 버전으로 론칭되어 나도 네이버 블로그 대신 브런치로 글 게재 경로를 옮겨가던 시기였고 독서모임으로 연이 닿은 한 독립 서점에서 영화를 주제로 한 소모임을 진행하던 때였다. 글쓰기 플랫폼에서 수상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인정받는 일이 누적 혹은 지속되다 보면 분명 변화가 생긴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은 첫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불과 2년이 조금 지난 뒤의 일이었으니 내 경우에는 운이 좋게도 그 시점이 조금 빨리 찾아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던 건 소위 말하는 ‘덕업일치’를 꿈꿨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투자, 배급이나 마케팅과 같이 영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자신만의 기록장을 갖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확률적으로 가장 쉬운 선택이 블로그였다. 한편 브런치를 시작할 무렵 인스타그램에도 영화 기록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영화 제목 등의 해시태그를 타고 점차 팔로워가 생겼고 같은 관심사를 매개로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히 ‘모임’이 만들어진다.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자연히 내 브런치의 구독자로 유입되기도 했다. 단지 기록을 계속하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조회수가 늘어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충실히 기록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일종의 정체성이, 스스로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의 시선에서 부여되는 순간 그의 기록은 어떤 힘을 얻게 된다.


카카오 크리에이터스데이 2019 에서



덕업일치에서 시작해 점차 N잡의 길로


그 해부터 몇 년간은 정말로 개봉 영화의 마케팅에 종사했으니 덕과 업이 하나가 되는 일은 얼마 동안 실제로 일어났다. 야근 등 불규칙한 업무 환경 속에서도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곧 글쓰기였다. 일의 슬픔을 기록의 기쁨으로 상쇄하고 그것으로 일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결국 사적인 취향을 기록하는 것도 공적인 성격을 띤 보도자료 등을 작성하는 것도 모두 ‘글쓰기’라는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내게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일에서도 일 바깥에서도 스스로를 정의하는 최우선의 정체성이 되었다. 이때부터 누군가 그리 불러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N잡러‘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내 직업은 ‘글 쓰는 사람’이고 그것은 개인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 쓰는 글도 언론매체 관계자의 이메일로 발송되는 보도자료나 개봉영화 포스터의 카피 문구 등을 위한 글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후 퇴사와 휴식기 등을 거치면서 더는 영화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동안에도 개인 채널에 영화에 대해 기록하는 일은 멈춘 적이 없다. (4대 보험이 가입된) 직업에 있어서는 제법 변화가 있었다. 영화 오프라인 홍보/마케팅 대행사에서 시작해 종합 PR/IMC 대행사를 거쳐 지금은 상장회사의 IR/PR과 전자공시 업무를 하고 있으니 커리어에 있어서는 영화와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영화 기록’을 매개로 한 내 N잡 생활은 풍부해지거나 확장되었다.


특정한 영화에 대한 해설이나 같은 영화를 함께 본 사람들의 대화를 주도하는 모임 진행 등 주로 ‘영화’ 자체에 국한되어 있던 내 활동은 이제 ‘영화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강의로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독립서점들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서점들에 자주 방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진행되는 행사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제안은 어느 순간 내게도 왔다. 처음 글쓰기 강의 제안을 받아 『써서 보는 영화』라 이름 붙인 4주 커리큘럼의 영화 리뷰 쓰기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기회는 여러 플랫폼으로 이어졌다. 원데이 커리큘럼을 만들어 튜터링 플랫폼에 튜터로 등록했고 영화 관련 몇 군데의 독립잡지의 필진으로도 참여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몇 년 동안 쌓인 글의 일부를 자가(1인) 출판 플랫폼을 통해 책으로도 만들었다. 제목은 앞서 언급한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을 따서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이라 지었는데, 책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오히려 돈을 들여서 책을 만든 쪽에 가까웠지만 한 도서관에서 입고 제안을 받기도 했고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정의하지 않았는데도 ‘작가님’으로 불리는 일이 늘었다. 팔로워(인스타그램)와 구독자(브런치)가 좀 더 늘어난 이후로는 개인 채널에 업로드하는 리뷰를 시사회 등을 통해 유료로 진행하는 제안도 몇 번 받았다.


2019년 6월 영화 <틴 스피릿> GV에서(롯데시네마 월드타워)
2020년 6월, 씨네엔드(@cineend) '월간영화인'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로부터 또 다른 기회가


모두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코로나19는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상의 많은 불편을 가져온 코로나19가 좋은 기회였다고만 할 수는 없겠으나 글을 매개로 하고 많은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기고와 강의 활동에 있어서는 한편으로 새로운 장이 마련된 것도 사실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내게 들어오는 제안에도 ‘비대면’, ‘화상’과 같은 키워드가 붙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나 대학, 지역 영화관, 지차제의 청년지원센터, 문화센터 등에서 글쓰기 강의 요청을 받았고, 한 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영화 해설 프로그램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쌓여가는 이력은 또 다른 활동을 불러왔다. 브런치에서도 활동을 오래 한 덕분에 영화리뷰 분야에 있어서는 대표적으로 검색 혹은 추천되는 몇 명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고 그러한 온라인 채널에 누적되는 스스로의 모임, 강의, 기고 등 활동들과 그 외 개인적으로도 지속되는 취향의 기록들은 매 순간 불특정 다수에게 선보이는 포트폴리오로서의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유명 온라인 강의 플랫폼의 콘텐츠 제작 제안을 받아 몇 개월의 기획과 촬영 등을 거쳐 『내 취향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문화 콘텐츠 리뷰 쓰기』라는 제목의 유료 강의 콘텐츠를 론칭하기도 했다. 주로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행하는 강의 활동을 미리 기획하여 촬영한 영상을 통해서 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https://class101.net/ko/products/6358b8eaa5cc3b001500cb5e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취향기록으로 살아남기


취향기록으로 N잡러가 되는 것에 대해 앞에서 ‘나 좋자고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직업이라고 일컬을 수 있으려면 그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반면 직업이 된 그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행하는 스스로의 인정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주고 그에 걸맞도록 합당한 보상을 책정하는 일은 물론, N개의 직업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고 나 또한 여전히 노하우를 체득해 가는 과정에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어떤 기록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 경우에는 연극이나 도서 등 영화가 아닌 분야에서도 리뷰 등의 제안을 받을 때가 있다. 주로 문학에 편중되어 있음에도 책 읽기는 스스로도 좋아하기에 책 관련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글쓰기를 포함) 영화가 아닌 분야는 전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부분 거절한다. 넓은 의미에서 수많은 문화예술과 콘텐츠 분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겠지만 아직은 영화에 대해 더 깊어지는 과정이라 믿으면서 동시에 확고한 전문 분야이자 스스로의 정체성은 ‘영화에 대해 글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리뷰는 공급이 많기 때문에 시간 대비 보상을 제대로 받기 쉽지 않다. ‘좋은 취지’, ‘예산’ 등을 언급하며 비용 없이 리뷰를 써 달라는 제안을 실제로 받는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개의 N잡 활동들을 차질 없이 관리, 유지하려면 아무리 좋은 취지여도 무료 봉사는 지양해야 하고 스스로의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을 책정받아야 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데에 적어도 2시간 남짓이 소요되고 내 경우 그것을 일정한 분량의 리뷰로 풀어내는 데 1시간에서 2시간이 필요하다. (시급으로 따져도 얼마인가!) 극장으로의 이동 시간과 리뷰를 쓰기 위한 자료 조사 등을 고려한다면 편하게 앉아서 하는 활동일 것만 같은 글쓰기도 명백한 노동(!) 활동에 해당된다.


2019년 초 시청역 근처에서


핵심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러나 천천히 꾸준하게


그 밖의 더 실질적인 팁이나 고충들을 말하자면 훨씬 더 긴 글을 써야만 하고 개인의 분야나 환경에 따른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겠으나, 요지는 N개의 크고 작은 직업 활동을 지속하는 일이 하나의 직업만을 생계로 삼을 때와는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여러 원고 집필이나 강의 준비 등을 수행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있음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마감 기한 등을 설정하는 것에도 충분한 고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임에도 시간적으로 소화할 수 없어 고사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생각한다. 취향기록 자체가 본업이 되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평일 규칙적인 시간에 한 조직에 정규직으로 소속되어 있으면서 그 외의 시간에 가능한 선에서 N잡의 활동을 병행하는 지금의 형태가 내게는 안정감을 준다. 원고 청탁이나 강의 준비 여부와 관계없이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콘텐츠 감상은 불가피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콘텐츠 덕질’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몰입하여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한 편의 리뷰를 쓰는 일을 매 순간 생계와 결부시키며 필사적으로 임했다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몇 개의 정기적, 비정기적 N잡 활동을 몇 년간 유지하다 보니 이제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여긴다.


브런치스토리 계정의 ‘작가소개’ 란에 몇 년째 이렇게 쓰고 있다. “취미는 ‘천천히’, 특기는 ‘꾸준하게’입니다.” 천천히 해야만 꾸준할 수 있고, 꾸준해야만 무리하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N잡러’라 이름 붙이며 모든 활동을 계획적으로 해온 것은 아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글을 읽나’ 싶은 생각도 분명 있지만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쓰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니 영화를 매개로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이므로 거기에는 전적으로 취향이 깃든다. 나를 위해 시작한 취향기록도 계속해서 하다 보니 몇 권의 책이 될 만큼의 아카이브로 자라났다. 그러다 보니 N잡러가 되는 데에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이나 경영학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정체성이 정립된다면, 그리고 정립된 정체성이 하루 이틀 한 달 그리고 일 년, … , 차곡차곡 적립된다면 그 충분한 기록에는 언젠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래서 취향기록 N잡러, 돈이 얼마나 되나요? 우선 이렇게 답해야겠다. “여전히 근로소득을 넘어서기엔 부족하지만, 연말정산 이후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따로 챙겨줘야 할 만큼은 됩니다.” 3개월 정도만 더 지나면 ‘영화기록’을 처음 시작한 날로부터 10년이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경험해 본 것 같지만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전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2023.04.02.)


2020년 어느 날의 책상
2022년 12월, 클래스101 강의 촬영 현장에서


*이 글은 <취미는 천천히, 특기는 꾸준하게 - 취향기록도 오래 하면 돈이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토스 머니스토리 공모전 DRAFT 2023'에 출품했다.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bit.ly/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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