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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0. 2021

'편하게 말씀해주세요'는 불편합니다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요청

첫 두 군데의 직장을 영화 마케팅 에이전시에 다니면서 '티켓 바터'라는 개념을 배웠다. 광고비를 쓰지 않고 예매권이나 시사회 초대 등 현물 혹은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온/오프라인의 다른 곳에 영화 선재나 정보를 노출시키는 형태의 제휴다. 서로의 니즈가 맞다면 각자에게 좋은 이벤트나 프로모션의 수단이 된다. 그게 기관이나 기업이 아니라 개인의 경우라면 좀 다르다.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면서 강연 등 여러 일로 섭외 제안을 많이 했었다. 이메일 주소 등을 찾아 '컨택'을 하고 행사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경우 비용을 받지 않고 행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취지나 의사와 상관없이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하는 일이었나 싶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보니 종종 원고 청탁이나 모임 진행, 강의 제안 등을 받을 때 그것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는 '비용'이다. 시간을 쓰는 만큼의 보상을 받는가. 이건 어디 매체에 실리는 게 아니라 개인 채널에 올리는 리뷰나 후기도 마찬가지다.


가령 영화로 말하자면 시사회 초대나 예매권, 굿즈 제공 등은 그 자체로 리뷰나 후기를 제공하는 것과 견줄 만한 대가가 못 된다. 갈 때와 돌아올 때 이동시간과 교통비, 영화 상영시간, 글을 쓰는 데 소요되는 시간, 그를 위해 자료를 찾거나 구상, 정리하는 시간까지. 그래서 언젠가부터 최소한의 원고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소한'이라고 한 이유는 상기의 요소들을 최저 시급처럼 계산하면 거의 남는 게 없어서다.


비용을 책정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응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서평 제안을 받기도 하는데 책은 영화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경우라면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 거절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어도 시간에 대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에 응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전에 영화 블로거 몇 분이 이 문제로 인해 일종의 모임 혹은 단체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들은 적 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브런치를 통해서도 이런저런 메일을 받는 편인데, '협업 요청을 드린다'라면서 주요 내용에 구체적인 사항은 하나도 없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는 꼭 '편하게 말씀해주세요''궁금한 사항 있으면 회신해주세요' 같은 말이 붙는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제안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도 생기지 않는다. 거기에는 회신하지 않거나, '정확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진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라고 회신한다. 이 회신에는 많은 경우 피드백이 없다.


여러 다른 작가의 책이나 기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적 있지만, 원고로 말하자면 가장 좋은 경우는 주제와 방향, 분량, 마감일자, 원고료, 지급일자 등 알아야 할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알려주는 메일이다. 여기에는 '할래요!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어요!'라고 답하고 싶은 것을 약간 누르고 '소중한 제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답장을 쓴다. 그 제안이 소중한 이유는 합당한 비용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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